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풍경 을유세계문학전집 135
E.T.A. 호프만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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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의 선구자이자 후기 낭만주의 대가인 E. T. A. 호프만의 걸작 중단편집이다. 그의 대표작인 <모래 사나이>를 포함하여 생전에 출간되었던 <밤 풍경> 1, 2권을 합본으로 하여 을유세계문학전집 135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근현대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호프만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장르소설을 즐겨 읽기에 그의 작품 또한 기대가 되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둡고 기괴하였다.

소설에는 어둠을 중심으로 살인, 사고, 사건 등 공포적 요소가 만연하게 깔려 있고 이성의 힘으로 해명할 수 없는 정신적 심리적으로 파멸로 이끄는 어두운 힘이 분위기를 좌우한다. 밤 풍경이라는 제목답게 그의 소설은 읽는 내내 19세기 어두운 밤으로 끌어당겼다.

첫 번째 단편 <모래 사나이>부터 괴이하다. 동화와 비밀스러운 실험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눈을 모래 사나이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망원경과 안경 등은 모두 눈과 관련된 것으로 실명의 공포와 어린 시절 두려움의 대상은 결국 한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

<밤 풍경> 2권의 두 번째 작품인 <장자 상속>도 인상적이었다. 해설에 따르면 호프만 자신의 현실을 많이 담고 있다고 하는 데, 한 가문의 사악한 숙명을 통해 상속을 향한 인간의 집요한 탐욕을 마주할 수 있다. 돈을 탐하고 고압적인 형과 형을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는 동생. 증오와 시기심으로 일그러진 가문의 이야기는 유령의 출현과 가문에 내려진 저주 등을 소개로 고딕 소설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고 고전 문학은 아직 어색하지만 낭만주의 문학과 환상소설이 어우러진 낯선 장르의 조합이 흥미로웠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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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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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건축가 뤼미에르는 아주 싸고 낡은 건물을 구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 부동산을 알아보는 중이다. 어느 날 아침 부동산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뤼미에르는 시테 섬의 유서 깊은 저택이 헐값에 나왔다는 전화에 집 주인을 만나러 스위스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고 부서진 중세 수도원을 개축해서 운영 중인 독특한 요양병원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가 방문한 날은 4월 15일. 요양병원과 시테 섬의 저택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단서이기도 한 4월 15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눈앞에 펼쳐진 건물과 빛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을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냈다. 두 권의 일기장을 통해 숨겨진 진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따스하면서도 여운을 남겨 준다. 인생의 힘겨운 순간을 지탱해 준 기억의 힘을 상기시켜 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작가가 실제 건축가라는 이력 때문인지 건물에 펼쳐지는 빛의 유영이나 숨겨진 비밀 공간 등 건축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과거의 기억과 자연이 주는 빛과 시간이 만들어낸 따스한 이야기는 오래된 공간에 담긴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은 두 권의 일기장을 단서로 공간이 가진 비밀을 풀어나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건축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건축이라는 소재를 통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까지 새겨 넣은 감동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매번 누군가를 위해 저렴하게 빠르게 찍어내던 나의 건축에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건축에 돈과 아이디어만을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자신의 영혼을 담았다. 깊은 숨을 내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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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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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요리 문화가 발달하면서 향신료에 대한 소비도 증가했다. 이국적인 음식을 맛볼 때면 향신료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 궁금하다. 향신료의 역사와 매력에 빠진 저자는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독자적으로 향신료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나갔다. 이 책은 그가 전해주는 향신료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향신료의 역사는 단순한 맛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의 지성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좋은 책!"이라는 역사학자 심용환 선생님의 추천사처럼 저자는 모험의 맛과 탐욕의 향으로 가득한 향신료 쟁탈전에 기꺼이 초대한다. 


과거 향신료는 매우 진귀한 기호품이었다. 이를 운반하고 거래할 수 있는 교역로를 확보하는 것은 막대한 부를 누리고 해상 패권을 지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유럽 열강들은 치혈한 각축전을 벌이며 향신료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내 집 식탁에서도 주문 한 번으로 세계 각지의 향신료를 편하게 맛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소수의 힘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저자는 향신료가 오늘날 대중적으로 사용되기까지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을 설명하며 생생한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또한 알면 알수록 더 향긋해지는 향신료의 특징까지 소개하며 한층 더 눈길을 끈다.


