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국도변에 '비말'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작은 동네였는데
바로 옆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마을 생계는 점점 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마을을 살리려 축제도 열고 마라톤도 시도했지만
마을을 찾아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불에 탄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이후 태풍에 휩쓸려 5구의 시체가 더 발견되면서 마을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지만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주민들은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살인범 박물관을 만들고 피해자가 묵었던 여관방을 전시하고
용의자로 몰렸던 사람은 자신의 경험담을 사람들에게 팔았다.
마을은 순식간에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후에는 관광객이 반으로 줄었고 그다음 해에는 또 그 절 반이 줄었다.
8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에 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전 희생자와 비슷한 수법으로 이번에는 희생자의 유가족이 살해당했다.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자 시들어가던 마을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 끔찍한 마을에 제대로 된 인간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이야기는 이 마을에서 미친아이라며 손가락질을 당하는 주인공 '밴나'와
마을에서 정체를 숨기며 살고 있는 살인범의 시점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스릴러 소설임에도 살인범의 정체는 초반에 드러난다.
범인 찾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다시 벌어지면서 밴나는 홀로 범인을 찾으려 뛰어다닌다.
그리고 살인 뒤에 숨겨진 마을의 추악한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이들은 감춰진 잔혹성과 이기심을 드러낸다.
그저 살기 위해서라는 그들의 핑계를 이해해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끔찍한 사건, 무고한 희생자, 잔혹한 현실 등 불편한 요소가 가득하지만
무더운 여름날을 잊게 만들 한국형 스릴러로서는 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지 잠시나마 깊은 고민에 빠져들 것이다.
여기서 갈림길, 꼭 살인마를 통해야만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였다'는 핑계는 너무 모호하다. 그러나 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살기 위해서였다고 말이다. 윤리 의식, 죄책감, 동정심, 인간애 같은 것들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냐 묻기도 전에, 사람들은 생존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생존과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 풍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p. 26
귓가에 '고고 밴나'라고 말하는 나조 씨의 목소리가 다시 어린다. 풀리지 않은 문제는 계속해서 곁에 머문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치워버릴 수가 없다. 고고 밴나. 고고 밴나. 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그 말을 중얼거리며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