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폭등세를 보이면서 외환시장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되면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추세지만 우리나라의 원화가치는 주요국 통화에 비해 과도하게 하락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들어 30%가까이 올랐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버금갈 정도의 환율폭등이 왜 발생하는지, 우리 경제 전반에는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 정부의 환율정책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1.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원화가치가 더 떨어지는 이유는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원화가치 하락폭이 더 큰 것은 국내 외환시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일 현재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지난 연말에 비해 28.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유로화 가치는 6.7% 하락했고, 영국 파운드화(-13.9%), 호주 달러(-22.0%), 태국 바트(-12.8%) 등도 달러화에 비해 가치가 떨어졌다. 반면 엔화 가치는 오히려 14.1% 올랐고, 중국 위안화 가치도 7.3% 상승했다.
 이처럼 원화가 약세를 보는 것은 경상수지 적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들어 8월까지 126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상수지 적자폭은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탓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점도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비중은 30%대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외환위기 경험도 외환시장의 달러 수급을 왜곡시키고 있다. 외환위기에 대한 경험 때문에 가뜩이나 달러가 부족한 상태에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심리적 동요가 커 환율이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환율이 오르면 경제와 가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나
 환율 상승으로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기업들은 싼 값으로 물건을 만들어 수출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교과서적인 이론일 뿐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에는 꼭 들어맞지 않는다. 우선 환율이 상승하면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오르면서 생산단가가 높아진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 부품·소재의 수입비중이 높은 산업들이 많은 우리 경제 특성을 감안할 때 수출이 늘어난다 해도 실익이 없다. 외국에서 부품을 사들여야 하는데 원화가치가 떨어져 같은 물건을 더 비싼 가격에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계의 주름살은 더 커진다. 환율상승으로 원유·곡물 등 원자재 수입단가가 높아지고 이는물가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등세를 보이면 달러뿐 아니라 원화도 시중에 잘 유통되지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기업, 가계 등 실물경제로 돈이 잘 흐르지 않게 되는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리거나 빌려준 돈의 회수에 주력하게 되면 흑자를 내고도 도산하는 기업들이 생기게 된다. 기업도산이 늘면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도 증가하게 돼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더 죄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금융시장 신용경색→대출회피, 대출 자금회수→기업 흑자도산→금융기관 부실채권 증가→신용경색 심화로 이어지는 흐름이 되풀이되면서 실물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3.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외환보유액은 충분한가
 현재 금융시장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하고, 달러가 부족해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와 현재의 경제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환위기 당시 400%에 이르던 기업 부채비율은 현재 100% 수준이다. 일부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기업의 연쇄 도산으로 인해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던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9월말 현재 2397억 달러에 이르고, 6월말 기준 유동외채(1년 이내에 갚아야 할 장·단기 외채)는 2223억 달러다. 외환보유액에서 유동외채를 제외하면 실제로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은 174억 달러 밖에 되지 않아 불안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 설명은 다르다. 