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
브라이언 애터버리 지음, 신솔잎 옮김 / 푸른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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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판타지 소설이 있다. 드래곤이 등장하고 라이더가 주인공이며 두 남녀 간의 로맨스도 곁들여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만 해도 판타지 장르에는 알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액션, 로맨스, 스토리, 세계관까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2023년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된 「포스 윙」이다.


판타지는 재미를 위해서만 읽는다고 생각했다. 세계관부터 현실적이지 않기에 현실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미국의 대표적인 판타지 소설 연구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를 통해 판타지 문학의 의미와 역할을 소개하고 어떻게 정치적인 도구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실과 어떠한 접점도 없어 보이는 판타지 장르가 인간의 본성과 세계의 작동 방식을 꿰뚫어 본다고 말한다. 그는 '판타지가 어떻게 의미 있을 수 있는가', '판타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판타지 문학의 의미와 역할을 이해시킨다. 용이나 마법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판타지는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라 표현했다. 신화적 측면, 메타포 차원, 그리고 구조 차원에서 진실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판타지 장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대상처럼 현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결말에 이르러 화합을 추구하는 장르의 특성 역시 현실에 대입해 볼 수 있다. 독자는 판타지의 결말을 통해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판타지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생각해 볼 9가지 키워드를 선정했다. 진실성, 사실주의, 결말, 흥미 요소, 문학의 사회적 기능, 유토피아, 남성성, 정치성, 두려움을 통해 현실에서의 합의, 개선, 연민, 공존을 위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행동하고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판타지 장르에 대한 장벽을 허물고 기꺼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책이다.


#판타지는어떻게현실을바꾸는가 #푸른숲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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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고를 일으키는 의사들
대니엘 오프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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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행위라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순간에 환자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와 함께 대학 병원을 다닌 지 5년이 넘어가지만 진료실에 들어가면 세상 공손한 자세로 의사에 말에 경청하게 된다. 지금 병원에 오기 전 초기 진료를 했던 병원에서 사고가 있었다. 검사를 위해 주입한 약물 때문에 엄마의 심장이 멈췄던 적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간병인 덕분에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었지만 병원과 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더 전문적인 처치와 관리를 위해 상급 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 병원 문을 두드렸을 땐 절대적인 믿음으로 접근한다. 그렇기에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느끼는 상처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역 내과 의사인 저자는 이러한 의료 사고의 진상을 분석하고 의료 서비스를 정상화하는 방법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의료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의료 사고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기술의 문제일까 부주의의 문제일까. 저자는 의료 사고가 개인의 실수보다는 시스템의 문제라 지적한다. 미국 의료계의 경우 인종적, 성차별적 편견과 인력난 등이 겹쳐 의료 실수가 계속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을 통해 의료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개인과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미국 전체 사망 원인 중 의료 실수가 세 번째를 차지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의료 사고로 환자들이 소송을 제기했을 때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의료 사고를 일으킨 의사들에게 내려진 징계는 너무나도 가볍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하지 않아도 될 실수가 자꾸만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실수를 줄이고 환자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사례 중 제이와 글렌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읽는 내내 분노를 자아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 의사와 간호사의 미온적인 대응과 잘못된 진단, 감염 합병증과 미숙한 처치 등은 그저 재앙이었다. 이후 서로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유족에게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태도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아찔했던 경험을 통해 의료 사고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의대 입학 정원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우리 의료계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짧은 진료시간, 부족한 병상과 인력, 환자들의 기대치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의료진들 또한 지쳐가고 있는 현실이다. 완벽에 완벽을 더한 의료 시스템 안에서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다. 

비록 <실수>를 저지른 것은 인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실수를 가능하게 만든 무수한 시스템의 실패가 존재한다.

p. 249


#의료사고를일으키는의사들 #열린책들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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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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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함에서 벗어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삶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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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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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편안함을 당연하게 여겼을까.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것이 편안한 시대다. 먹고 싶은 음식이나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손안에 든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시장이나 마트로 나가 직접 물건을 보고 고르고 양손에 가득 들고 오던 모습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진다. 


