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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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자살로 혼자 남겨지게 된 이의 삶은 어떨까. 소설 <말라가의 밤>은 아름다운 해변 '말라가'를 배경으로 남겨진 이의 기나긴 방황과 좌절, 그리고 회복을 보여준다. 형우는 과거의 기억 중 찬란했지만 후회스러웠던 순간들을 돌아보며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의 죽음을 마침내 이해하려 애쓴다.


주인공인 형우는 생사의 경계에서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아홉 살의 형우는 아빠의 부재로 다소 생활고를 겪지만 엄마와 동생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의 따스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열아홉 살의 형우는 동생과의 관계에 대해 회한에 젖어든다. 동생의 의문에 신중하게 대화를 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스물아홉 살의 형우는 엄마와 동생에게 관심과 배려를 하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후회한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

자살 희망자·자살 사별자들의 다이빙 모임이 있습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땐 함께 숨을 참는 것도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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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5

형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잃어버렸던 삶의 기쁨과 의욕을 조금씩 되찾게 된다. 생사의 경계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자살 사별자들과 프리다이빙을 하며 죽음에 대한 충동을 서서히 극복해 나간다. 개인의 고통스러운 삶이 연대를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너무 슬프기에 결코 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소설은 내 안에 있던 슬픔을 기꺼이 끄집어 내며 끝내 그것을 견디게 만든다. 이 작품은 슬픔을 억지로 지우지 않고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말라가의 밤>은 다시 숨을 쉬게 만드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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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불안, 일본에서 답을 찾다 -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찾은 시니어케어 비즈니스 리포트
나미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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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노후의 삶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이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있기에 불안과 걱정은 일찍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렵다고 피하고 미루기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은 인식하고 앞서 경험한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보며 각자에게 맞는 노후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노후를 둘러싼 불안을 감정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불안은 개인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전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일본 사례 또한 단순 비교가 아니라 ‘먼저 늙어본 사회’가 남긴 시행착오의 기록이다. 


저자는 건강·돈·외로움을 키워드로 삼아 시니어를 새로운 고객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는 희망 섞인 낙관이라기보다, 이미 바뀐 현실을 전제로 한 계산에 가깝다. 일본 시니어 산업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저자는 인구 구조 변화와 산업, 소비, 삶의 방식 간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를 바탕으로 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바라본다.


일본의 현실을 통해 돌봄과 복지, 노후 일자리, 평생 일자리, 신탁 제도 등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기 위한 시니어케어 커뮤니티와 비즈니스, 다양한 정책들을 살펴볼 수 있다. 선례가 있다는 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잘 된 정책을 우리 사회에 맞게 변형시켜 노후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저자는 노후를 개인의 준비 부족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가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도 결론 내리지 않는다. 제도·산업·서비스가 맞물려 움직이는 방식을 통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차분하게 구분 지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막연한 걱정이 구조의 문제로 바뀌면서 감당해야 할 범위가 분명해졌다. 초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는 관점 또한 인상적이다. 앞으로 20년 뒤의 삶을 결정하기 위해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이 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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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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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옷장을 정리하는 일이다. 지나간 계절의 옷을 정리하고 다가올 계절의 옷을 꺼낸다. 그리고 입지 않는 옷들은 따로 분류한다. 최소 2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택도 뜯지 않은 옷을 발견할 때면 내 소비 생활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정리한 옷들은 집 근처의 수거함에 넣는다. 분명 어딘가에서 쓰임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떠나보낸다. 괜찮은 상태의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를 한 적도 있지만 편의성 때문에 수거함을 종종 이용한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컸다. 내가 보낸 옷들이 잘 활용되고 있을 거라는 환상 속에서 헌 옷들을 함께 추적하기로 했다.