단기외채의 45%는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들이 본점에서 빌린 달러 자금이어서 실질적인 유동외채는 1200억달러 수준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또 외환보유액 전체가 1주일 내 현금화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헐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4.정부의 외환정책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늘고, 수출이 증가하면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이 상승하면서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상승과 맞물리면서 물가가 급등했다. 물가 폭등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다시 끌어 내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처럼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에게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됐고, 환투기 세력은 돈 벌 기회가 많이 생겼다.
 예를 들면 정부가 원·달러 환율을 1000원선으로 유지하려고 하면 투기세력들은 달러를 사모아 1020원대까지 끌어올린다. 그러면 정부가 1000원대를 유지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헐어 달러를 팔아 환율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를 외환시장 개입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투기꾼들은 달러를 팔아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정부가 자꾸 외환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나라의 ‘곳간’ 격인 외환보유액은 감소하는 반면 투기세력들은 돈 벌 기회가 많이 생긴다.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환율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키코(KIKO)로 불리는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은 왜 문제인가
 수출 기업들은 환율이 상승하면 환차익을 얻는다. 외국에 물건을 팔고 받는 달러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반면 환율이 하락하면 손해를 입는다. 외환(外換)과 헤지(hedge·위험 회피)의 합성어인 ‘환헤지’ 상품은 환율 상승이나 하락에 따른 손해를 덜 보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환헤지 상품의 일종인 키코(KIKO)는 설계가 이상하게 돼 있다. 환율이 예상했던 구간대에서 움직이면 환차익을 볼 수 있다. 반면 환율이 그 구간을 벗어나면 환율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을 받지 못하고, 환율 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내줘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약정 환율 구간을 900원에서 1000원, 행사 환율을 950원으로 정해 키코에 가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환율이 900~950원에서 움직이면 키코를 판매한 은행은 달러를 무조건 950원에 처리해준다. 환율이 900원이라해도 달러를 950원에 사주는 것이다. 환율이 900원 밑으로 떨어지면 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문제는 환율이 오를 때다. 1000원을 넘어서면 이번에는 기업이 거꾸로 달러를 950원에 은행에 팔아야 한다. 환율이 1300원일지라도 달러를 무조건 950원에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약정한 금액의 2~3배 수준의 달러를 팔도록 계약이 돼 있다.  
 기업들이 키코에 가입했던 지난해 환율은 900원대 중반에서 움직였다. 당시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면서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올들어 환율이 폭등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말 현재 키코에 가입한 기업 517곳의 손실액은 1조7000억원이다. 8월말 당시 환율인 1089원으로 계산한 것이다. 환율은 그 이후 큰 폭으로 올랐다. 지난 10일 현재 달러당 1309.0원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환율이 10원 오르면 키코 피해는 1000억원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원·엔 환율이 원·달러 환율보다 더 많이 올랐는데
 원·달러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종합해서 결정한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이고,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엔이라면, 원·엔 환율은 110엔에 1000원, 즉 100엔에 909.09원이 되는 식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연말 달러당 939원에서 10일 현재 1309원으로 올들어 39.4% 올랐다. 원·엔 환율은 지난해 연말 100엔당 828원에서 지난 10일 1322원대로 59.6% 올랐다. 달러보다 엔화 값이 더 많이 오른 것이다.
 전세계적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고, 엔화가 미국 달러보다 더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엔·달러 환율이 1달러당 113엔이었지만 10일 현재 1달러당 99엔으로 엔화 가치는 10% 이상 높아졌다. 달러화 가치가 엔화에 비해 떨어진 상태에서 원화 가치가 달러에 비해 떨어져 원화와 비교해 엔화의 가치는 더욱 오르게 된 것이다.

