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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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릴레이 추리 클럽 마지막은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다. 탐정 소설의 창시자이자 탐정 소설을 문학의 반열에 올린 대실 해밋 최고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이 소설은 엿새 동안 일어난 일을 빠른 속도로 보여준다. 19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인 새뮤얼 스페이드를 중심으로 벌어진 살인 사건과 <몰타의 매> 행방에 관한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 한 권으로 고전으로 여겨지지만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과 생동감 넘치는 전개와 구성은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의 특성을 보이며 시선을 잡아끈다. 장르소설을 즐겨 읽지만 하드보일드 장르는 아직 낯설기만 한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하드보일드 장르도 좋아할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경쾌한 노란색의 표지와는 달리 소설은 시작부터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원덜리'라는 한 여성이 사라진 동생이 '서스'비라는 남자와 함께 있으며 동생을 빼내 집으로 갈 수 있게 도와달라며 새뮤얼 스페이드의 탐정 사무실을 찾아온다. 그날 밤 서스비를 미행하던 스페이드의 동료 '아처'가 살해되고 서스비마저 살해된다. 의뢰인의 이름은 원덜리가 아니었고 동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의 의심을 사게 된다. 이때 '카이로'라는 남자가 스페이드의 사무실로 찾아오고 작은 새 조각상을 찾아달라고 의뢰하며 권총으로 위협한다. 


시작부터 사건이 몰아치고 매력 넘치는 탐정은 망설임 없이 사건에 뛰어든다. 돈에 충성하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나니 이야기에 단숨에 빠질 수 있었다.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냉소적이면서도 로맨티시스트 같은 그의 모습을 보고 나면 이 소설 한 권에만 갇혀있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내용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를 예상하곤 하는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배신을 거듭한다.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는 살인범의 정체와 <몰타의 매>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만 키운다. 배신과 거짓말, 인간의 탐욕과 음모, 그리고 추격이 거듭될수록 하드보일드 소설의 재미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몰타의 매를 차지하려는 오쇼네시의 탐욕과 거짓말에 질려서일까. 스페이드가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경찰에 넘기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냉혹하고 프로페셔널한 스페이드의 잔상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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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청소부 마담 B
상드린 데통브 지음, 김희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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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라는 일에는 상당한 철저함이 필요했고 블랑슈 바르작은 일류에 속했다.

p. 11

주인공인 블랑슈 바르작은 범죄자들의 의뢰를 받아 혈흔부터 시체까지 완벽하게 청소하는 청소부다. 양아버지에게 기술을 전수받으며 지난 15년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작업했지만 범죄 현장에서 20년 전 자살한 엄마의 유품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삶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연 누가 왜 이런 일을 꾸민 걸까. 


프랑스 스릴러 여왕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겨났다. 제목만 봤을 땐 다양한 범죄와 그 현장을 처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라 주를 이룰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지워야 했던 건 증거가 아니라 과거였다는 문구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사냥개의 의뢰를 받아 찾아간 범죄 현장에서 블랑슈가 발견한 엄마의 유품은 자신과 양아버지 아드리앙만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보호해 주고 인생의 멘토인 양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그녀의 삶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양아버지가 사라지고 그녀가 청소한 시체가 다시 되돌아오자 공황발작은 더욱더 심해진다. 이게 현실인지 미쳐버린 건지 구분하기도 힘들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게 된 현실은 과거의 그녀가 만들어온 결과였다. 과거를 지우는 건 쉽지 않다. 과거의 영광도 실패도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한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면서 혼란에 빠진 블랑슈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범죄 현장의 흔적을 지우는 삶에서 흔적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그녀의 삶을 위협하는 인물을 찾기에 급급했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치밀하고 빈틈없는 세계관 속에서 점차 블랑슈라는 인물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겪는 혼란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홀로 시련에 맞서야 하는 한 여인의 삶이 가여워졌다.


 프랑스 스릴러 소설은 낯설었지만 현실과 상상 사이를 넘나드는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작가의 다른 소설까지 궁금하게 만든다. 활자를 넘어 영상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블랑슈는 슬프게 그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그는 '우리'가 아닌 '너'라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혼자서 이 시련과 맞서야 한다는 것을 그는 일깨우고 있었다.

p. 279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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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스
곤도 후미에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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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유리는 단짝 친구인 사토코가 집에서 할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유리는 사토코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고 중학생이 되어서 사토코와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고등학생이 된 유리는 전학생 마호와 친해지게 되고 어느 날 마호가 괴한에게 습격당하는 걸 구하려다 괴한을 칼로 찌르게 된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토코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는 데...


