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
김랑 지음 / 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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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시골에서의 삶을 꿈꾼 적이 있다. 도시의 삶과 사람들에게 상처 입은 마음에 외갓집에서 혼자 살아볼까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엄마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면서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고 타인의 시골살이를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지리산 산청에서 민박집 '마리의 부엌'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이루지 못한 내 꿈을 대신 이루어주었다. 작고 소담스럽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며 설렘을 간직하고 있는 저자는 지리산 산청의 삶과 훌쩍 떠나는 여행의 경험을 따스한 글로 풀어낸다.


자신만의 속도로 보고 먹고 걷고 이야기 나누는 삶은 소란스러운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무채색 도시를 떠나 푸르른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산나물로 자연밥상을 챙겨 먹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유유자적한 삶을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다. 현실적인 문제로 지금 당장 이룰 수 없는 바람이기에 잠시나마 시끄러운 머릿속을 비우고 정성이 듬뿍 담긴 소소한 이야기에 집중해 본다. 푸르름이 대문이 되고 햇빛을 지붕 삼아 좋아하는 것만 담은 '마리의 부엌'은 그곳을 찾은 이들에게 여유와 온기를 나눠준다.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는 지리산을 넘어 낯선 여행지에서도 계속된다. 이 책이 특히 좋았던 건 이 부분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여행을 통 갈 수 없었기에 그녀가 전해준 소박한 여행기는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저자는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건 사람이라 말한다.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진 내게 새로운 숙제가 안겨주었다. 


『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에는 여유가 있고 온기가 있으며 사람이 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며 정겨운 추억이 있다. 지리산에 넘어온 다정한 이야기에서 잊고 있던 행복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추운 겨울에 만난 따스한 이야기가 언젠가 나를 푸르른 풍경 속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선의는 강요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베풀지 않았다 해서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렇게 모르는 누군가와 친절을 주고받는 건 바싹 마른 가슴에 꽃 한 송이를 피우는 일이다. 간절할 때 받은 도움의 기쁨도 크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나눌 수 있는 작은 도움도 충분한 기쁨이 된다.

p. 83

느리지만 오롯이 소유할 수 있는 시간에 갇히는 것. 다른 무슨 일을 해야 이렇게 즐거운 고독에 잠길 수 있을까? 아직은 내게 ‘감을 뒤집는 일’ 말고는 없다.

p. 149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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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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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릴레이 추리 클럽 마지막은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다. 탐정 소설의 창시자이자 탐정 소설을 문학의 반열에 올린 대실 해밋 최고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이 소설은 엿새 동안 일어난 일을 빠른 속도로 보여준다.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새뮤얼 스페이드를 중심으로 벌어진 살인 사건과 <몰타의 매> 행방에 관한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 한 권으로 고전으로 여겨지지만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과 생동감 넘치는 전개와 구성은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의 특성을 보이며 시선을 잡아끈다. 장르소설을 즐겨 읽지만 하드보일드 장르는 아직 낯설기만 한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하드보일드 장르도 좋아할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경쾌한 노란색의 표지와는 달리 소설은 시작부터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원덜리'라는 한 여성이 사라진 동생이 '서스'비라는 남자와 함께 있으며 동생을 빼내 집으로 갈 수 있게 도와달라며 새뮤얼 스페이드의 탐정 사무실을 찾아온다. 그날 밤 서스비를 미행하던 스페이드의 동료 '아처'가 살해되고 서스비마저 살해된다. 의뢰인의 이름은 원덜리가 아니었고 동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이때 '카이로'라는 남자가 스페이드의 사무실로 찾아오고 작은 새 조각상을 찾아달라고 의뢰하며 권총으로 위협한다. 