 7.기준금리 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장기적으로 국채 금리는 물론 시중은행의 예금·대출 금리가 모두 하락하게 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채권에 투자하는 해외 자본 유입이 줄게 되고, 외환시장에 달러가 적어져 원·달러 환율은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9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하락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세계 주요국들은 0.5%포인트를 인하해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오른 상황이 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0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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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1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출증대를 위해 환율을 올리는데 원자재 값이 올라 이를 수입해서 물건을 만들면 물가가 또 오르고...이건 어떤 해결책을 내놔야 할까요? 두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할까요?

아지 2008-10-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구조가 단순하던 시절에는 환율이 올라가면 좋겠지만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는 경제는 미래가 없습니다. 기업들은 이런식으로 해서도 이윤나니까 투자하거나 혁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아주 복합적인 측면도 많고 하지만, 환율을 상승해야 경제가 산다는 논리는 이미 낡은 것이 된 것 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1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다가 또 환율방어를 한다면서, 기껏 번 외화를 또 퍼주고 있으니...참...답이 안 보이네요.사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되면 시워한 답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요.불과 몇달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잡겠다던 품목은 이제 기억조차도 안 나네요.

아지 2008-10-1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장에 일단 신뢰를 주는게 방법입니다. 정부정책도 친기업이 아니라 친 시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시장 참가자는 기업도 있고 일반시민도 있고 중소기업, 자영업자도 있는데 이들 모두에게 공정한 법집행을 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줘야 합니다. 이명박의 문제 중 하나는 시장 참가자들로 하여금 '편파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08-10-1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시장친화=기업친화 라서 원래의 시장경제논리가 왜곡되었지요.사실은 본래 의미의 시장경제의 기준으로 보아도 현정부의 경제정책이 비판을 많이 받을 겁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일 ‘세제개편안’을 발펴하면서 중산층과 서민층을 가르는 기준으로 근로소득 과세표준(과표·세금을 부과하는 기준)로 8800만원을 제시했지만 8800만원 이상은 전체 근로소득자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5년간 상속세 실효세율도 1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상속세율이 외국에 비해 인하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9일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액에서 각종 공제를 제외한 과표가 8000만원을 넘는 근로소득자는 6만9000명으로 전체 근소세 신고인원 662만1000명의 1%에 그쳤다. 또 4000만원초과~8000만원 이하 구간에 해당하는 근로자는 전체의 4.9%인 32만3000명에 불과했다. 2007년부터는 과표구간이 △8000만원 초과→8800만원 초과 △4000만~8000만원→4600만~8800만원으로 각각 조정돼 대상인원이 조금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일 세제개편안을 통해 2010년까지 과표구간별로 2%포인트씩 일괄적인 소득세율인하 계획을 발표하면서 과표구간 8800만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모두 5조1330만원에 이르는 감세혜택이 중산·서민층에 돌아가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재정부의 논리대로라면 근로소득 상위 5% 안팎도 중산·서민층에 포함되는 셈이다.
 상속세의 경우도 2003~2007년 신고된 상속재산 가액이 25조2413억원이었고, 이들이 자진 납부한 세금은 4조762억원으로 실효세율은 16.1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실효세율이 낮은 것은 각종 공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기존 50%에서 33%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재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 과세가 이뤄지는 국가의 평균 세율이 26.3%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법인의 0.1%인 324개 기업이 법인세 세수의 61%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추진 중인 법인세 인하도 수혜 대상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법인세액이 100억원을 넘는 기업은 전체 법인 37만2141개의 0.1%에도 못미치는 324개였다. 이들이 낸 법인세는 18조2468억원으로 전체 법인세 세수 29조8851억원의 61%에 이르렀다. 반면 세액 5000만원 이하 법인이 전체 법인세 신고 기업의 93.2%인 34만6733개였고, 이들이 낸 세금은 1조4339억원으로 전체 세수의 4.8%였다. 정부는 올해부터 낮은 법인세율은 13%에서 11%로 낮추되 높은 세율은 25%에서 22%로 낮추기로 하되 1년 늦춰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20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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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1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기사를 주로 올려 놓으시는군요.재정이나 금융 쪽을 연구하시는 분?

아지 2008-10-12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사에 있습니다. 제가 쓴 기사들이고요.

노이에자이트 2008-10-1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멋지다...경제부 기자...기사 외의 글도 올려주세요.
 

 지난 9일 밤 5개 방송사가 동시에 생중계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100분 중 60분 가량을 경제문제에 할애했다. 그만큼 ‘위기설’이 거론될 정도로 어려운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다. 집권 이후 6개월만에 각종 경제지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대화’를 지켜본 시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경제난에 처하게 된 데 대한 깊은 반성과 해결책 제시가 미흡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대통령은 대화 초반에 “너무 서둘렀던 측면이 있고, 국민들의 심정을 이해하는데 소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론에 접어들면서 태도를 바꿨다.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온 참석자가 ‘경제위기설’을 청와대와 정부가 먼저 제기한 것에 대해 질문하자 이 대통령은 “긴장감을 갖기 위해 ‘위기’란 말을 쓴 것”이라고 답변했다. ‘경제위기설’의 진원지가 청와대와 정부였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지만 최고 국정책임자가 ‘경제위기설’을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호소에 이 대통령은 “앞으로 기업, 비정규직, 정부 이런 이해당사자가 모여서 사회적 합의를 이룰 필요가 있다”며 언뜻 듣기에 ‘스웨덴식 대타협’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내놨다. 전문패널이 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 “(이 대통령이) 이랜드나 코스콤, 기륭전자 등과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묻자 “3자 개입없이 순수한 비정규직과 기업과 타협을 한다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햇다.  

 한 대학생이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살한 대학생 얘기를 꺼내며 공약으로 내건 ‘반값 등록금’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묻자 이 대통령은 “나 자신은 ‘반 값’ 공약을 말한 적 없다”고 피해갔다. 이 대통령은 “환율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역량에서 벗어나 있다”면서도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폭등을 야기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는 ‘무한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비정규직의 아픈 현실을 피해갔고, ‘촛불시위’에 대한 방어막도 쳤다. 역경을 딛고 ‘성공신화’를 쓴 대통령의 경험담은 성공할 수 없는 대다수 서민 시청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100분간의 ‘토크 쇼’가 끝난 뒤 참여연대는 “국민과의 소통 의지가 없음을 다시 보여준 대화”라고 논평했다.

