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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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었던 이들에게 숱한 배신을 당하고 어린 시절 동무와 적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왕현은 묵묵히 소기 곁에서 그를 보필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격정의 세월을 보내고 마침내 제왕의 패업을 이룬 왕현과 소기.

강인한 성격과는 다르게 약한 몸으로 이미 한 아이를 만나기도 전에 떠나보냈지만

이후 아비를 닮은 아들과 자신을 닮은 딸을 품에 안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배신이 거듭될수록 두 사람을 이은 보이지 않는 끈은 더 단단해져 가고

칼바람 속에 기꺼이 뛰어들며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천하를 품에 안은 남자와 그에게 패업을 주려는 여자.

두 사람의 운명이 서서히 앞으로 나갈 때 내 안에서 요동치는 흥분을 느꼈다.

부귀영화를 아무 대가 없이 얻는 줄 알았더냐? 지난 세월 동안 너는 근사한 내 삶만 보았지, 내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가슴 졸이며 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소금아, 네 운명만 기구한 것이 아니야. 근사한 삶 뒤에는 그만큼의 괴로움이 있는 법이다. 너에게는 너만의 세상이 있었는데 구태여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한 까닭이 무엇이냐? (p.168)

광활한 대륙을 무대로 사랑과 운명을 그려나간 제왕업.

이야기의 스케일만큼이나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한시도 지루하지 않았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이들의 결말이 궁금해서 결코 멈출 수 없었다.

어디서 이렇게 강단 있고 현명한 여인을 만날 수 있을까.

믿었던 친우들의 배신과 음모, 이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왕현처럼 그럴 수 있을까.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 제왕의 패업을 이루는데 기꺼이 몸을 던진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면서

전율과 감동을 느꼈다. 사랑스러운 이 여인이 주군에게 사랑받으며 두 아이와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언젠가 그가 약속했듯이 둘이 함께 유유자적한 풍류를 즐길 수 있기를 마음속에 수없이 빌어본다.

매력적인 무협 소설에 내 마음이 살랑인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말없이 나와 마주 건 손가락에 힘을 주는 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쳤고, 내 눈 속에도 그의 모습만이 어렸다. 그는 나의 빛나는 세상이요, 나는 그의 드넓은 강산이다.(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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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상 - 아름답고 사나운 칼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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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아름답고 강렬한 여인, 왕현. 그녀를 보는 순간 이 소설에 빠질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지독히도 사랑하는 한 남자와 패권을 위해 나서는 무협 멜로라는 소개처럼

책 속에 펼쳐지는 세계는 생사를 넘나들며 광활한 대륙을 활보하는 영웅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황제의 운명을 타고난 여인은 점차 그 운명에 눈을 뜨면서 대륙에 몰아치는 피비린내를 기꺼이 감당하며

한층 성숙해지게 된다. 이런 기개와 뜨거운 욕망은 고귀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황제와 황후의 사랑을 받고 자란 왕현은 마음속에 연모하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가문을 위해 정략결혼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 상대는 미천한 출신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 남자,

소기였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그 상대는 설상가상 변방의 반란 소식에 첫날밤 급히 떠나버렸다.

가문의 영예와 책임.

낯선 글자는 하나도 없었지만 마치 처음 듣는 말인 듯 생소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커다란 장도리가 가슴 한복판을 사정없이 내리친 듯 커다란 울림이 오래도록 퍼져 나갔다.(p.57)

이때부터 왕현의 운명은 요동치기 시작한 걸까.

무서운 칼바람이 불어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암투가 끊이지 않는 권력자들 속에서 점차 철의 여인이 되어 간다.

납치를 당하고 반역의 무리 속에서 살아남아 성을 지키면서 점차 그 남자와 닮아간다.

고운 비단 옷에 싸여 보살핌만 받는 여인이 아니라 뛰어난 지략과 기개를 갖춘 강인한 여인으로 변모한다.

강호를 휩쓴 영웅보다 더 멋진 왕현을 볼 때면 내 가슴도 뛴다.

왕현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궁금했기에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읽어나갔다.

엄청난 스케일과 빠른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권력, 욕망, 배신,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까지 완벽하다.

비록 정략결혼으로 맺어지긴 했지만 운명의 상대인 왕현과 소기.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며 한층 더 단단해진 이들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이후에 펼쳐질 무대가 벌써 궁금해진다.

보아라, 장공주와 좌상의 딸이자 황실과 왕씨의 피가 흐르는 천하제일 명문세족의 딸이 절망과 당혹감에 빠진 채 머리에는 비녀와 관을 쓰고 몸에는 궁의를 걸치고는 가소롭게 고귀한 척하며 자신조차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p.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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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클래식 클라우드 13
고영범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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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 레이먼드 카버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기이다.

주로 미 서부를 따라 그의 삶을 따라가는 여행은 이 낯선 소설가의 인생을 함께 더듬어보게 만든다.

나는 그에 대해 소설 <대성당>을 쓴 작가로만 알고 있었고 책장 한구석에 있는 대성당은

아직 펼쳐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엔

빨리 <대성당>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되었다.

