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아이
조진주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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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는 피해자, 생존자, 그리고 목격자가 등장한다.

어느 날 두 아이가 유괴를 당했다. 그리고 한 아이만이 살아 돌아오게 된다.

나는 살아남은 아이를 생존자라 부르고 싶다.

세상은 아이에게 이중적인 시선을 보낸다. 끔찍한 범죄로 인한 동정 어린 시선과

홀로 살아남았기에 배신자라고 여긴다.

그래서 살아남은 아이는 안도감보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17년이 지나고 다들 잊으라 하지만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잊을 수가 없다.

여전히 그날의 사건은 미제로 남아있고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는 그날 자신을 풀어준 사람의 눈을 봤다. 그리고 그가 범인이라 지목했다.

하지만 그가 지목한 사람은 함께 유괴 당한 아이의 아버지 '이도형'이었고

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이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몽타주를 그리게 된다.

한편 범죄가 일어난 날,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아이는

놀이터에서만큼은 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날 두 아이가 낯선 남자를 따라갈 때

아이는 그 자리에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의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

살아남은 아이 '지희'와 남겨진 아니 '규연'은 어른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유괴와 친구의 죽음이라는 굴레에 갇혀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그냥 다 잊고 현실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과거를 들추지 말라는 압박은 폭력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말없이, 때로는 말 한마디로 폭력을 휘두른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된 적은 없는지,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한 채 피해자 다움을 당연하다 여긴 건 아닌지 무서워졌다.

폭력 속에서도 생존자와 목격자는 용기를 낸다.

과거의 진실을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에서 진실이 밝혀졌을 때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인생이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니...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제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스스로 굴레를 깨부수고 세상으로 나온

이들을 통해 두려움 때문에 외면하고자 했던 내 삶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


규연아, 우린 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극복하지 못한 과거 같은 거 되게 진부한 이야기인데. 지나간 일들 따위 무시하고 지금만 보며 살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할까?

p. 186


은정은 종종 지희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은 듯이 굴었는데, 지희는 매번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겪은 고통이 타인을 향한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해 준다고 믿는 걸까.

p.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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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주의자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소슬기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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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의 진실을 파헤치는 흑인 여성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최초의 흑인 여성 점검원으로 설정한 건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차별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굴러간다.

엘리베이터라는 매개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인간의 욕망과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는

불안전함을 보여준다. 이 세계는 경험주의와 직관주의로 양분되어 있다.

경험주의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관점으로 엘리베이터를 점검하지만

직관주의자인 주인공은 직접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느껴지는 이미지와 직감으로 상태를 점검한다.

어느 날 주인공이 점검한 11호기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사고가 벌어지고 그녀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녀의 직감에 따르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기에 사건의 실마리가 될 블랙박스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엘리베이터 추락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는 추리소설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한 인간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보여준다.

엘리베이터는 권력자들의 끝 모를 탐욕을 반영하고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세상은

현실의 폭력적인 차별을 빗대어 보여준다.

좁은 엘리베이터 만이 유일한 상승 수단인 세계에서 추락은 실패를 상징한다.

소설에서 직감으로 표현된 전문성과 직업적 자부심은 계급으로 이루어진 수직 도시를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엘리베이터는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완벽함이란 무엇인지,

그 종착지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상상해 본다.


엘리베이터 세상은 천국처럼 보일 테지만, 당신이 예상했던 천국은 아니다.

p.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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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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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 간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를 통해 1950년대 미국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통렬하게 비틀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신명나게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를 봐야 한다는 통념이 만연한 사회에서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소에서 진화 이전의 분자에 대해 연구하는 화학자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녀를 연구 보조원으로 취급하고 연구소장은 그녀의 연구를 가로채려

호시탐탐 괴롭히지만 외로운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캘빈 에번스와 결혼 없는 동거를

시작하며 연구와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캘빈이 사고로 죽게 되자 아이까지 가진 엘리자베스는 연구소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여섯시-삼십분'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개와 함께

자신의 주방에 연구실을 만든다. 딸 매드 조트가 태어난 후 우연한 계기로

TV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에 출연하게 되면서 화학과 요리로 세상의 중심이 된다.


성차별은 당연했고 여성에게 순종적인 삶을 강요하던 당시 사회적 배경을 인지하면서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성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시대를 뛰어넘어 사회적 통념과 시스템에 도전한다.

여성 과학자가 거의 없던 시대에 수많은 음모와 역경을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표출하는

그녀의 활약상에 자꾸만 눈이 간다. 그녀는 화학을 통해 변화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명한다.

