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는 피해자, 생존자, 그리고 목격자가 등장한다.
어느 날 두 아이가 유괴를 당했다. 그리고 한 아이만이 살아 돌아오게 된다.
나는 살아남은 아이를 생존자라 부르고 싶다.
세상은 아이에게 이중적인 시선을 보낸다. 끔찍한 범죄로 인한 동정 어린 시선과
홀로 살아남았기에 배신자라고 여긴다.
그래서 살아남은 아이는 안도감보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17년이 지나고 다들 잊으라 하지만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잊을 수가 없다.
여전히 그날의 사건은 미제로 남아있고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는 그날 자신을 풀어준 사람의 눈을 봤다. 그리고 그가 범인이라 지목했다.
하지만 그가 지목한 사람은 함께 유괴 당한 아이의 아버지 '이도형'이었고
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이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몽타주를 그리게 된다.
한편 범죄가 일어난 날,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아이는
놀이터에서만큼은 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날 두 아이가 낯선 남자를 따라갈 때
아이는 그 자리에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의 존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
살아남은 아이 '지희'와 남겨진 아니 '규연'은 어른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유괴와 친구의 죽음이라는 굴레에 갇혀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그냥 다 잊고 현실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과거를 들추지 말라는 압박은 폭력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때리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말없이, 때로는 말 한마디로 폭력을 휘두른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된 적은 없는지,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한 채 피해자 다움을 당연하다 여긴 건 아닌지 무서워졌다.
폭력 속에서도 생존자와 목격자는 용기를 낸다.
과거의 진실을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택한다.
소설 속에서 진실이 밝혀졌을 때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아이들의 인생이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니...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제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스스로 굴레를 깨부수고 세상으로 나온
이들을 통해 두려움 때문에 외면하고자 했던 내 삶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