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지, 개미지옥
모치즈키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모모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매매를 생업으로 어린 자녀를 둔 미혼모가 연이어 살해당하고 한 식품회사 공장에 세 번째 살인을 암시하는 협박문이 도착한다. 사건은 성매매 여성 연쇄살인사건으로 확대되지만 TV 방송국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피해자들의 배경을 교모하게 숨긴다.


그러던 중 방송국으로 범인이라 주장하는 이의 전화가 걸려오고 죽은 여자들이 성매매를 업으로 하며 어린 자녀를 학대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라고 지시한다. 사건을 취재하던 프리랜서 기자 '기베 미치코'는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처음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씁쓸함과 사회에 대한 분노가 이어졌다. 작가는 장르 특성상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여성의 성 노동 착취와 복지의 사각지대, 이로 인한 아동 방임과 점점 더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까지 비극적인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의 연쇄 사건의 범인으로 세 사람이 검거된다. 작가는 빈민가 출신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자라온 스에오와 의사 집안의 명문대 출신 엘리트 청년 쓰바사를 대립시킨다. 극명한 성장 배경의 차이에 따라 사건의 범인은 스에오여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주변인들의 증언이 이어질수록 범인이라는 확신이 사라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함정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개미지옥이 바로 태어난 그곳이다. 태어나 자란 환경이 비극의 시작이라면 이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빈곤과 폭력의 구조적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 소설에 기막힌 반전이나 충격적인 결말은 없다. 대신 작가는 사건보다 사람이 가진 사연에 집중하게 만들어 '도덕과 정의, 약자에 대한 연민이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범죄 자체로는 분명 죄를 물어야 한다. 누구도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켜켜이 쌓아 올린 인물들의 가슴 아픈 서사는 그들의 행위를 마냥 비난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 미치코의 선택에 안도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p. 93
가난과 빈곤은 다르다. 가난은 돈이 없는 것뿐이다. 하지만 빈곤이란 인프라가 없는 땅과 같다.


※ 모모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