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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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증상으로 기억에 혼란이 온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

그리고 아들이 알지 못했던 지워진 1년의 진실. 소설은 기억을 통해 연결된 가족을 보여주며

각자가 바라본 가족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작가는 유리코와 이즈미 모자를 통해 '기억에 있는 행복'을 말한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약해지는 부모님을 볼 때면 마음이 아린다.

언제까지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두 분의 울타리가 되었다.

소설은 고령화 시대라는 현실을 반영하며 치매를 소재로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리코와 이즈미 모자 사이에는 맺힌 응어리가 있다. 홀로 이즈미를 키우던 엄마가 1년간

집을 나갔었다. 아들은 엄마의 짐을 정리하던 중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그 시절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가 아닌 '유리코'라는 한 사람을 들여다보며 변해가는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가족이기에 털어놓을 수 없는 각자의 사정과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받아들이게 되는 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유독 소설의 잔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건 비슷한 사정 때문일 것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엄마의 투병 생활도 이제 1년을 지나고 있다.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늦추고만 싶다.

엄마와 딸은 다투기도 하고 하하호호 사이좋게 지내기도 하며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만큼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늘 함께한다.

기억이 남아있다면 가족은 늘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도, 다 읽은 후에도 자꾸만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잃는 게 곧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p.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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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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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게 주어진 수명을 희생할 수 있을까.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11년 전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수명 중 55년을 희생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청춘 소설이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 읽고 난 후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결혼식과 아내 미노리의 장례식. 그리고 내가 놓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이렇게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는데

중학생 소년 소녀의 청춘 로맨스에 마음이 울렁인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맹목적 희생으로 시작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싱그러운 청춘들의 성장을 보여주며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다만 그들의 사랑을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건 이미 이 사랑에는 희생이 깔려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생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소설 속 미노리가 조금은 부러웠다. 온전히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니, 내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

과연 이번 생에 만날 수 있는 건지 갑자기 심술이 생겨났다.

평범하다 여겼던 일상의 뒤편에 자신을 위한 희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그 사랑이 남긴 흔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미노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한층 더 단단해진다.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미노리의 행복과 희망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미노리를 사랑할 것이다. 이건 예상도 염원도 아닌, 강한 확신이다. 그리고 미노리도 내 마음과 같겠지, 그렇다면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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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 인간은 왜 취하고 상처 내고 고립되는가
마쓰모토 도시히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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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약한 본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무언가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추상적인 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간혹 고통을 필요로 한다. 그로 인해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25년간 의존증 전문 정신과 의사로 지내온 저자는 의존증 임상 현장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관계 속에서 연결되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들은 약이라는 물건에 의존하며 스스로 고립된다.

다소 어두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좋은 번역 덕분에 쉽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이 정신과 의사가 되려 한 계기부터 의사 삶의 전환이 되어 준 환자,

첫 진료의 기억과 의사가 되고 만난 환자들까지 자신의 경험을 소탈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자신 역시 강박적으로 커피와 게임센터의 레이싱 게임이 의존했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저자는 약물 의존증 환자를 처벌이 아니라 치료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의존증 환자보다는 중독자라는 표현에 더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약물 중독자는

당연히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다. 저자의 주장 역시 사회적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약물 의존증을 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하며

자신의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이 다시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이 손길이 필요하다 말한다.

저자의 경험과 환자들과의 일화를 읽으며 의존증에 갖고 있던 편견을 조금씩 깨뜨릴 수 있었다.

의존증 당사자들이 사람이 아닌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안타깝고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약물에 의존하는 이들을 모두 범죄자로 단정 짓기 전에 기댈 수 있는 다른 대상과 의존증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배움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의존증을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 역시도 의존증 환자가 아닐까. 그 대상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을 뿐이다.

단언하건대 가장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약물은 알코올이다. 폭력 범죄, 아동 학대,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교통사고 등 수많은 사건의 배경에는 알코올의 영향이 있으며, 그 수는 각성제와 비교할 수도 없다.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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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 슬픔을 안고
문철승 지음 / ㈜소미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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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시집이다.

과거의 아픔을 시로 노래하려는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예쁜 사랑을, 따스한 봄을, 님을 향한 그리움을, 그리고 인생을 노래하는 시로 여겼다.

하지만 시인의 사연을 알고 나서 다시 읽으니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 같다.

시인은 시를 통해 행복과 안도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기나긴 방황을 끝내고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려 쓴 시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99편의 시에서 내 삶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산책에 재미를 들여서인지 [산책길]이라는 시도 좋고

[얼굴]을 읽으며 오늘의 시련이 내일의 웃음이 되기를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방황하던 시절이 있고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이 있다.

그 어두운 시절을 지나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디딘 시인의 용기를 조용히 응원해 본다.

힘들고 지친 날, 따스한 시 한 편이 건네준 온전한 위로에 오늘 하루가 충만해진다.

이렇게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눈으로

새로이 움직인다

숨가뿐 이야기

새 삶으로 태어난다

p. 56 [산책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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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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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우정여행을 떠난 에밀리와 크리스틴.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칠레에서의 마지막 밤, 크리스틴은 여행지에서 만난 남자의 폭행에 저항하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이 일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두 사람은

작년 캄보디아 여행에서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당사자만 바뀐 채. 동이 트기 전 두 사람은

죽은 남자의 시신을 처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에밀리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감 커지고 연인과의 관계 또한 흔들리는데, 설상가상으로 크리스틴은 점점 더 거슬리는 행동을 하며 에밀리를 압박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들이 숨겼던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수사망은 두 사람을 향하게 된다.

에밀리와 크리스틴은 오랜 우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우정이 진실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그녀들은 관계는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관계로 느껴졌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듯한 모습이 불편했다. 불편한 관계는 끔찍한 사건

앞에서 더욱 흔들리게 된다. 누가 좋다 나쁘다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의존과 집착은

독이 되어 그녀들의 삶을 옥죄게 된다. 또한 끔찍한 짓을 두 번이나 저질렀지만 무서울 정도로

밝고 활기찬 크리스틴의 심리가 궁금했다. 그리고 소설이 이어질수록 두 번째 사건은 우발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이 점차 커지게 된다.

유일한 공범이, 그래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친구가 자꾸만 거슬리는 행동을 하며

자신의 삶에 침범한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할까.

소설은 에밀리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녀의 시선에서 사건을 보게 되지만 믿고 사랑하는 든든한

연인이 있음에도 끌려만 가는 에밀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설에서 보이는 그녀들의 과거를 생각하며 자라난 환경 때문이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좀 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에밀리의 모습에 자꾸만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결말에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으며 작가의 세심한 묘사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폭도 깊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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