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 고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莫)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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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방황의 시기를 지내고 얻은 마음의 평화를 노래.
온 겨울을 떠돌다가 눈 내리는 풍경, 눈 덮인 길을 보면서 처음으로 평화를 느낀다는 내용.
즉, 작가는 이 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정신적 방황을 거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은의 허무주의적 시적 경향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