저널리스트이자 탐험가인 저자는 인류가 잃어버린 '불편함'이라는 감각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한다. 불편함을 체험하기 위해 직접 알래스카 오지 사냥을 가기도 하고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불편함이 필요한 이유를 찾아본다. 또한 불안, 우울증, 비만, 번아웃 등과 같이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불편함과 편안함의 관계 또한 설명한다.


이 책은 목차부터 눈길을 끈다. 죽지 않을 만큼 아주 힘들어야 하고 따분함과 배고품을 즐기고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짐을 나르라는 제목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더 긴 수명과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지만 현대인들은 삶을 더 건강하지 못하고 더 불행하며 더 왜소하게 만들는 여러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물론 과거와 같은 불편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정중하게 거절하겠다. 우리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본능을 거스르고 싶지는 않지만 불편함의 가치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저자는 편안함으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편안함이 행복으로 이어지는지 디지털 기기에 갇혀 있는 삶이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등 익숙함에서 한발 떨어져서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당장 어제 겪은 일만 떠올려도 그동안 얼마나 편안함에 익숙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장마가 막 시작한 날이라 덥고 습한 기운이 불쾌하게 느껴지던 차에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가 수리 중이었다. 9호선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려면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고 빗물에 신발까지 미끄러운 터라 순간의 불편함에 짜증이 멈추지 않았다. 건강을 생각하면 그깟 계단쯤이야 가뿐히 올라가면 그만일 텐데 편안함에 익숙해진 몸은 잠깐의 불편함조차 감내하길 거부한다.


저자는 스마트폰, 자동차, 냉난방기 등이 우리를 편안함의 늪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편안함 때문에 건강과 삶의 활력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객관적인 통계 수치를 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게 되었으며 비만 유병률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사고방식을 재구성하여 야생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고픔은 결핍 상태가 아니라 몸이 더 건강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생존 메커니즘임을 이해하고 외롭다는 느낌을 풍요로운 고독의 느낌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에 빼앗긴 주의력을 되찾기 위해 따분함을 즐기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20분 정도 짧은 야외 산책만으로도 생산성과 창의성 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얼마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자율신경계 불균형 상태에 있는 내게 의사가 내린 처방도 산책이었다. 별다른 약 처방 없이 낮 시간에 30분만 야외에서 걸어 다니기만 해도 자율신경계가 좋아질 거라 말했다.


이 책은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불편함이 가진 효율을 설명한다. 잊고 있었던 우리 몸의 감각을 깨우고 자극함으로써 무감각해진 사고를 자극하여 삶의 활력을 찾으라 말한다. 편리함이라는 중독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으로 회귀할 시간이다. 편안함에 갇힌 많은 현대인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기대해 본다.   


#편안함의습격 #마이클이스터 #수오서재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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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렌
엘레이나 어커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앤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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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제러미는 자신의 해부학적 지식을 실현하며 고통스러워하는 희생자들의 모습을 즐긴다. 타깃으로 삼은 희생자들을 차례로 납치, 감금하여 살해하며 실험을 계속해 나간다. 검시관인 렌은 계속되는 잇따른 시신들을 부검하며 연쇄 살인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베테랑 형자 존과 함께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제러미와 렌 사이에는 7년 전 사건이 연관되어 있는데...


살인을 읽는 여자와 죽음을 설계하는 남자. 

소설은 두 주인공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사건으로 끌어당긴다. 

작가는 의료인이 삶과 죽음에 각각 매료되었을 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지 이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루이지애나 늪지대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은 소설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 준다. 

두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다 갑자기 엇갈린 지점에 다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실제 검시관인 저자의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는 사건에 대한 긴장감을 더한다.

범죄 장면은 잔인하면서도 섬뜩하다. 피가 낭자한 범인의 시선 끝에는 

부검대 위 시신을 바라보는 렌의 시선이 이어진다. 

죽은 사람을 통해 밝혀진 비밀은 범인에게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마침내 렌이 제러미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결말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다가 마지막 골인 지점에 다다랐을 때 

설마... 아니겠지...라는 의구심과 두려움을 안고 조심스레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을 읽고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 결말의 늪에 빠져 있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는 무더운 장마철에 서늘함에 안겨 줄 것이다. 

#살인자와렌 #엘레이나어커트 #앤드 #도서리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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