수동적인 삶은 얼마든지 능동적인 삶으로 변할 수 있고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라고 조연에만 

머물지 말고 당당하게 주연이 될 수 있다는 소신이 잘 드러나 있다.

화학을 소재로 이렇게 스펙터클하고 유쾌한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 초인적인 능력의 단어를 아는 강아지와 나이보다 생각이 깊은 어린 딸,

그리고 그녀에게 기꺼이 도움을 준 이웃 해리엇 부인까지 매력적인 캐릭터가 어우러져

이야기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각자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언제든 깨울 수 있도록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참 좋았다. 

조금 더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준 소설이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p. 236 <레슨 인 케미스트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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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최신 신경생물학과 정신의학이 말하는 트라우마의 모든 것
폴 콘티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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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한 개인의 인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

지난겨울 겪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까지도 내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엄마와 단둘이 집에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의식을 잃었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입술까지 창백해진 엄마가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이후로 꽤 오랜 시간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의식은 금방 돌아왔고 얼마 후 병원 진료를 시작했지만

내가 그 순간에 발견하지 못했다면...이라는 생각에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했다.

1 년이 지난 지금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엄마가 쓰러지던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떠오른다.

당시 내가 겪은 심리적 스트레스는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나타나 현재도 괴롭히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트라우마의 파괴력과 유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트라우마를 물리치기 위한 사회적, 개인적 해법을 소개한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동생의 자살을 계기로 정신의학을 전공한 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해법을 공유한다.

트라우마는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변화시켜 문제의 원인을 자신으로 향하게 만든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가 다양한 형태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내면의 상처는 점점 더 부풀어 올라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해를 끼친다.

저자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거진 인종차별과 불평등 문제가 트라우마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우리 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점차 약해지게 되고

우울증, 불면증, 면역력 저하, 자살 충동 등 심각한 증상으로 이어진다.

트라우마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책에서는 각자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방책을 제시한다. 그 첫 번째가 '트라우마를 알아채는 것'이다.

병원 진료 때마다 의사가 내게 하는 말도 바로 이거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는 것. 그래야 온전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수없이 강조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트라우마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의 내용과 내 경험이 더해져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며 이제는

내 안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하는 촉발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트라우마는 고통뿐 아니라 건강과 행복에 대해서도 눈을 감으라고 속삭인다. 트라우마는 거대한 지우개이자 가장 귀한 것을 훔쳐 가는 도둑이고 인감임을 의미하는 모든 것을 다 잊게 하는 바이러스다.

p. 280


트라우마가 뇌를 변화시키고, 세상의 중요한 양상을 우리가 보지 못하도록 숨긴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한다. 사색, 타인과 경험과 인식을 나누기, 필요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기 등이 여기에 도움이 된다.

p.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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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일본 정독 - 국뽕과 친일, 혐오를 뺀 냉정한 일본 읽기
이창민 지음 / 더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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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처음 접한 일본 문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소재의 드라마가 성행했고

문화뿐만 아니라 생활 양식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일본은 다방면에서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며 기술과 경제 분야에서 추격해야 할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일본에 대한 기대를 품고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 땐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다른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또다시 10년이 지나고 전 세계가 팬데믹을 겪은 후 일본은 오히려 과거로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선진국이라 불리던 일본이 점점 퇴행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 걸까.

언제부터 소위 말하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위치가 역전된 걸일까.

또한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사회 문제를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은 어떠한 해법을 찾았을까.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먼저 일본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선진국으로 도약 후 장기 침체를 겪는 일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과거의 일본을 돌아보고 현재 일본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미래 일본을 전망하여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고민한다.

책에 소개된 아토쓰기 문화나 150년이 넘은 도쿄 긴자에 위치한 기무라야 빵집의 예를 통해

가업을 유지하면서 높은 수준의 직능을 보유하는 비법의 중요성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일본의 정책과 비교함으로써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경직된 조직 문화와 인적 네트워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조직 구조는 배척해야 할 것이다.

특히 팬데믹을 겪으면서 일본은 디지털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디지털이 주를 이루는 사회에서 여전히 팩스와 도장을 선호하는

시스템은 뒤처진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의 강점과 약점을 살펴보고 이익이 되는 부분은 우리 현실에 맞게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한 때라는 걸 느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어그러진 두 나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갈등 없는 한일 관계를 꿈꾸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갈등은 관리의 대상이지 제거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이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진국으로서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 갈 때가 되었다.

p.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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