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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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다리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이다. 


도쿄의 외진 골목에 미스터리한 바 '트랩 핸드'가 있다. 평범한 바텐더처럼 보이는 마스터는 고민 있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한 손님들은 술 한 잔에 마음속 이야기를 하게 되고 과거 유명한 마술사였던 블랙 쇼맨인 마스터는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p. 50
"가즈미는 열세 살, 중학교 일 학년 때 죽었어. 네 살 많은 오빠에게 살해당했지. 그 후로 살아가는 사람은 가짜 가즈미야. 당신 말이 맞아. 여기 있는 난 가짜야."
.
p. 148
"손님도 다 드시면 그만 가보십시오. 도쿄도에서 영업시간 단축 요청이 내려왔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마감해야겠군요. 계산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일행분께 받을 테니까요. 그럼 편안한 밤을. 다음에는 멋진 남성과 함께 찾아주시기를 빌겠습니다."
.
p. 190
"한 마디로 마스터의 사람 보는 눈이 확실하다는 거네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저 거짓말을 꿰뚫어 보는 능력엔 다소 자신이 있습니다. 마술사란 사람을 속이는 데는 전문가니까요."

전 세계 최초로 한국 팬들만을 위한 특별한 이야기를 보여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보인 새로운 히어로는 전직 마술사이자 현직 바텐더인 가미오 다케시다. 캐릭터 설정부터 기대감은 한층 높여준다. 블랙 쇼맨은 과거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이들의 의뢰를 접수한다.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일부터 신기술 등장까지 절묘한 트릭이 유쾌하게 드러난다. 


세 편의 단편을 통해 블랙 쇼맨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시대를 반영한 배경부터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예상을 벗어난 미스터리까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일상의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를 작가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타인의 사정에 무심한 듯 도움을 주는 마스터 캐릭터에 자꾸만 눈길이 쏠린다. 작가 본인도 현재 


'블랙쇼맨'이라는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앞으로 이 시리즈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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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시스템 - 물·전기·인터넷,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관한 기발한 이야기
댄 놋 지음, 오현주 옮김, 이기진 감수 / 더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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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물·전기·인터넷 등 익숙해져서 당연시 여기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래픽으로 담고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물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모두가 쓰고도 충분한 물은 어디서 오는지, 인터넷이란 실제로 무엇인지, 전기가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가장 특색적인 부분은 그래픽 논픽션이라는 사실이다. 책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는 주제가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생한 그림과 함께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글자로만 설명되어 있는 것보다 그림을 통해 한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물·전기·인터넷 등에 대해 의문점을 갖지 않았다. 어릴 땐 간혹 정전이라도 나면 그 순간 전기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지만 전기가 다시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사용하기 바빴다. 무언가 하나라도 완전히 멈춰버리기 전까지는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에 스며든 시스템은 무엇이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지 등을 풍부한 설명과 함께 이번 기회에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가 하려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한다. 생활은 한층 더 편해졌지만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과 같은 문제가 생겨났다. 따라서 시스템을 이해하는 동시에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의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지구 순환 시스템을 역사적 과학적 환경적 관점에서 폭넓게 이해하려는 개인의 노력에서 시작하여 발달과 보존 사이의 균형을 찾으며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사회적 국가적 노력이 더해진다면 지속가능한 발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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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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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면서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렇기에 기후환경, 기후 위기 등의 주제가 나오면 괜스레 한 번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환경 전문 기자가 쓴 이 책은 환경과 관련한 여러 사건들의 실제 취재기와 뒷이야기를 소개하고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한 여러 사례를 정리해서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은 크지만 그에 비해 실천력은 한참 부족하다. 환경을 위한다는 핑계로 텀블러와 다회용 컵을 이용하지만 플라스틱 빨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재활용 쓰레기를 줄이려 시도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배달 음식에 익숙해지면서 플라스틱 용기는 점점 더 늘고만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의 안녕을 걱정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깨워준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환경 덕후로 살아남기 위한 과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은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적절한 팁을 건넨다. 일과 일상에서 환경에 대한 균형을 잡는 것부터 사회 곳곳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또한 경제와 환경을 둘러싼 딜레마를 제시하며 에코라이프의 여러 해프닝을 보여준다.


책 속에서 보인 저자의 자기모순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은 저자의 에코라이프가 정겹게 느껴지는 건 반가운 일이다. 사실 환경 문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는 현실에서 환경친화적 삶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개인이 노력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지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만 비닐로 겹겹이 포장된 채소나 종이 상자와 비닐로 이중 포장된 번들 상품에 익숙해져 있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저자는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시민의 기본 교양이며 깊게 사고하는 힘을 길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기대감이 우리 사회의 여러 환경 갈등을 풀어내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환경을 말하려면 뜨거운 마음을 조금 더 차갑게 식혀야 하는 시대이다. 당위성만 내세우기보다 현실적인 대안과 지치지 않고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하다.

p. 91


환경 교육이란 결국 나와 내 주변 환경에 대해 고민하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나아가 주변 생명과 환경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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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지음, 양윤옥 옮김 / 청미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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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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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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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매매를 생업으로 어린 자녀를 둔 미혼모가 연이어 살해당하고 한 식품회사 공장에 세 번째 살인을 암시하는 협박문이 도착한다. 사건은 성매매 여성 연쇄살인사건으로 확대되지만 TV 방송국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피해자들의 배경을 교모하게 숨긴다.


그러던 중 방송국으로 범인이라 주장하는 이의 전화가 걸려오고 죽은 여자들이 성매매를 업으로 하며 어린 자녀를 학대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라고 지시한다. 사건을 취재하던 프리랜서 기자 '기베 미치코'는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처음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씁쓸함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이어졌다. 작가는 장르 특성상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여성의 성 노동 착취와 복지의 사각지대, 이로 인한 아동 방임과 점점 더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까지 비극적인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의 연쇄 사건의 범인으로 세 사람이 검거된다. 작가는 빈민가 출신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자라온 스에오와 의사 집안의 명문대 출신 엘리트 청년 쓰바사를 대립시킨다. 극명한 성장 배경의 차이에 따라 사건의 범인은 스에오여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주변인들의 증언이 이어질수록 범인이라는 확신이 사라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함정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개미지옥이 바로 태어난 그곳이다. 태어나 자란 환경이 비극의 시작이라면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빈곤과 폭력의 구조적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 소설에 기막힌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은 없다. 대신 작가는 사건보다 사람이 가진 사연에 집중하게 만들어 '도덕과 정의, 약자에 대한 연민이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범죄 자체로는 분명 죄를 물어야 한다. 누구도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켜켜이 쌓아 올린 인물들의 가슴 아픈 서사는 그들의 행위를 마냥 비난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 미치코의 선택에 안도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p. 93
가난과 빈곤은 다르다. 가난은 돈이 없는 것뿐이다. 하지만 빈곤이란 인프라가 없는 땅과 같다.


※ 모모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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