책은 우리가 믿어온 ‘재활용의 선순환’을 차분하게 해체한다. 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실제로 어떤 경로를 거쳐 이동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옷들이 재사용되지 못한 채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기자들이 부착한 추적기가 가리키는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버린 옷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단순히 옷 한 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소에서 또 다른 부담이 되어 쌓여간다는 사실은 재활용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깨뜨린다. 세 저자들의 추적기는 개인의 소비 습관만을 문제 삼지 않고 제도와 산업 구조의 층위까지 세밀하게 살펴본다. 수거함에 넣는다는 행위가 그동안 세상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추적기의 결과를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옷이 이동하는 거리와 그 과정에서 겪는 분류·폐기 단계는 상상보다 훨씬 거칠고 복잡하다. 내가 떠나보낸 옷들이 누군가에게 다시 쓰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되는 장면들은 막연한 선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세 기자의 추적기는 재활용이라는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던 익숙한 정리 과정도 이제는 같은 의미로 느껴지지 않는다. 옷장을 정리하는 일에 예전과는 다른 무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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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임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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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욘 포세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소설은 첫 문장부터 작가 특유의 미니멀리즘, 절제된 산문, 반복과 리듬이 두드러진다. 작은 배와 큰 배, 사랑과 죽음, 수동적인 남자들과 단단한 여자라는 소설의 대략적인 키워드가 더욱 궁금해진다.


외딴 바닷가 마을 바임에서 홀로 살아가는 남자는 어느 날 바늘과 실을 사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 여정은 불쾌함만 남기게 되고 다시 돌아오는 배에서 젊은 날 사랑했던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을 떠나온 상태로 남자에게 함께 가자고 말을 건넨다. 그 순간 남자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두 사람의 뒤에는 전 남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각자의 단조로운 삶에서 여자의 등장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이 관계의 끝은 어디로 향할까. 감정이 이끌리는 대상에 따라 바라는 결말은 달라지게 된다.


노르웨이 작은 마을 바임에서 펼쳐지는 세 인물들은 이야기는 앞으로 이어질 후속작들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바임' 3부작의 아름다운 서막인 이 소설은 고요하지만 잔잔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빠른 호흡에 익숙한 나에게 초반의 분위기는 다소 심심하게 다가왔다. 얼마 후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차분히 따라가 보니 고요한 일상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긴장감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백으로 가득한 결말은 머릿속에 수많은 그림을 그려낸다. 불완전한 세 사람의 상태는 선택의 무게를 보여준다. 감정적 흔들림, 정해지지 않은 미래, 붙잡지도 놓지도 못하는 두려움. 이들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을 마주하게 된다.  특별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 방식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각자의 결핍과 흔들림이 서로 다른 잔향으로 남아 독자는 그 여백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세 인물이 남긴 파문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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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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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분명히 집 밖을 나서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어느새 까맣게 잊혀진 경험 또한 낯설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이 들면 원래 다 그런 거겠지'라며 애써 합리화한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뇌의 인지 기능이 사라질까 두렵다.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 있다. 신경퇴행질환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인 데일 브레드슨 박사는 스스로 노력한다면 뇌의 인지 기능을 지키고 더 나아가 뇌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 뇌를 보호하고 늙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어떤 변화든 기꺼이 해보고 싶다. 이 책은 뇌 건강에 대한 내 염려증을 제대로 건드렸다.


돌봄을 받던 나이에서 돌봄의 주체가 된 지금, 연로한 부모님의 건강은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치매는 보호자로서 가장 두려운 질환이다. 내가 챙길 수 있는 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시라는 잔소리와 양질의 식사다. 나를 포함하여 가족 구성원의 연령대가 고령을 향해 가는 시점에 <늙지 않는 뇌>는 뇌 노화를 비롯한 건강한 삶을 향한 실천적인 가이드였다. 


저자는 총 14장에 걸쳐 뇌 건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 뇌를 늙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경고를 던지고 각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뇌가 좋아하는 몸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뇌가 좋아하는 식생활, 운동, 휴식과 자극 등을 통해 늙지 않는 뇌를 만들고 인체의 노화를 되돌리는 재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뇌 과학은 막연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되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노화하는 건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그 속도를 늦추고 젊고 건강한 시간을 누리는 건 사람마다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노화를 두려운 질환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변화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늙지 않는 뇌>는 나이와 관계없이 어제보다 더 젊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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