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의 인사 소설, 향
장은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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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의 '소설, 향' 열한 번째 작품.

외로움과 안온함을 동시에 느낄 수 이는 소설이다.

어느 날 동하의 집으로 세주의 부탁이 도착한다.

일 년 전 헤어진 그녀에게서 도착한 부탁은 기묘한 존재감을 뽐낸다.

침대 옆에 뜬금없이 놓인 새빨간 레트로 냉장고와 화분 하나.

세주가 술 보관용으로 사용했던 냉장고 안에는 책이 가득 차 있다.

세주는 왜 동하에게, 본질적으로는 헤어진 전 남자친구에게 냉장고와 화분을 부탁했을까.

세상 끝을 보고 싶었던 세주가 다시 돌아와 그를 찾아갔을 때

극적인 만남이 기다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는 조금 더 어른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을 차분히 보여준다.

만남과 이별, 다시 재회하기까지 서른을 앞둔 두 사람은 조금씩 성장해 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타인에 대한 이해로 넓어졌으며 

남자와 여자로 한정되었던 감정은 인간에 대한 이해로 감정의 깊이를 더해갔다.

사랑이 끝나고 이별의 아픔을 겪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우정과 신뢰라는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두 사람이 다시 마주 앉아 서로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냈을 때

그 미묘한 거리감이 오히려 고마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 장면이 참 좋았다.

세주와 동하가 각자 자기 세계의 중심으로 걸어갈 때 이들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을 바라봐 줄 거라는 믿음과 신뢰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과거의 어느 날 동하같은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과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동시에 생겨났다.

작가는 헤어진 관계가 남겨준 회복과 연대를 통해 한 뼘 더 성장한 내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정과 신뢰의 작별인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넬 것이다.


#세주의인사 #장은진 #작가정신 #작정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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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증여의 철학
지카우치 유타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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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대가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을 하거나 기꺼이 도움을 건네는 선한 마음은 각박한 세상이지만 여전히 살만하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과 그런 것의 이동을 '증여'라고 칭한다. 이러한 증여를 통해 우리 삶의 의미와 잃어버린 가능성을 되새겨 준다. 증여는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자가 맺는 모든 관계 또한 증여에 속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행위를 통해 선의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토머스 쿤의 변칙 현상, 카뮈의 시지프 신화, 그리고 셜록 홈스의 추리 기법까지 인용하여 증여의 개념과 본질을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저에 증여가 깔려 있고 시장 경제 속에서도 인간다움이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증여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사회로부터 누군가의 증여를 받고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겪게 되는 모든 선의와 태도는 당연히 내가 뿌린 씨앗의 결과라고 여겼다. 누군가의 직업적 의무감, 자부감, 직업의식, 윤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선물이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들을 이름 없는 영웅들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증여를 전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서도 증여의 철학은 사회 질서와 구조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증여란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는왜선물을줄때기쁨을느끼는가 #지카우치유타 #다다서재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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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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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진 내털리는 모든 회사 직원들이 좋아한다. 옆자리에 앉은 돈 쉬프는 내털리와 친해지고 싶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돈 쉬프는 조금 이상한 여자다. 사람보다 거북이를 좋아하고 하루 24시간을 초 단위로 계획하여 움직이며 식사는 한 가지 색으로 구성해서 먹는다. 매일 8시 45분이 되면 출근하는 그녀가 어제 급히 할 얘기가 있다며 메일을 보냈다. 오늘 2시에 만나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기로 했지만 8시 46분이 되어도 돈은 출근하지 않았다. 


뇌 손상 의학 전문의라는 다소 독특한 이력의 저자는 섬세하면서도 생생한 묘사를 통해 장르소설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사무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소설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야기는 '돈'이 사라진 직후부터 급격하게 진행된다. 경찰은 돈의 집에서 발현된 지문과 동료들의 증언 때문에 내털리를 의심하고 추궁한다. 그녀는 자신을 모함하는 동료들의 증언에 점점 불안감을 느끼고 코너에 몰리게 된다.