시작부터 사건이 몰아치고 매력 넘치는 탐정은 망설임 없이 사건에 뛰어든다. 돈에 충성하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나니 이야기에 단숨에 빠질 수 있었다.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냉소적이면서도 로맨티시스트 같은 그의 모습을 보고 나면 이 소설 한 권에만 갇혀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내용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를 예상하곤 하는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배신을 거듭한다.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는 살인범의 정체와 <몰타의 매>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만 키운다. 배신과 거짓말, 인간의 탐욕과 음모, 그리고 추격이 거듭될수록 하드보일드 소설의 재미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몰타의 매를 차지하려는 오쇼네시의 탐욕과 거짓말에 질려서일까. 스페이드가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냉혹하고 프로페셔널한 스페이드의 잔상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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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청소부 마담 B
상드린 데통브 지음, 김희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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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라는 일에는 상당한 철저함이 필요했고 블랑슈 바르작은 일류에 속했다.

p. 11

주인공인 블랑슈 바르작은 범죄자들의 의뢰를 받아 혈흔부터 시체까지 완벽하게 청소하는 청소부다. 양아버지에게 기술을 전수받으며 지난 15년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작업했지만 범죄 현장에서 20년 전 자살한 엄마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삶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연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민 걸까. 


프랑스 스릴러 여왕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겨났다. 제목만 봤을 땐 다양한 범죄와 그 현장을 처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라 주를 이룰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지워야 했던 건 증거가 아니라 과거였다는 문구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사냥개의 의뢰를 받아 찾아간 범죄 현장에서 블랑슈가 발견한 엄마의 유품은 자신과 양아버지 아드리앙만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인생의 멘토인 양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그녀의 삶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양아버지가 사라지고 그녀가 청소한 시체가 다시 되돌아오자 공황발작은 더욱더 심해진다. 이게 현실인지 미쳐버린 건지 구분하기도 힘들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과거의 그녀가 만들어온 결과였다. 과거를 지우는 건 쉽지 않다. 과거의 영광도 실패도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한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면서 혼란에 빠진 블랑슈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범죄 현장의 흔적을 지우는 삶에서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그녀의 삶을 위협하는 인물을 찾기에 급급했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치밀하고 빈틈없는 세계관 속에서 점차 블랑슈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겪는 혼란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홀로 시련에 맞서야 하는 한 여인의 삶이 가여워졌다.


 프랑스 스릴러 소설은 낯설었지만 현실과 상상 사이를 넘나드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작가의 다른 소설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활자를 넘어 영상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블랑슈는 슬프게 그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그는 '우리'가 아닌 '너'라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혼자서 이 시련과 맞서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일깨우고 있었다.

p.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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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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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유리는 단짝 친구인 사토코가 집에서 할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유리는 사토코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고 중학생이 되어서 사토코와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고등학생이 된 유리는 전학생 마호와 친해지게 되고 어느 날 마호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걸 구하려다 괴한을 칼로 찌르게 된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토코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는 데...


소설은 소설가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출판사에서 보낸 편지에는 소설가가 쓴 책에 대한 독자의 감상, 그리고 간절한 만남을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한 여인의 말에 소설가는 만남에 응하게 된다. 그리고 20년에 걸친 세 여인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정에서 성적 학대가 일어나고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이 만연하다. 돌봄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은 학대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결국 세 아이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얽히고설킨 세 여자의 관계는 범죄로 이어져 있다. 힘 없이 약한 어린아이들을 진작에 어른들이 제대로 보호했더라면 이들의 관계는 이렇게 불행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리가 사토코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어땠을까.. 세 여인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자는 여전히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대와 폭력을 소재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이들의 괴이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약자가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이 씁쓸한 잔상을 남긴다. 나라면 유리, 마호, 사토코처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세 아이들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을까.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세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그려진다. 비극으로 얽힌 세 여인의 관계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인간 본성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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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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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 욕망하는 것 앞에서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스스로가 찌질하고 옹졸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담담한 척 자조를 공유하면서 이런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P. 39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달라지지만 

질투, 열등감, 욕망, 좌절, 위선 등 부정적인 감정은 애써 외면하게 된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 

저자는 그 감정 안에서 외로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서툰 사랑의 마음을 발견했다. 

그녀의 '싫음'을 읽으며 드러낼 수 없었던 내 감정을 대입시켜 본다. 

때로를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때로는 갸웃거리며 다름을 찾는 과정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 

저자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좋고 싫음의 경계에서 나의 옹졸함을 탓하고 자책하는 태도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주며 상처받은 마음이 사람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에 자꾸만 내 경험을 투영하게 된다. 

저자는 미움받을 용기만큼 미워하는 마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려 했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감추려고만 했다.

내 마음이 옹졸해 보일 것만 같아 숨기려 급급했지만 

부정적인 감정 또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놓는 걸 배운다.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아등바등 살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내 안의 감정을 돌이켜보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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