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눈을 뜨다 -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
해리 크라이슬러 지음, 이재원 옮김 / 이마고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해리 클라이슬러 <진실에 눈을 뜨다 : 우리 시대 대표적 리더와 사상가 20인의 인생을 바꾼 정치적 각성의 순간들>을 읽었다. 이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왔던 <휴머니스트를 위하여 : 경계를 넘어선 세계 지성 27인과의 대화>와 비슷한 책이다. 다만 <휴머니스트를 위하여>는 ‘경계를 넘어선’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좌우를 넘나들어 세계적인 명사들과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반면 <진실에 눈을 뜨다>는 그런 명사들 중에서 흔히 좌파라고 불리기 쉬운, 진보적인 가치관을 내세우고 살아가는 명사들과의 대담집이다.


이 책은 ‘진실에 눈을 뜨다’와 ‘정치적 각성’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명의 명사들이 어느 순간 세계의 진실(결국은 이 세상의 모순)을 깨닫고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촘스키, 하워드 진, 대니얼 엘스버그, 오에 겐자부로 등등 20명의 대담자들은 어린 시절 영향을 준 사람을 비롯하여 교육 환경은 어땠는지, 어떤 계기로 지금과 같은 길을 선택하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등등을 질문 받고 이에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이런 질문과 대답으로 베트남 전쟁,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등 굵직한 현대 세계사를 훑으며 이를 통해 인종차별, 제국주의, 자본주의, 반전과 평화, 이슬람, 페미니즘, 환경, 예술, 계급, 인권의 가치 등을 다룬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생소한 이름도 보인다. 그러나 스무 명의 대담자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모습은 ‘더 나은 삶,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끊임없는 노력한다는 점이다.

‘나만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닌, 이 세상의 모순을 깨닫고 그것을 타파하여 사회적 약자도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노력해온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보면(정치적으로 각성하는 순간을 비롯하여) 결국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란 한국에서 하는 입시위주 암기식 교육, 사교육전쟁, 우리 아이만 1등해서 좋은 대학 가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자리 하나 꿰차서 성공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하는 그런 교육은 절대 아니다.

스무 명의 대담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는 현상은 그들은 모두 나름대로 ‘좋은 부모’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 부모들은 하나같이 자식에게 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것, 말하는 것을 액면 그대로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버릇, 이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질문, ‘왜?’라는 질문을 항상 하도록 가르쳤다. 게다가 그것을 ‘입으로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평소 자신들의 생활 태도 자체가 그랬다. 때문에 스무 명 중 대부분은 부모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그렇게 컸다. 부모가 아니더라도 가까이에 그런 영향을 주는 친인척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했다. 촘스키는 자신이 지금처럼 자랄 수 있도록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이모부가 운영하던 신문가판대를 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신문을 읽고, 신문을 사러 온 사람들이 나누는 토론을 들으며 자기만의 세계관을 형성해나갔다.

책을 많이 읽는 습관 또한 중요했다. 대부분의 대담자들이 ‘책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어릴 때부터 책속에 파묻혀 살았다. 하워드 진은 가난했던 부모가 쿠폰을 일일이 모아 한 권씩 사다준 디킨스 전집을 읽으며 계급의식을 키워갔다고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홉 살까지 책은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는데, 대신 할머니가 전해주는 생생한 이야기가 늘 곁에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처음 책을 선물 받았는데 무려 마크 트웨인의 책이었단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하여 <허클베리 핀>을 읽고 또 읽은 기억을 털어놓는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교육도 중요하고, 책읽기도 중요하고, 멘토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환경만큼 인간의 본성도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조금은 남들보다 ‘정의로운 유전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유전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유전자’ 등이 많았던 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이들 중 몇몇의 저작은 더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유쾌한 발견도 있었다. 반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한국에서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울한 생각도 들더라. 아무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한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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