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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다 쭈꾸미 통신 -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
박형진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나는 수도권 중소도시(요즘에는 꽤 커진 모양이지만)의 나름대로 중심가(요즘은 구시가로 쇠락해가는 모양이지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서울의 정서도 시골의 정취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토속적인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글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쉽게 빨려들지 못한다.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세계를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는 것이나 이국 도시의 관광 안내서를 읽는 것이나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것이야 비할 수 없지만...
그렇다 해도 철따라 밥 짓는 것이나 물 긷는 것이나, 사는 일 하나하나가 이야깃거리가 되다니 산다는 게 참 재미있구나 싶다. 하나하나 가만 들여다보면 재미없는 먹을거리가 없구나. 나는 왜 이렇게 유장하게 글을 쓰지 못할까.
한 가지 정말 공감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상추쌈에 대한 것이다.
상추쌈에 대해서 꼭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다. 맛있게 먹으려면 쌈장도 맛있어야지만 상추를 많이 싸야 된다는 말이다. 열 장 정도는 못 해도 일곱여덟 장 겹쳐 싸야 상추의 제 맛이 나지 달랑 한 장 싸서 한 입에 밀어넣고 먹어 봐야 맛이 나지 않는다.(254쪽)
작년에 시어머니께서 일이 있어 서울 오시는 길에 우리 집에 묵으셨는데, 그때 된장이니 국거리와 함께 상추도 가득 뜯어 오셨다. 도시의 슈퍼에서 파는 뻣뻣한 것만 봐왔기에, 처음엔 그 연하고 말랑말랑한 잎이 상추인 줄도 몰랐다. ^^;
그 상추를 씻어 쌈으로 먹는데, 내가 한두 장을 손바닥에 곱게 펴 얹고 밥과 된장을 싸서 먹자, 어머니가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며 한 줌 가득 집어다 대충 손바닥에 얹고 밥, 된장을 올려 싸서 잡수어 보이셨다.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열 장 정도는 못 해도 일곱여덟 장” 정도는 겹쳐 싸서 드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먹어 보고 나서 알았다. 아! 상추란 것이 그렇게 고소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한두 장만 먹었을 때는 된장 맛에 상추 맛이 묻혀버렸던 것이다. 한두 장씩 먹으려면 숫제 된장 없이 먹는 게 낫다. 나중에는 그 상추 맛만 고스란히 맛보고 싶어서 정말 된장 없이 상추에다 밥만 싸서 먹었다. 물론 밭에서 막 따온 어린 상추여서 그렇다. 슈퍼에서 파는 뻣뻣한 상추를 열 장씩 먹다가는 목이 막혀버릴 것이다. -.-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저 구절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