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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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서정적이지만 늘 강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필립 베송. 그의 <이런 사랑>은 스물아홉 살의 남자 '루카'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늦여름의 이탈리아, 피렌체 아르노 강 다리 아래서 한 남자의 익사체가 발견된다. 그의 이름은 '루카 살리에리'- 그의 죽음으로 시작된 작품은 루카, 그의 약혼녀 안나, 그리고 또 다른 남자 레오의 독백으로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그리고 필립 베송의 작품답게 왜? 그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없이 궁금해진다.


루카, 안나, 레오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죽은 남자 루카는 이탈리아에서 꽤 명망 있는 집안의 자식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안나'라는 아름다운 여자친구와 5년 동안 진실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레오'라는 한 남자의 등장으로 루카에게 '안나'라는 여자만이 애인은 아니었다는 것도 이내 알게 된다. 잘 생긴 외모와 좋은 집안, 아름다운 여자친구 등등 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루카에게 죽을 때까지 숨겨야 했던 단 하나의 비밀이 있었다면 그것은 '레오'라는 존재였다. 레오는 기차역에서 하루하루 몸을 팔며 살아가는 남창이었던 것-


소설은 루카의 죽음으로 충격받은 그의 두 연인 안나 모란테와 레오 베르티나의 시점으로 루카가 과연 왜 죽었는지를 미스터리처럼 풀어간다. 그리고 그의 죽음 탓에 상기되는 추억을 통해 이들의 삶과 사랑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한 번은 루카가 되었다가 또 한 번은 안나가 되었다가, 때로는 레오가 되어 그들의 상실감과 고독감을 맛보게 된다.


루카는 죽어서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나는 과정을 겪으며 더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머물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안타까움에 절망한다. 자신의 죽음에서 무언가를 캐내고자 분주한 형사들의 움직임에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그의 비밀이 밝혀질까 죽어서도 두려워한다.


안나는 5년 동안이나 성실하고 섬세하고 다정했던 남자친구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해하고 자살일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이야기에 왜 자신과 행복하지 못했을까 괴로워한다. 게다가 부검 후 보이는 루카 부모님의 석연치 않은 행동,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형사들의 태도. 루카의 집에서 발견한 낯선 남자의 이름 등등 5년 동안 자신이 믿어왔던 그 모든 관계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망가져 간다.


레오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남자들과 의미 없는 만남을 이어가던 중 유일하게 진짜 삶과 이어줄 연인 루카를 만나지만 어느 날 그의 죽음과 맞닥뜨린다. 장례식장조차 갈 수 없다. 그는 철저하게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사들의 집요한 추궁으로 그는 사랑하는 연인을 살인한 장본인으로 몰리기까지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루카, 안나, 레오 세 인물 모두 무척 고독했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루카나, 정말로 진실한 관계라고 믿었던 5년간의 사랑이 배신으로 돌아온 안나나, 유일한 사랑이자,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었던 루카를 잃어버린 레오나 모두 고독하고 또 고독할 것이다. 쓸쓸하고 건조한 주인공들의 독백을 통해 이 고독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에야 밝혀지는 루카의 죽음에 관한 비밀까지- 이 작품은 흡인력 있게 단숨에 읽힌다. 어찌 보면 상투적인 삼각관계 같은 내용이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이 ‘사랑’보다는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고독과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엄밀히 말한다면 고통은 육체의 이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루카의 몸이 지독하게 그립다 해도, 루카의 육체는 나를 자주 허전하게 했으므로 육체의 부재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 짝을 잃었다는,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존재가 되었다는 엄연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나는 존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는 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혼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의 둘이라는 복수에서 단수가 되는 법을 모른다. - 안나



내가 평온함을 맛볼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하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몰랐었다. 루카와 함께,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 레오


사람들은 그림의 이면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던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청년, 그들을 흡족하게 해주던 감탄스럽고 눈부신 청년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증스럽다고 외치고, 배신이라고 소리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은 한순간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수치심과 불쾌감을 초월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다지 기분 상할 일은 없다. -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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