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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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시골 마을 저수지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미확인 홀.

어느 날 희영과 필희는 저수지에서 새까만 구멍 하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날 필희가 사라졌다.

30여 년이 지나고 희영에게 '블랙홀'이라고 쓰인 작은 쪽지가 전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지만 이들은 희영을 중심으로 얽혀 있다.

이 절묘한 짜임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희영은 어린 시절 사라진 필희를 마음속에 품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소설은 이처럼 상실을 안은 채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둘씩 보여준다.

필희를 잃은 희영, 언니를 잃은 필성, 엄마의 임종을 마친 미정, 삶을 놓치려 했던 정식,

딸을 버리고 도망친 순옥, 일상의 안온이 무너진 찬영, 해고를 당한 혜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아가면서 잃게 되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고 내가 버린 것들과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을수록 각 인물이 가진 아픔은 내 안의 상처와 맞물리면서 슬픔보다는 안도감을 안겨준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찾게 된다. 나 역시 필희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주어진 현실에 불만이 가득한 시절이었고 자존감은 나날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던 시기였다.

어느 순간 스스로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대책도 없었지만 나를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곧 떨어질 단추처럼 위태로웠던 삶이었지만 멈출 수 있던 용기 덕분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인정하면서

미래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이 좋다.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의 이야기지만 각 인물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돌아보고

투영해 볼 수 있었다. 인물들 각자가 가진 서사와 정교한 구조가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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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녕 샘터어린이문고 71
박주혜 지음, 김승혜 그림 / 샘터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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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연구원 '모두'씨와 실험동물인 토끼 '안녕'이의 여정을 그린 동화책이다.

모두씨가 다니는 화장품 해사는 사람에게 이로운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동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속눈썹에 바르는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실험을 했고

실험실에서는 아흔아홉 마리의 토끼가 희생되었다. 모두씨는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해롭지 않은

천연 성분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자신이 소모품처럼 느껴진 모두씨는 실험실에 남은 마지막 토끼를 데리고 회사 밖으로 도망쳤다.

그들이 만난 세상에서는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었다. 모두씨는 토끼가 살 수 있는 집을 찾아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농부의 밭을 지나고 허브 농장을 달려 채소 농장을 뛰어다녔다.

이제 모두씨는 토끼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로 결심하고 <모두의 안녕>이라는 베이커리를 개업한다.

짧은 동화를 읽으며 옛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연구소였다.

사람에게 이로운 항체를 만드는 회사였기에 동물 실험이 필수였던 곳이다.

내가 다뤘던 동물은 작은 쥐였지만 연구실에는 커다란 토끼도 실험 대상이었다.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동물이 희생되었다. 처음 하는 동물 실험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동물 실험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경험 때문이었는지 동화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토끼가 고마웠다.

더 이상의 희생 없이 모두의 안녕을 위한 모두씨의 노력은 여러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가 만든 빵은 유난히 되는 일이 없는 날에 격려를 해주고 질투로 가득한 마음을 다독여 준다.

책을 덮으며 실제로 그런 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할 때, 힘들 때, 다 버리고 싶을 때 등 현실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고 멀리 날려버릴 수 있는

맛있는 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씨와 안녕이는 행복을 찾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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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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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면 방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게 된다. 늘 미니멀리즘을 꿈꾸지만 현실은 물건 부자다.

오늘도 역시 봄맞이 방 정리를 시작했다. 언제 샀는지도 모를 온갖 물건들을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반성은 늘 지금뿐이다. 다음번 정리 시간이 돌아오면 또 치우고 버리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번에도 소유욕과 과시욕에 처절하게 패배했다.

이 책은 각자를 둘러싼 물건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마음속에서 저울질하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100%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물건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소비한 물건은 내 정체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참에 나를 둘러싼 물건들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저자는 아버지의 책장, 아팠던 시절에 구입한 가발, 나만의 방인 작업실, 방안을 가득 채운 책까지

소비와 소유의 경계 선에서 그녀를 돌보고 돌봐야 하는 물건들을 소개한다.

읽으면서 꽤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찻잔을 물려주려는 엄마와 내다 파는 딸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슷한 일이 우리 집에서도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욕구가 고스란히 담긴

그릇들이 내 몫이 되었고 내 취향이 아닌 그릇들을 볼 때면 큰 숙제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다.

그래도 차마 내다 팔지는 못하겠다.

<사는 마음>은 각자의 취향과 기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가끔은 소비를 할 때 죄를 지은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혼자

눈치를 보는 걸까. 내가 벌어 내가 사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즐거운 소비를 하며 기분 좋은 삶을 살자'라는 저자의 제안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이에 더해 새 물건을 사는 쾌감만큼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돌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새것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오래된 것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즉,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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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져라 - 일과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인간관계의 기술
조우성 지음 / 서삼독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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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관계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나만의 한줄평

인생에서 인간관계는 풀기 힘든 숙제 중 하나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불혹의 나이라는 마흔이 되어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특히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관계를 형성에 더욱 신중해지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일과 삶에서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계의 기술을 전해준다. 사람 사이의 분쟁을 다루는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건네는 해법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저자는 관계를 다스릴 줄 알아야만 인생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남도 헤어짐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요즘, 책 속에 담긴 조언은 어떤 상황에서든 적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사건 수임률 1위 변호사의 인맥 관리법부터 돈을 저축하듯이 인심을 저축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은 물론, 말속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직장 생활에서 상사나 부하 직원에게 유익한 관계 형성 기술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며 타인을 대하는 내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잘난척하며 어설픈 충고를 했던 건 아닌지, 줏대 없이 타인의 평판에 휘둘렸던 건 아닌지, 관계의 기복에 따라 스스로의 감정 또한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건 아닌지 끊임없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 업무와 관련하여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주로 이메일로 소통을 하고 있는 데 두 번이나 업무 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마음이 무척 불편했었다. 이로 인해 스트레스는 계속 쌓여가고 몸까지 아픈 상황에 처하자 어쩌면 여기서 관계를 끊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 여긴 순간에 담당자와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얘기하고 공유했고 서로 양해를 구하고 원만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내게 온 기회를 그냥 차버렸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일의 분량은 늘어났지만 마음은 편해졌다는 거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말 한마디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던 경험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

그때마다 저자가 건네는 인간관계 기술을 떠올리며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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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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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를 배경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열한 편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는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있고 어떤 이야기는 끝까지 읽기가 불편하기도 했다.

붉은색 표지만큼이나 강렬하면서도 도발적인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인 첫 단편부터 강렬하다.

칼로 자기 손바닥을 그으며 혈맹을 맺는 두 소녀의 세계는 나를 과거로 돌려보냈다.

소녀들의 우정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던 과거의 어느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 느낀 분위기는 끈적함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기까지 평소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피를 상징한 표지 때문일까.

진득하면서도 목을 옥죄이는 듯한 느낌에 단편 하나를 읽고 나면 창문을 열어야만 했다.

이는 평범하지 않은 여자들이 잔뜩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소설에서는 쉽게 공감하기 힘든 여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뱃속의 아이를 잃은 엄마,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중년의 여자,

짐승의 뼈를 수집하는 여자와 어린 딸을 두고 늘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여자까지

다소 기이하면서도 이상해 보이는 여자들이 잔뜩 등장한다. 연령도 인종도 다르고

각자가 처한 상황마저도 다르지만 아주 조금은 그녀들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왜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작가는 이 단편집의 주제를 '힘'이라 말한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힘이란 어떤 의미일까.

단편의 배열 순서 또한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찾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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