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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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다.

부둣가의 작은 오두막 안, 대나무와 등나무 줄기로 촘촘하게 엮인 그 밀폐된 공간에서 무호흡잠수의 세계챔피언인 자크 르베르디-나중에 이 이름은 '공포'와 동의어가 된다-는 현행살인범으로 체포된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의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이자, 독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악인의 정체'가 이야기의 시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오른팔을 묶어두고 경기를 시작하는 복서와 같다. 

2. 공포는 갇혀있다.

이것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데, 첫 번째는 살인자 자크 르베르디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살인자가 갇힘으로써 독자의 긴장감이 완화될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으로 갇혀있는 살인자의 살해장면을 역추적해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이상한 긴장이 이야기의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지방 신문의 기자인 주인공 마르크에게는 살인자 르베르디를 향한 혐오의 감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살해방법을 추적해가면서 르베르디와의 묘한 동질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그것 역시 묘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갇혀있다'의 두 번째 의미는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말할 수 없다.

3. 작가와 독자의 호흡 싸움

앞의 기이한 설정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의 서사는 독자의 호흡법을 무시해버리는 태도로 일관한다. '이 부분에선 이런 장면이 나오겠지', '살해방법은 지금쯤 가르쳐줄거야', '여기서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데'라는 독자의 추측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억측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은 살인자가 '무호흡잠수의 달인'이라는 것과, '공포는 갇혀있다'는 것의 확장된 의미로, 작가가 책 전체에 부여하고자 했던 아우라가 일종의 '호흡곤란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독자는 끝까지 가파른 호흡으로 예상치 못한 사건의 앞에 서게 된다. 이런 서사법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내 다음 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4. '검은 선' 안의 '검은 선'

(부분 스포일러)르베르디의 살해방법을 완전히 이해한 마르크는 떨림과 환희를 느끼며 이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다. 동시에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르베르디와의 연결점을 모조리 끊어버린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이 소설은 또다시 새로운 국면 하나를 맞게 된다. '메타 소설'이 그것이다. 작가 그랑제와 주인공 마르크의 닮은 꼴 이력, 그리고 또 같은 이름의 책. 어쩌면 이것은 부분적으로나마 실제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의심. 그리고 증폭되는 불안. 독자가 이 불안을 느낄 때 르베르디가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고, 사건은 범행을 역추적하는 수수께끼 풀이에서 빠져나와 두 번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진짜 '공포'와의 대면, 쫓고 쫓김, 모든 것을 향한 의심, 그리고 세 번째 반전을 향한 전개로.

5.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박살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겨우 두 마디만 해줄 수 있다. 첫째, 키-페이지(Key-page)는 2권 155p, 334p다. 둘째,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들여다보게 된다." -니체, '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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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7
한스 페터 리히터 지음,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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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2차세계대전 전후소설 중 최고였습니다. 감히 평생을 가까이 두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아직은 이웃으로 지내던 어느 날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습니다. 이 작은 유대인 꼬마의 성장은 사회의 퇴화와 걸음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독일이 권력과 폭력, 광기에 뒤덮일수록 '프리드리히'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가볍게 읽히는 소설인데, 문학적 상징과 비유가 잘 녹아내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난장이 눈사람- 작품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며, 무기력한 유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후에 '프리드리히'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화자인 '나'의 망치놀이- 집단의 권력이 갖는 광기에 대한 상징이며, 그것이 '프리드리히'라는 개인적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혼란스러워지게 됩니다.

레쉬의 슈나이더 유품 도둑질- 죽은 사람의 물건을 훔침으로써,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대인 박해를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이것 말고도 더 풍부한 내용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게 가장 깊이 남게 될 장면은 바로 사람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사회가 폭력적일수록 인간은 더 아름다워지나 봅니다. '아브라함의 가게에서 고집부리며 물건을 사간 노파', '옳은 판결을 해 준 멋진 판사', '프리드리히를 사랑한 헬가'...... 아무래도 이 비극적인 책은 저에게 수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로,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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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1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
정재승.전희주 지음 / 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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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의 정민', '투자의 박경철', '만화의 이원복', '생태학의 최재천' 그리고 '물리학의 정재승'.

믿어 의심치 않는 분야의 달인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펴낸 책은 덮어놓고 보았습니다.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때로 깊이의 폭과 넓이의 크기는 다를지언정, 언제나 제가 모르는 것들을 제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사유의 깊이 대신 방대한 넓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명불허전, 그 넓이는 깊진 않을지언정 결코 얕지도 않습니다. 탄탄합니다. 그것은 이 책이 이야기해주고자 한 지식이, 정재승이 풀어준 탄탄한 과학/심리학/통계학을 기저로 한 '이유 있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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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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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는 '저녁에'라는 김광섭 시인의 유명한 시의 싯구 일부를 제목으로 차용했습니다. 1969년에 발표된 시입니다.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이야기하는 시절이 언제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 책을 드는 것만으로 우리는 두 세 걸음쯤 뒤로 물러서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또는 그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완전히 유치해져보자는 암묵적 동의가 성립되고 나면, 가슴 먹먹한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대학생이 군사정권의 시절에 우연히 만난 여학생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떤 이유에선지 그를 멀리합니다. 인연이 없었던 걸까요? 그의 인생의 몇 페이지에 그녀의 흔적이 남습니다.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할만큼 충분히 가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이 없는 시대라, 연락처를 알지 못하면 만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수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와 그녀는 몇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상대방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는 훗날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삶이란 그 여자 박은영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립고, 언제나 정체불명이고,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그런 것... ...아닌가?

그에게 그녀 박은영은 청춘의 가장 찬란한 무엇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에게 청춘은 눈을 가린 채 횃불을 들고 있듯 어리석은 시간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엇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청춘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이이기에, 그의 진실함에 코 끝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청춘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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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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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승우 선생은 위와 같은 제목의 글로 강의를 대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은 마이크를 잡을 이유가 없거니와 실은 잡아서도 안 된다. 할 말이 없는 사람의 마이크는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여행자'를 읽으면서 수도 없이 위의 글이 생각났던 건, 도대체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프롤로그를 보며, 앞부분 여행 전의 작은 에세이 '도쿄의 추억'을 보며 작가에게 느꼈던 단단한 필력이 왜 무목적 여행에 쓰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한 권의 책은 보름 정도 도쿄를 여행하며 쓴 것 같습니다. 여행하는 내내 선글라스와 구두, 명동에 쇼핑을 나온 듯한 옷차림을 고수하더군요. 게다가 일본의 거리를 찍은 사진은 그 나라의 대외홍보용으로 보입니다. 관광객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진은 동행 카메라맨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손미나 자신의 사진이 너무 많아서, '전직 아나운서인 유명 저자 손미나'의 여행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명백했습니다.

책의 말미에 가서야 그 모든 오해가 사실임이 밝혀집니다. 사진은 작가의 남편이 찍었더군요. 그리고 일본관광청과의 제휴가 있었던지, 일본관광청이 책에 후원을 했더군요. 또, 마지막으로 너무 화가 났던 것은 손미나 자신이 자신있게 일본현지인에게 내뱉은 말입니다.

"아 네. 저는 도쿄에 관한 책을 쓸 거예요. 그래서 도쿄를 여행 중입니다." -153p

정말... 할 말이 없게 만들더군요. 명강연자 이승우 선생의 글을 변형해 마지막으로 손미나 저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행자가 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여행을 하기 때문에, 여행을 하는 동안 여행자로 불리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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