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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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써내려간 서늘하고도 안타까운 세계들. 최은영 작가 얼굴을 보면 참 선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여기 실린 작품들도 꼭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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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 - 러시아대표단편문학선 세계단편문학선집 2
니콜라이 고골 외 지음, 최병근 옮김 / 써네스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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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부닌의 ‘추운 가을’이 다시 읽고 싶어서 펼쳤다가 다른 작품들까지 다시 또 읽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작품들만 모였다.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식간에 우리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그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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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최병근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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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하나가 어쩜 이렇게도 내 마음을 울리는지! 인간에 대한 연민, 연민, 연민으로 가득한 책. 작지만 이토록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라니. 러시아 작가들은 정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보물 같다. 올해는 플라토노프도 모두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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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레베카 (개정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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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뷰를 쓸 때, 가능한 한 줄거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초반 몇몇 설정은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므로 전체 흐름 정도는 밝히는 편인데, 되도록이면 그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결정적인 내용은 남겨두려고 한다. 때문에 <레베카>와 같은 스릴러 작품을 리뷰하기란 참 어렵다. 한마디라도 하는 것 자체가 이 책을 읽을 누군가에게 누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음에도 리뷰를 남기지 않았다. 읽은 지 2주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레베카’가 자꾸 떠오른다. 그녀를 위해 몇 자 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이 작품은 결정적인 ‘그 장면’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레베카’를 위한 글을 써내려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스포일러를 작정하고 리뷰를 쓰려고 한다. 그러니 <레베카>를 재미나게 읽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을 반드시 피하길 바란다. 그래도 읽겠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레베카>를 읽은 다른 이들은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 작품의 표면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와 ‘맥스(맥심)’을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런 의혹이 끝내 가시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레베카>에는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두 사람이나 등장한다. 스물한 살, 어린 나이의  화자인 ‘나’와 그녀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르는 ‘맥스(맥심) 드윈터’가 그렇다. ‘나’가 보고 듣고 느낀 것 위주로 작품은 진행된다. 그런데 ‘나’는 맥심의 과거나 그가 살던 맨덜리 저택과 관련한 이야기는 모두 타인을 통해 ‘들을’뿐이다. 직접 본 게 없으므로 그녀가 들은 내용이 어디까지 진실일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 작품에서 가장 결정적인 ‘그 사건’을 ‘나’에게 고백하는 사람은 ‘맥심’이다. 전적으로 맥심의 관점으로만 ‘그 사건’이 설명된다. 그런데 고스란히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정말 진실일까?

여기서 말하는 ‘그 사건’이란, 이 책을 읽은 당신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레베카의 죽음과 관련한 사건을 말한다. 당신도 나도 알다시피 그저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레베카는 사실 맥심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맥심이 자신의 첫 번째 아내 레베카를 죽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궁지에 몰리자 ‘나’에게 그 모든 일을 털어놓는다. 고백의 형식을 빌려. 그런데, 모든 고백은 진실할까? 맥심의 두 번째 아내인 ‘나’처럼 그에게 홀딱 반해서 사랑에 빠진 이에게는 진실로 들리겠지만, 나처럼 ‘맥스 드윈터’라는 인물에게서 의혹의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사람에게는 진실을 가장한 거짓으로 들릴 뿐이다. 살아남은 자, 살인자, 가부장적인 중년 남자가 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이야기로만 들린다. 레베카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은 맨덜리 저택, 레베카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사람들(심지어 ‘나’의 눈엔 맥심도 여전히 죽은 레베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맥심에게 레베카를 여전히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때 맥심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레베카를 사랑했다고? 난 그 여자를 증오했소. 우리 결혼은 처음부터 어릿광대 극이었지. 사악하고 역겹고 썩을 대로 썩은 여자였소. 단 한순간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지. 레베카는 사랑도, 품격도, 다정함도 모르는 사람이었소. 정신상태도 정상이 아니었지.” “물론 영리하긴 했소. 너무나 영리했지. 그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자비롭고 재능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훤히 꿰뚫고 있었소. 그 여자가 당신을 만났다면 팔짱을 끼고 정원으로 걸어 나가 꽃이며 음악이며 그림이며 뭐든 당신이 관심 있어 하는 그런 얘기를 했을 거요. 당신도 남들처럼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테고. 아니, 그 발밑에 엎드려 찬양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레베카는 아내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모두 다 갖췄다. 혈통과 두뇌, 그리고 미모지.’ 난 그 말을 믿었소. 아니, 믿으려 했는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때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있었소. 그 여자의 눈빛에는 무언가가 있었거든.”