소설은 소설가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출판사에서 보낸 편지에는 소설가가 쓴 책에 대한 독자의 감상, 그리고 간절한 만남을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한 여인의 말에 소설가는 만남에 응하게 된다. 그리고 20년에 걸친 세 여인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정에서 성적 학대가 일어나고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이 만연하다. 돌봄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은 학대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결국 세 아이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얽히고설킨 세 여자의 관계는 범죄로 이어져 있다. 힘 없이 약한 어린아이들을 진작에 어른들이 제대로 보호했더라면 이들의 관계는 이렇게 불행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리가 사토코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어땠을까.. 세 여인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자는 여전히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학대와 폭력을 소재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이들의 괴이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약자가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이 씁쓸한 잔상을 남긴다. 나라면 유리, 마호, 사토코처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세 아이들의 상처를 달래줄 수 있을까.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세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그려진다. 비극으로 얽힌 세 여인의 관계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인간 본성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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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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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 욕망하는 것 앞에서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스스로가 찌질하고 옹졸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때. 나는 담담한 척 자조를 공유하면서 이런 마음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다. 

P. 39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달라지지만 

질투, 열등감, 욕망, 좌절, 위선 등 부정적인 감정은 애써 외면하게 된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 

저자는 그 감정 안에서 외로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서툰 사랑의 마음을 발견했다. 

그녀의 '싫음'을 읽으며 드러낼 수 없었던 내 감정을 대입시켜 본다. 

때로를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때로는 갸웃거리며 다름을 찾는 과정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 

저자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지만,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좋고 싫음의 경계에서 나의 옹졸함을 탓하고 자책하는 태도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주며 상처받은 마음이 사람을 통해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이야기에 자꾸만 내 경험을 투영하게 된다. 

저자는 미움받을 용기만큼 미워하는 마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려 했지,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감추려고만 했다.

내 마음이 옹졸해 보일 것만 같아 숨기려 급급했지만 

부정적인 감정 또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놓는 걸 배운다.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아등바등 살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내 안의 감정을 돌이켜보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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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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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을 지나 40대에 접어들면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는 보편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일에서도 삶에서도 수많은 방황과 흔들림을 겪고 중년이라는 호칭에 여전히 어색해하며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 남아있는 생의 절반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생각이 깊어진다.


철학자이자 언론인이 저자는 철학을 통해 누구에게나 초행길인 중년의 시기를 헤쳐나아갈 지혜를 전해준다. 그는 중년이 '저무는 시기가 아니라 인생 최고의 전성기'라 말한다. 허무함과 후회를 넘어 내면을 단단히 여미고 더 나은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팁을 건네며 인생 후반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사실 오십 이후에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나온 시간을 바탕으로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위대한 철학자들도 중년의 위기의 시간이었다. 단테에게 중년은 가시덤불이었고 보부아르에게는 악몽이었으며 톨스토이는 길을 잃었다고 한다. 이들이 혼란의 시기를 이겨낸 건 철학의 힘이었다. 어쩜 인생을 통틀어 철학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바로 이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철학자들의 지혜와 사유를 배우며 나이 듦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전히 내게는 소중한 시간들이 많이 남아있으므로 새로운 꿈을 실현하며 삶이 끝나는 순간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철학에서는 중년을 충만한 시기, 즉, 전성기로 보는 오랜 전통이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장년기(중년기)에 속한 사람은 청년과 노인의 중간에 속한 성격을 지닐 것이 분명하다'라고 썼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중년은 인생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 인생을 굳건히 세우는 시기이며 동시에 이미 겪은 청년기의 오만함을 버리는 시기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기를 경험 중이다.


내 인생 전반기는 '열정'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해 후회 없이 쏟아부었으며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이제 곧 다가올 오십의 삶이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건 아직 인생의 정점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후회는 미덕이 아니다. 이성적이지 않으며 비참하고 무능하다'라는 스피노자의 일침을 기억하며 생기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는 자기 삶과 화해하고 차분하게 미래를 바라보는 대신 과거를 맴돌면서 자기가 절대로 가지 않았던 대안적 인생의 길을 마음에 품는다. 그러지 말자. 후회 없이 상상 속의 청구서를 정리하고 오래 묵은 쓰레기처럼 부정적인 기억을 치워버리고는 결국 잊어야 한다. 그렇게 비로소 중년의 부담을 덜고 자립적인 인생 후반기를 맞이함으로써 진정한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p. 88

 살다 보면 쓰라린 실망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하지만 이런 유감스러운 사건 속에도 아주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양면성은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p. 116

중년이 되어 자신과 인생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지 못한 게 두렵지 않다. 경험과 지식이라는 중년의 특권을 가진 사람은 단호하게 삶을 계속 살아나가고 자기 앞에 놓인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p. 153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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