그와 함께 하는 여행은 당시 미국 문학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경험도 동시에 안겨준다.

주로 노동자 계급의 삶에 관심을 두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생들을 글 속에 담아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의 문학적 스승인 거장의 삶은 왜 그토록 고단했을까.

궁핍했던 삶의 경험이 그를 소설가로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지명도 낯선 야키마에서 출발한다.

카버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평생 원하던 삶을 누렸던

포트엔젤레스까지 이어지는 여행은 새로운 자극을 전달해준다.

술에 찌들어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카버는 그 시절을 나쁜 레이먼드 시절이라 불렀고

다시 삶에 안착했던 시간들을 덤으로 사는 시간이라 여기며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저자는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여정을 사랑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라 정의했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랑에 대해

경험하고 생각했던 바를 카버만의 글로 표현하고 그려냈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정의를 이해하고 찾아보는 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막연한 희망보다는 불안한 우리들의 삶을 그려낸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인 커버.

그와 한 발짝 가까워지면서 그의 나라 미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날 수 있는 멋진 책이었다.


카버는 그가 <말엽의 단편>에서 썼듯이, 자신이 평생 원해온 대로 스스로를 사랑받은 인간이라고 일컬을 수 있었고, 사랑받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평생의 삶을 통해서 성취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가 세상을 두고 아주 떠난 뒤에도 남겨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사랑을 다시 자기들 삶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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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마르는 시간 -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이유를 찾는 당신에게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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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록 비참할지라도 모든 것은 일순간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는 것.

(p.57)

나는 오늘도 내 삶을 감사히 여긴다.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상은 나를 버렸고 신은 내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중이고 세상 모든 짐은 다 내 어깨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치열한 30대를 보냈다. 가장 빛나야 할 그 순간에 삶에 절망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이 생애에는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기꺼이 살겠다고.

우리 모두에게 나름의 사정이 있듯이 내가 감당해야 할 사정이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그렇다고 내 삶이 크게 바뀐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이 편해졌을 뿐.

얼마 전 사회에서 만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내가 쓴 글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늘 쓰던 대로 쓰던 글인데 그 친구는 그 안에서 내 변화를 읽어냈다.

나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변화를 느꼈고 참 다행이라는 말을 건넸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인정하며 세상을 내가 가진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 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자존심인데 후회를 하겠나. 그 덕분에 늦게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왔으므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고, 굽신대야 할 대상도 없다. 긴 세월 지켜온 보람으로 이제야 비로소 내 것들을 하나씩 세상에 내놓는다. 오직 나의 힘으로.

(p.106)

작가가 건넨 따스한 이야기, 가난에 허덕이던 절망적인 이야기, 삶의 무게에 눈물짓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같이 울고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어려운 순간이 있고 그 고비를 넘기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있듯이

내게도 그녀에게도 삶은 잔인하지만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를 정성스레 꺼낸 이 책에서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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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애덤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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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2월 23일 저녁 7시 39분. 다비는 스노 체인도 없이 눈길을 달리고 있었다.

유타 주에 있는 집으로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

말기 췌장암 진단을 받은 엄마에게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

결국 차는 고속도로 중간에 주저앉아 버렸고 다비는 앞에 휴게소가 있다는 표지판을 따라

눈길을 걸어 휴게소에 도착했다.

눈 내리는 휴게소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들도 눈길 속에 갇혀 이 휴게소에 대피 중이겠지.

빨리 제설차가 와서 눈을 치워줬으면 좋겠다.

아이폰 배터리는 한 자릿수로 남았고 그나마 엄마 옆에 있는 언니와 문자 메시지라도 하려면

와이파이를 찾아야 한다. 휴게소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와이파이를 찾아다녔다.

결국 어디서도 주파수는 닿지 않았고 그저 휴게소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한 바퀴 돌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이곳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주차되어 있던 회색 벤 뒷좌석에 있는 어린 소녀 제이.

입은 덕트 테이프로 봉인되어 있고 검은 쇠살대 개 철창에 갇혀 있다.

맙소사. 이 아이를 구해야 한다. 저 안에 이 아이를 납치한 범인이 있다.

처음부터 긴박하게 돌아가는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야기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새벽까지 밤 사이에 일어나는 숨 막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납치된 아이의 범인을 찾는 과정과 조력자라 생각했던 인물이 악당이었으며

이 모든 사건이 이곳에 모인 이들의 끔찍한 계획이라는 사실에 주인공 다비는 숨이 막힌다.

엄마의 죽음도 어린 소녀의 죽음도 모두 막고 싶다.

고립된 공간에서 홀로 악당들과 맞서는 주인공의 활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 당하고 끔찍한 고문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소녀를 구하겠다는 포기하지 않는 집념에 절로 몰입하게 된다.

주인공 홀로 맞서 싸우는 영화에서 경찰은 늘 마지막에 도착한다지.

마지막 순간 살아남는 자는 누구일까. 어린 소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첫 장을 여는 순간,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갔다.

예측을 벗어나는 마지막 전개에 이 책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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