아직은 신혼인 두 번째 아내에게 전처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떤 바보 같은 남자가 ‘오, 나는 아직도 첫 번째 부인을 사랑하오, 여전히 잊지 못하오.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오.’라고 말할까? 그래, 그의 말대로 정말 전처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레베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더군다나 맥심 그가 쏜 총에 맞아서. 누군들, 살인을 저지르고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맥심의 이 신랄한 비난에 레베카는 저 세상에서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다. 물론 레베카는 저 세상에서 맥심의 이 이야기를 들었다하더라도 그저 코웃음치고 대꾸도 안했을 것 같다. 죽음으로 침묵하고 있는 레베카와 달리 살아 있는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절벽 위에서 그 여자는 거래를 제안하더군. ‘내가 저택을 관리해주죠. 당신의 그 소중한 맨덜리를 가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 주겠어요.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를 부러워하며 말하겠죠. 영국을 통틀어 가장 부유하고 행복하며 멋진 부부라고 말이에요. 얼마나 신나는 장난이에요!’”


맥심은 심지어 레베카가 ‘거래’를 제안한 이 순간에도 그녀를 죽일 뻔했다고 ‘나’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그가 한다는 말은 내내 레베카에 대한 비난뿐이다. 레베카와 함께 살던 나날들은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울 뿐’이었으며 그 여자와 자신이 ‘얼마나 거짓투성이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너절하고 지저분한 연극을 했는지’ 모른다고 지독하게 환멸에 찬 말을 해댄다. 맥심의 말에 따르자면, 모든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숭배하기까지 했던 레베카는 그 자신감, 우아함, 아름다움, 현명함, 유머 감각 같은 완벽한 모습 뒤에 ‘악마’와도 같은 ‘천박함’을 숨기고 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사랑 없이 이루어진 결혼에서 비롯된 거짓된 삶, 그리고 무엇보다 레베카의 자유분방한 삶에서 기인한다. 레베카는 맥심에게 어차피 처음부터 쇼윈도 부부로 살 것을 제안했기에 그가 아닌 다른 남자들을 자유롭게 만난다. 마시고 싶은 대로 술을 마셨고, 만나고 싶은 남자는 원하는 대로 만났다.

맨덜리 저택에서만은 그런 짓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 맥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레베카는 런던이 아닌 이곳까지 자신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삶을 끌고 와서는 맥심의 측근인 프랭크에게도 ‘집적거렸’고 맥심 누이의 남편인 자일스에게도 ‘집적거렸’단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은 맥심의 입에서 나왔을 뿐이다. 순진한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남편의 말을 고스란히 믿고 살인자인 그를 사랑으로 감싸안기에 급급하다. 오로지 맥심이 레베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 그 사실에 기뻐하면서(그녀에겐 그 사실만이 중요하다), 드디어 그의 진정한 아내가 된 기쁨에 도취되어 자신이 맥심이라는 이 늙고 교활한(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사내가 하는 말에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와 ‘맥심’의 말이 진실로 여겨지려면 그들의 사랑이 진정으로 절박한 ‘사랑’으로 보여야 하고, 그렇게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애초에 이 둘이 처음 만난 장면에서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나’는 진정으로 맥심에게 반한 것 같다. 금세 좋아하고 사랑에 빠진다. 물론 맥심의 지위나 위치, 부유한 배경도 무시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이 어린, 소녀 같은 ‘나’는 맥심을 향한 사랑 때문에 한숨짓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눈물짓기도 한다. 그런데 맥심도 그랬을까? ‘나’가 맥심을 만난 처음에도 그는 레베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고, 서둘러 무언가에 쫓기듯이 ‘나’에게 청혼하고 결혼한다. 신혼여행지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맨덜리 저택에 돌아와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그다지 두 번째 아내를 사랑한다거나 아끼는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푸른 수염의 아내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레베카의 시체가 등장하고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쯤에야 ‘나’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을 뿐이지, 그는 그 전까지 ‘사랑’이라는 말이나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이런 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댄버스 부인은 ‘나’에게 대놓고 “드윈터 씨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지옥에서 사는 모습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물론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를 여전히 사랑하고 숭배하니 사람이니 그렇게 말했다 치자. 그런데 맥심의 누이인 비어트리스가 지나가는 듯한 말로 하는 이야기는 꽤 의미심장하다. 비어트리스는 맥심이 신혼여행지에서 ‘나’에게 입을 만한 것들을 마련해주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말하며 ‘너무 자기 생각만 했던 모양’이라며 ‘하여튼 걔답지 않아요. 본래 취향이 아주 까다로운데.’라고 덧붙인다. 여기에 ‘나’는 맥심은 자신이 ‘뭘 입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래서 옷차림에는 무심하다고 여겼’다고 말한다. 궁핍한 생활로 인해 초라한 옷밖에 없던 신부에게 옷을 사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옷차림에 전혀 관심도 없는 이 남자. 그는 전에도 그랬을까? 비어트리스의 말에 따르면 ‘맥심이 변한 모양’이란다.

