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시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서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은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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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을 당한 신동문 시인의 고향인 충복 청원군 문의 마을에 가서 장례식을 주관했던 사실을 배경으로 한 시이다.
고은 초기시의 허무주의를 벗어나 사회적, 역사적 의식을 갖고 민중적 각성을 보이고 있는 중기시의 초기작이다.
1연은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가를, 2연은 죽음과 삶의 길이 하나임을 말하며,
죽음을 통해 까달은 삶의 진지함과 경건함을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