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벽 트루먼 커포티 선집 5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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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카포티는 오드리 햅번 주연의,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이다. 1959년 미국 캔자스 주의 홀컴이라는 마을에서 실제로 발생한 일가족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 <인 콜드 블러드>로 세계 최초, 최고의 픽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문학 작품(특히 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는다는 미국인들에게조차 트루먼 카포티는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가장 유명한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카포티의 생애, 특히 ‘인 콜드 블러드’를 쓰던 시기를 다룬 영화 ‘카포티(Capote, 2005)’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와 성공에 비해 카포티의 삶은 그다지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1924년에 태어나 네 살 때 이미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닌 친척집에 맡겨진다. ‘카포티’라는 성도 어머니가 쿠바 남자와 재혼하면서 얻게 된 것. 불우한 유년기와 독특한 외모(카포티의 키는 160cm 정도였고, 외모와 목소리 모두 지나칠 만큼 여성적이었다고 한다), 정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성적 취향(카포티는 게이였고, 앤디 워홀이 그에게 끝없이 구애한 것으로 유명하다) 등 그의 일생은 그리 순탄할 수 없었다.




하루키가 반했다는 카포티의 사진 (Harold Halma photo on the back of 'Other Voices, Other Rooms', 1948)



그래서 그런 것일까, 카포티의 단편들은 이 책 <차가운 벽>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카포티의 사진처럼 아름답지만 어딘가 황량하다. 외부의 어떤 침입자나 저항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해 평온하던 삶이 위협받는 이야기가(‘미리엄’, ‘자기만의 밍크코트’, ‘밤의 나무’, ‘머리 없는 매’) 유난히 눈에 띈다. 물론 그와 달리 친척집에 맡겨졌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서정적이고 따스하며 아름답다(‘크리스마스의 추억’, ‘추수감사절에 온 손님’, ‘어떤 크리스마스’ 등).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은밀히 드러낸 ‘다이아몬드 기타’와 같은 작품에서는 어쩐지 쓸쓸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물론 이런 작품은 카포티의 불우한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보다는 ‘은화단지’, ‘다이아몬드 기타’, ‘꽃들의 집’, ‘ 크리스마스의 추억’, ‘추수감사절에 온 손님’, ‘어떤 크리스마스’처럼 따뜻하고 서정적인 그러면서도 어딘지 슬픈 작품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이런 작품들은 모두 그 말미에서 꼭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라.

카포티의 단편들은 번역서로 만나고 싶어도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그의 데뷔작인 ‘차가운 벽’ (1943년)부터 1982년 작품인 ‘어떤 크리스마스'까지 오 헨리 단편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던 카포티의 생애 모든 단편이 담겨 있다. 그의 단편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책이고, 읽고 나면 그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책이다.   

“아, 세상일이 겉보기와 같은 적이 있었어? 올챙이였다가 나중에 보면 개구리가 되어 있지. 금인 줄 알았는데 손가락에 끼어보면 풀반지일 때도 있고. 내 두 번째 남편을 봐. 좋은 남자 같더니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역시 별다를 바 없는 날건달이었잖아. 여기 이 방만 해도 그래. 저 벽난로에는 실제로 불을 피울 수 없지. 저 거울은 넓어 보이려고 달은 거야. 거짓말을 하는 거지. 세상 어떤 것도 겉보기와 같은 건 없어. 월터. 크리스마스 트리는 셀로판지로 만들었고 눈은 비누 조각일 뿐이야. 우리 안에 날아다니는 이걸 영혼이라고 하는데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고 살아서도 산 게 아니지.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월터. 우리는 심지어 친구도 아니야.” (‘마지막 문을 닫아라’ p.221-222)



이 모든 일들 중에서도 가장 슬픈 건 삶이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연인을 떠난다면, 인생은 그를 위해 멈춰야 하고, 누군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세상도 멈춰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불행의 대가大家’ p.297)
 



살아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뛰노는 갈색 강과 한 여자의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햇빛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기타’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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