결정적으로 ‘나’ 자신도 맥심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심지어 맥심이 자신의 손을 툭툭 치면서 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는 자신이 맥심의 개 ‘재스퍼’와 마찬가지인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건 내가 재스퍼를 대할 때와 똑같잖아. 지금 나는 재스퍼처럼 굴고 있어. 그는 생각날 때마다 나를 어루만지고 그럼 난 기분이 좋아지지. 그는 내가 재스퍼를 좋아하듯 나를 좋아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맥심을 사랑하기에 그가 어떻게 하면 웃을지, 어떻게 하면 그를 기분 좋게 해줄지만 궁리한다. 이런 장면들을 지켜보노라면 맥심은 레베카처럼 자신이 다루기 힘든 여성이 아니라, 그와 정반대인 순종적이고 어린 여성을 두 번째 아내로 점찍어서 재빨리 결혼한 뒤 마음대로 길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혹이 든다.

결혼 뒤 맥심은 결혼 전에 보여줬던 모습과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결혼 전에는 무심한 듯 세심하고 다정하게 ‘나’를 챙겨주던 사람이 결혼 뒤에 하는 말이라고는 날카롭기 그지없다. “대개의 여자들은 그저 자나 깨나 옷 생각뿐이던걸.” 이런 말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여자들은 침실에만 올라가면 30분씩 시간을 끌거든”이라거나 “말싸움에 지고 나면 여자들은 다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등등 레베카 앞이었다면 도저히 입에 담지 못했을 말들을 어리고 순종적인 ‘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해댄다. 심지어 행복하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도 그는 딱히 대답하지 못한다. ‘당신은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그렇다고 해둡시다. 난 잘 모르겠으니 당신 말을 따르겠소. 우리는 행복한 거요’라고 말할 뿐이다. 이 남자가 과연 결혼 전의 그 맥스 드윈터와 동일인물이란 말인가?
 
이토록 까다로운데다가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남자와 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여지고 조종당하고 있는 ‘나’는 맥심이 집을 비운 날에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그런 자신을 책망한다. 이미 맥심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맥심도 포함해서 말이다. 맥심이 옆에 있었다면 나는 그렇게 벌렁 누워 눈을 감고 풀잎을 씹지 못했을 테니까. 그의 모습을, 그의 눈을, 그의 표정을 바라보았을 게 틀림없다. 그의 기분이 괜찮은지, 지루한 것은 아닌지 살피면서. 맥심은 런던에 있으니까. 혼자라는 건 얼마나 좋은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이건 아니지. 이건 나쁜 생각이야.


