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블랑슈 바르작은 범죄자들의 의뢰를 받아 혈흔부터 시체까지 완벽하게 청소하는 청소부다. 양아버지에게 기술을 전수받으며 지난 15년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작업했지만 범죄 현장에서 20년 전 자살한 엄마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삶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연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민 걸까.
프랑스 스릴러 여왕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겨났다. 제목만 봤을 땐 다양한 범죄와 그 현장을 처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라 주를 이룰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지워야 했던 건 증거가 아니라 과거였다는 문구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사냥개의 의뢰를 받아 찾아간 범죄 현장에서 블랑슈가 발견한 엄마의 유품은 자신과 양아버지 아드리앙만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인생의 멘토인 양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그녀의 삶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양아버지가 사라지고 그녀가 청소한 시체가 다시 되돌아오자 공황발작은 더욱더 심해진다. 이게 현실인지 미쳐버린 건지 구분하기도 힘들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과거의 그녀가 만들어온 결과였다. 과거를 지우는 건 쉽지 않다. 과거의 영광도 실패도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한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면서 혼란에 빠진 블랑슈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범죄 현장의 흔적을 지우는 삶에서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그녀의 삶을 위협하는 인물을 찾기에 급급했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치밀하고 빈틈없는 세계관 속에서 점차 블랑슈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겪는 혼란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홀로 시련에 맞서야 하는 한 여인의 삶이 가여워졌다.
프랑스 스릴러 소설은 낯설었지만 현실과 상상 사이를 넘나드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작가의 다른 소설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활자를 넘어 영상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