서구 열강들은 향신료 때문에 먼 아시아까지 식민지를 건설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식민 지배를 이어간다. 향신료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원주민을 침략하고 약탈하며 학살을 자행하였고 세계사에서 제노사이드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하고 감칠맛을 돋우어주는 향신료의 이면에 담긴 인류의 슬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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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 - ‘계획된 우연’을 찾아가는 자기 이해 워크북
이헌주 지음 / 갈매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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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적성에 맞지 않아도 좋아하지 않아도 밥벌이를 위해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설령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잘하지 못한다면 자괴감만 커질 것이다. 이 책은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수많은 상담 경험을 통해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말하는 저자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고 자아 탐색을 위한 7가지 질문을 던진다. 각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함으로써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을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구체적으로 꿈과 목표를 세울 수 있다.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삶의 방향을 탄탄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말한다. 외부의 평가나 사회적 전망에 의존하게 되면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불안감만 커진다. 따라서 각자가 좋아하고 가치있게 생각하는 일을 함으로써 내적 만족을 극대화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진행시켜 나갈 수 있다.

이 책의 3장에서는 자아 탐색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 준다. 노트를 하나 준비하여 저자가 제시한 7가지 질문에 대해 떠오르는 답을 적는다. 어린 시절 꿈, 가장 빛났던 순간, 가장 신났던 순간, 10년 후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 가장 소중한 사람,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 등에 대해 답을 고민하며 각자가 가진 강점을 발견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더 큰 세상에서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면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꾸기 위한 과정을 지나고 있다. 이 시간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되찾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도 모르고 있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쥔 키는 ‘주체성’입니다. 주체성이란 자신의 두 손으로 키를 움직이려는 의지죠. 나침반은 ‘고유성’입니다. 당신이 자신만의 항해에서 마땅히 가야 할 방향성이고요. 이 키와 나침반은 모두 당신 안에 있습니다.

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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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하이웨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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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판에서 박쥐가 피어오르고, 우산에서 망고가 열리고, 흰긴수염고래가 수로를 헤엄치고, 콜라 캔이 날아올라 펭귄이 되고...

교토를 무대로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사건을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초등학생 주인공의 활약을 보여준다. 아오야마는 매일 진지하게 연구에 매진하는 소년이다. 어느 날 아침 등굣길에 마을에 나타난 펭귄 떼를 보게 된다. 펭귄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중 아오야마는 펭귄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고 치과 누나로부터 이 수수께끼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이 황당무계한 판타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평범한 청춘 소설로 생각하고 갑자기 나타난 펭귄 떼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중 콜라 캔이 펭귄이 되는 장면에서 할 말을 잃었다. 이 소설 뭐지? 소설이 갑자기 애니메이션으로 바뀐 것만 같았다. 차에 치이고도 태연하게 도망치고 개가 물자 겁을 내고 도망치는 펭귄도 수상하고 펭귄을 만들어내는 치과 누나도 수상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자신들이 마주하게 되는 모든 것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세상에 찌들어 굳어진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작가가 만든 세계에는 바다와 우주, 블랙홀 등 복잡하지만 환상적인 세계관이 널려있다.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고 비밀에 다가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서 잃어버린 열정을 떠올린다.

소설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건 아오아먀 아빠의 태도였다. 제약 없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그의 모습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왜?"라는 물음에 지치지 않고 답을 찾아주려 애쓰던 젊은 시절의 아빠가 겹쳐지며 SF 판타지라는 장르를 잠시 있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이다움을 잃지 않으며 진지하게 연구를 이어가는 아오야마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은 독특하다. 처음에는 독특함이 낯설었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만든 이상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정천 가족 1 & 2>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작품 역시 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펭귄을 소재로 황당무계한 세계관을 그려낸다. 이 귀여운 SF 소설을 통해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어른이 된 현재에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독특한 설정이 시선을 끄는 소설이다.

여기는 세계의 끝자락이고 저 언덕을 넘으면 거기엔 정말 세계의 끝이 있는 것이다. 나한테는 세계의 끝을 탐험할 책임이 있다.

p. 93

세계의 끝은 밖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아버지는 생각한단다. 웜홀도 그렇지 않을까? 너랑 아빠 사이에 있는 이 테이블 위에 실은 웜홀이 이미 출현했을지도 몰라. 그건 정말로 한순간의 일이라서 우리한테 안 보이는 것뿐일 수도 있어.

p. 252 -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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