그러므로 맥심이 하는 말을 믿고, 자신의 첫 번째 부인을 죽인 이 살인자와 유럽 곳곳을 떠돌며 살아가기를 자처한 이 불쌍한 ‘나’가 전하는 말들은 책을 덮은 뒤에도 도무지 온전히 믿을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나’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순진한 여성도 맥심이 바라는 순종적이고 정숙한 아내 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그러고 나서 맥심은 세 번째 부인이 될 여자에게 두 번째 부인이었던 이 여자를  ‘레베카’에 대해 말하듯이 또 그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염려된다. ‘나’가 아무리 ‘모든 사람은 살면서 고난의 순간을 맞게 된다. 자기를 괴롭히는 악마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승리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다.’ 말할지라도 결국 승리한 사람은 ‘나’나 ‘맥심’이 아닌 ‘레베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맥심은 정말 그의 말처럼 레베카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남자든 한번 보면 미친 듯이 빠져들고 말았’을 레베카, 그렇기 때문에 ‘모두들 질투에 몸부림치며 목을 맸’던 레베카. ‘드윈터 씨도, 잭도, 크롤리 씨도, 그분을 아는 모두가, 맨덜리에 왔던 모두가’ 레베카를 원하고 손에 넣고자 했으며 그러지 못하면 질투하고 안달했으리라. 댄버스 부인의 말처럼, 그중에는 당연히 맥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맥심은 절대로 레베카를 소유할 수 없었다. 맥심의 측근인 프랭크는 ‘나’에게 “남편들은 아름다움이나 유머 감각보다는 친절함, 진실함, 그리고 정숙함 같은 덕목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여길 것”이라면서 맥심이 틀림없이 레베카보다는 ‘나’와 함께 하는 삶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프랭크의 이 말에는 이 어수룩한 아가씨조차도 ‘정숙함’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레베카는 맥심을 사랑하지 않았고, 더더군다나 순종하지 않았으며, 아내로서 요구되는 첫 번째 덕목, 즉 정숙하지 않았기에 죽임당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되는가?

댄버스 부인의 말에 따르면 레베카는 절대 부당한 대접을 참아 넘기지 않았다. 누구도 레베카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두려운 것도 거리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레베카와 ‘맞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레베카는 원하는 대로 행동했고, 원하는 대로 살았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자신의 죽음조차 자기가 선택한다. 맥심의 분노를 터뜨려 그가 자신을 총으로 쏘게 만든다.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단 하나- ‘늙고 병들어 죽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두려웠던 레베카. 모르핀을 맞으면서 죽음을 기다리느니, 저 세상으로 가기를 선택한 레베카. 그리고 그녀는 ‘죽을 때는 빨리 가고 싶어. 촛불이 꺼지듯 순간적으로.’라고 말한 그대로 죽는 순간까지 선택한다. 거짓말을 지어내 맥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려서 그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다.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지, 밤과 낮을 지나.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지, 세월의 아치를 지나.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지, 미로를 통과해.
온 힘을 다해, 눈물을 흘리며.
나는 그에게서 숨었다네, 끊임없는 웃음 아래에서
탁 트인 언덕 위로 나는 달려갔지.
그러다가 총을 맞고 떨어졌네.
깊은 수렁과도 같은 타이태닉의 공포 속으로


레베카가 맥스에게 선물했던 시집, 그녀가 자주 펼쳐본 것이 분명한 페이지의 저 구절을 읽노라면 사랑 없는 결혼, 굴레와도 같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애초부터 환멸을 느낀 사람은 레베카였다는 확신이 든다. 그래서 레베카는 자유분방하게 삶을 즐기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웃으면서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맥심처럼 이중적이고 고리타분한 인간들이 바랐던 순종적인 여성상을 마음껏 비웃고, 모든 남자들의 숭배를 받았지만 결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소유할 권리를 주지 않았던 레베카. 그녀의 마지막 웃음은 그래서 통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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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되는 법 - 책 읽기 어려운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땅콩문고
이옥란 지음 / 유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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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구가 날마다 줄어드는 시대. 책 만드는 이들을 위한 위로 같은 책이랄까. 편집 실무 관련 이야기보다는 편집자로서의 마음가짐, 태도를 어떻게 지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출판은 사람 사업‘이라는 말, 편집자는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사람‘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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