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울어라! 나는 사진 찍을 테니까”
[한겨레 2006-10-31 17:54:23]

[한겨레] 아주 특별한 사진전이 열린다. ‘참여 작가’ 20명은 탈성매매여성 쉼터인 ‘막달레나 공동체’의 여성들.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쉼터 여성 거의 모두가 참여한 셈이다. 11월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블루’에서 그들이 직접 찍은 소박하고 따뜻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전의 제목은 ‘모든 것이 되는 시간들’. 그 ‘시간’의 시작은 지난 6월 쉼터 자활 프로그램의 하나로 사진 강좌가 열리면서부터다. 전시장에 걸리는 사진은 30컷 안팎이지만 스스로 삶을 기록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면서 그동안 찍은 사진은 수천 장을 헤아린다. 생전 처음 치마를 입고 빙글빙글 도는 쉼터 동료의 사랑스런 모습, 저녁 놀을 바라보는 룸메이트의 강인한 실루엣, 이름 모를 꽃 무리, 물만 먹고도 씩씩한 고구마순…. 사각 프레임 안에선 작고 보잘것없는 일상이 저마다 빛을 내고 있었다.
강사인 프리랜서 사진작가 김정하(37)씨는 아예 9월부터 ‘예비작가들’과 24시간 생활을 함께 했다. 김씨는 일하면서 끼니 거르기를 밥먹듯 하다 영양실조 진단을 받았다는 얘길 듣고 이옥정 대표가 “우리랑 밥 먹자, 입소해라”고 말하자 그날로 짐을 싸들고 들어왔다. 맛있고 푸짐하기로 소문난 ‘막달레나표 밥상’ 덕분인지 몸무게는 그새 2㎏이나 늘었다.
“제 편견을 참여자들이 확 깨줬어요. 오히려 제가 교감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처음엔 어설프게 가르치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도 있었는데 식구들 전부가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애정을 갖고 예뻐해준다는 것을 알았어요.”
참여자들도 많이 바뀌었다. 이번 사진전에서 가장 인기있는 ‘모델’이 된 요안나(40)씨. 처음엔 사진 배우기도, 심지어 사진 찍히는 것도 싫다며 화를 냈다.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카메라 렌즈와 자연스럽게 시선을 맞춰가며 포즈도 잡는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 ‘내가 찍은 사진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며 “이렇게 찍으면 예쁘겠네, 노을을 찍으면 좋겠다 등등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 했다. 소극적인 성격의 안아무개(65·지체장애 1급)씨는 쉼터 사람들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울 때도 “그래 너희는 울어라! 나는 사진 찍을 테니까”라고 당차게 말하기도 하고 “이리와서 좀 서봐”라고 남에게 요구하는 법도 처음 배웠다. 말 없던 송아무개(22)씨는 갈수록 수다쟁이가 돼갔다. “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아! 나도 잘 하는 게 있구나!”
엄상미 활동가는 “사진 찍기를 통해 실무자, 강사, 참여자 모두 마음의 치유가 이뤄진 것 같다”며 “사진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언제나 남의 피사체가 돼왔던 사람들이 피사체를 찾는 주체가 되면서 당당함과 여유로운 시선을 배웠다는 얘기다. 사진전에 걸릴 사진들 가운데 ‘피해자’나 ‘편견’은 설 자리가 없었다. 단지 ‘지금 이순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사진전 후원계좌: 제일 325-20-206723 막달레나공동체, 신한 395-05-006911 (사)막달레나공동체)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막달레나공동체 제공
문의 02-6401-8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