200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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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7일 1300원을 돌파했고, 주식시장에서 코스피지수가 1300선으로 곤두박질쳤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점차 실물경제로 옮겨 붙으면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을 약화시키고 있다. 외환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날 정도로 패닉(공황)상태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을 풀며 환율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어들게 되면 국제수지 적자와 맞물려 대외신인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고 이럴 경우 진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외환보유액은 손대지 않는 것이 국익에 맞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액을 풀어 시장 개입에 나서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또 “세계경제는 15년에 걸친 호황이 끝났고 앞으로 최소 4~5년은 경기가 극도로 침체될 것”이라먀 “정부는 성장주의 정책 대신 긴축경제 체제로 전환해 사회 안전망 확충 등 민생 경제 안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가 미국의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다시 세계로 파급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패러다임 변화의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지난 15년간의 호황은 끝났고, 앞으로 최소 4~5년간은 장기침체 시대가 올 것입니다. 장기호황은 신자유주의 체체 아래서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질서에 의한 효율 극대화, 중국,·인도·남미 등 거대 저임금 경제권의 부상에 힘입은 것입니다. 이 시기는 고성장, 저물가, 저금리, 고유동성, 고물가, 고주택 가격, 고원자재 가격 등 자산 버블(버블)로 특정지워지는 ‘고원(高原)경기’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고비용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데다 세계적인 자산 및 원자재 가격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가장 취약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서 곪아터진 것입니다.”

-금융위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파장을 몰고 온 이유는 우선 미국 부동산의 80%가 은행 대출인데다 은행 대출을 기반으로 이중, 삼중의 채권이 발행되면서 파생상품시장을 부풀게 했다는 점, 금융감독 기능이 취약한 점 등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는 미국 부동산거품 붕괴→미국의 금융위기→미 금융위기의 세계적 파급→세계 실물경제의 장기침체로 진행될 것입니다. 금융위기는 지금 한창 깊은 터널을 통과하고 있고, 완전히 벗어나려면 앞으로 1~2년이 더 걸릴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 실물경제의 침체는 시작 단계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위기상황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세계 경제질서는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 저유동성, 저자산가격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7% 성장약속을 했지만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고용문제와 민생경제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 정책을 밀어 붙인다면 경제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고, 민생도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정부는 경기부양과 경제체질 강화, 민생경제 안정 중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4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한국의 신인도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환율을 방치한다고 해도 오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어들게 되면 국제수지 적자와 맞물려 대외신인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정말 큰 위기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환율이 뛰고 외환이 부족하니까 정부가 외환보유액에 손을 대고 있지만 이래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고 자칫 큰 위기 부를 위험이 큽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외환보유액에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신인도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환율 상승은 거의 한계점에 왔습니다. 그러나 신인도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정부는 미봉책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하며 위기대응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 7%성장이라는 강박관념에 매달려 있으면 안됩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9일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런 위기상황에서 금리정책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까.
 “금리에 대해서 구체적인 얘기를 하거나 주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선 고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가안정, 국제수지 균형회복,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 고금리 기조가 유지돼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일 재무장관회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하기 보다는 물밑에서 추진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의는 옳다고 봅니다. 한·중·일 3개국이 금융협조를 해 위기에 공동대응하는 것은 매우 유효하고, 성사된다면 아주 좋은 일입니다.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일본, 중국과 협조관계가 구축돼 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니까 정부차원에서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미국도 금융위기를 겪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국같은 금융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은 거래가 잘 안될 뿐 아직도 보합수준이고, 미국보다는 은행대출 비율이 낮습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경우 가계에 압박이 오면서 소비침체→경기침체→민생고통의 악순환이 예상됩니다. 고통은 견뎌내야 하고, 정부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내핍체제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건설경기가 나쁘다고 경기부양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부동산 투기의 악순환 사이클이 되풀이 될 우려가 큽니다. 집 값의 안정에 정부와 건설업체가 적응해야지 건설업체의 필요에 국민 경제를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기조는 어느 쪽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저금리, 고환율, 적자재정 정책은 물가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를 초래하고, 국민경제도 어렵게 할 것입니다. 경제체질 강화와 민생경제 안정에 중점을 둔다면 고금리, 국제수지 개선, 환율안정, 건전재정 물가안정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정부는 종부세 완화 등 감세정책, 수도권 규제완화 등 양극화를 부추길 정책은 유보하고 사회안전망은 강화해야 합니다. 국내외 경제여건의 악화는 일과성이 아니라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흐름입니다. ‘소나기’가 아니라 기나긴 ‘장마’입니다. 정부가 현실을 좀 더 냉철히 보고 국민에게 내핍을 호소하고,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가장 고통받는 소외계층에 대한 안전망 강화 등 민생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야 합니다.”