소설은 내털리와 돈의 상황을 교차로 보여주며 상반된 증언을 이어간다. 내털리의 시선을 따라갈 땐 돈의 이상한 행동들과 사라진 이유가 궁금해진다. 반면에 돈이 친구 미아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내털리의 진심이 점점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누구 말이 진실일까.


이 소설은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 한다. 다소 예상을 벗어난 결말에 아쉬울 뻔했지만 이어지는 에필로그는 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모두가 멀리하는 여자의 실종과 모두가 사랑한 여자를 향한 의심은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고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묘한 카타르시스와 긴장감을 안겨준다. 예상치 못한 반전은 장르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또 한 번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더코워커 #프리다맥파든 #해피북스투유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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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스 콜 - 주의력 자본주의는 우리 시대의 비즈니스와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크리스 헤이즈 지음, 박유현 옮김 / 사회평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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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안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온몸을 휘감는다. 수시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만 같다. 일을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자꾸만 스마트폰에 주의력을 빼앗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나름대로 디지털 디톡스에 도전해 보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현시대에 빼앗긴 주의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방송 진행자인 저자는 인간의 주의력 작동 방법을 분석한 연구들을 폭넓게 인용하며 주의력 시대의 본질을 파악하고 주의력이 상품화되는 과정과 경쟁이 현대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특히 개인의 SNS가 소통의 창구가 된 현대 사회에서 주의력을 둘러싼 쟁탈전을 우려하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며 주의력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다.


주의력 자본주의에서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단 1초라도 주의를 끌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를 정치에 이용한 사람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불쾌한 반헌법적인 주장을 하며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진지한 토론보다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부 후보는 진정성 있는 공약을 내세우기 보다 자극적인 언행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불쾌감을 조성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현명한 판단을 하지만 소수는 어디에 주의를 기울어야 하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산업화 시대가 정보화 시대로 전환되면서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로 인해 주의력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책이나 서류 등과 같은 물리적으로 보관된 자료를 통해 정보를 수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인터넷 연결망을 통해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자와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비슷한 시대 전환기를 경험했기 때문인지 예전과 달리 쉽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의력 시대에 개인이 겪게 되는 우울감과 고립감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고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주의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접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고 종이 신문을 구독하여 기사를 정독함으로써 각자가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찾아 나서라 말한다.


터치 몇 번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들이 문 앞으로 배송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경험의 가치를 잊고 있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에 홀린 듯 끌려다니던 나를 깨울 시간이다. 의지를 되찾아야 각자가 원하는 곳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100% 공감한다. 주의력 시대에 개인과 사회가 함께 고민할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이렌스콜 #크리스헤이즈 #사회평론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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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채팅이고요, 남편은 일본사람이에요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이람 지음 / 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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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밥 먹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살아한다는 마음'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마음. 그 마음이 겹치면서 점점 서로를 닮아가는 게 아닐까.

p. 31

젊은 시절에 낯선 나라에서 국적이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지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영화같은 상황이 내게 일어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에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이 났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직도 잘 모른다. 타인을 만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내가 하는 사랑에도 관심이 없는데 하물며 타인의 사랑이라니. 


하지만 '일본사람과 채팅으로 결혼'이라는 키워드는 내 관심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한때 일본 문화에 심취해 있었고 그 덕분에 여행 에세이에 공저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일본 생활기는 관심사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채팅과 결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 여성, 미혼'으로 살아온 저자는 채팅 앱을 통해 한 남자를 만난다. 벚꽃 프로필 사진에 꽃구경 다녀왔냐고 물어본 그 남자와의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진다.


심드렁하게 책을 집어 든 나는 영화같은 이야기에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평범한 일상이 흥미진진하다. 


퇴사를 꿈꾸며 복권을 사고 마늘 데이에는 마늘을 다져 냉동고에 쟁여두고 좁혀지지 않는 가족 간의 갈등에 힘들어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로맨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 모습이 그저 신기하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마냥 행복하지 않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만큼 가치관과 성격도 다르고 부딪히는 부분도 종종 생긴다. 부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차이를 좁혀 나간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는 관계에 서툰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촉매제가 되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내게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우고 보듬어 줄 인연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에세이 #에세이추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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