-정부의 감세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내핍체제로 전환해야 할 시기에 정부가 감세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국민의 2%에 불과한 집 부자들을 위해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국민정서와 경제정의에도 맞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빈부격차는 소득격차가 아니라 자산격차에서 초래됩니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이지만 자산은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종부세는 이런 자산격차 축소에 유효한 정책인 것인데 정부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금융모델이 몰락했고, 신자유주의도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단기적 수익을 극대화하고 전 세계의 돈을 긁어 모아 이중 삼중으로 부풀려 이득을 내는 체제입니다. 하지만 한번 부실이 시작되면 승수효과에 의해 위기가 증폭되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면 안됩니다. 금융시장 개편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충분히 정부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인 무한경쟁속의 적자생존, 단기수익 극대화 모델이 성장을 효율화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빈부격차 확대와 양극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제질서로 대체되기는 어려워 경제개방을 확대하면서도 양극화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박승 누구인가

 1936년생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은행 총재 등 학계와 금융계, 정부를 넘나들며 한국 경제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 해왔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1961년 한국은행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한은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한은 총재로 재직할 당시에는 특유의 ‘뚝심’으로 통화신용 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리공고 재학시절 매일 8㎞를 뛰어서 통학했을 정도로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때문인지 설렁탕 집을 즐겨 찾는 소탈한 성격이다. 한은 입행 초기 건물에 불이 나자 불을 끄기 위해 물양동이를 들고 건물 지붕에 올라갔던 일은 아직도 한은 직원들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200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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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에 달러 유동성 부족 현상이 심화된 것은 정부가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근시안적인 외환정책을 편데다 ‘대증요법’식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는 탓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외환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효과가 사실상 실종됐고, 외환시장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외환시장 흐름 역행하는 정책 연발=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외국환 거래 규정을 개정해 투자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300만달러)를 폐지키로 하고, 6월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해외부동산 취득한도 완화는 만성적인 외화초과 공급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정부 시절부터 단계적으로 추진돼 왔던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흐름을 거스른 ‘달러 퍼내기’ 정책이 되고 말았다. 재정부 관계자는 “단계별로 나눠 해외부동산 투자한도를 풀었지만 최종적으로 풀 당시에는 이미 경제상황이 나빠졌고 경상수지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며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또 지난달 18일 ‘2단계 기업환경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년 2월부터 외환자유화 조치를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이틀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으로 국제금융시장 경색이 불보듯한 상황에서 외환 자유화 계획을 앞당긴 것은 명백한 정책 실패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재정부는 지난 7월 외국계 은행 한국 지점의 본점 차입에 대한 이자 비용 손비인정 한도를 기존 자본금의 3배에서 6배로 완화했다. 정부가 외국은행 국내지점이 해외 본점에서 달러를 차입할 때 이자의 손비 인정(과세대상 수익에서 제외되는 경비) 한도를 늘려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에는 단기외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외은 지점의 본점 차입 손비인정 한도를 자본금의 6배에서 3배로 축소한 바 있다.

◇근시안적 대응으로 국고만 축내=정부는 지난 7월 환율 급등세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서라도 환율 방어에 나서겠다고 밝힌 뒤 ‘달러 폭탄’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지난달 26일 이후 달러 부족 현상이 실물경제에 파급되기 시작하자 달러 현물이 거래되는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을 단행한 데 이어 달러 선물이 거래되는 외화자금시장(스와프시장)에까지 100억달러를 투입키로 했다.

 그럼에도 외환시장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정부는 지난 2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수출입은행을 통해 시중은행에 50억 달러를 대출하기로 했다. 당시 재정부 최종구 국제금융국장은 “스와프시장 참여는 거래 상대방을 특정하지 않고 하다 보니 아주 급한 곳과 덜 급한 곳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외화자금시장 개입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일 한·중·일 재무장관 회의를 추진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공개된 것도 외교관행을 감안할 때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 대응이 혼선을 겪으면서 외환시장의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시계(視界)가 짧은 정책으로 외환시장에 대응하면서 투기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부)는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주도권을 잃고 있어 어떤 말을 해도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며 “외환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경제팀을 교체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 돼가고 있다”고 밝혔다. 
2008-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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