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아이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1984년 10월, 며칠 동안 실종되었던 4살 된 남자 아이가 익사체로 발견된다. 이 아이의 이름은 ‘그레고리’다. 이 아이는 어떻게 실종이 되었고 어떻게 익사체로 발견된 것일까? 소설은 아이의 죽음으로부터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아이의 부모인 피에르와 발레리가 10대에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그레고리를 임신하고 낳고 기르며 행복에 빠졌다가 그 행복이 무너지는 순간을 3인칭의 화자가 무척 담담하게 서술한다. 가끔은 그레고리의 엄마인 발레리의 독백이 따르기도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든 몇 가지 생각 중 하나는 ‘지구’라는 곳에 기생하는 ‘인간’이라는 종족은 얼마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가였다. 그레고리의 부모인 피에르와 발레리는 그들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과 달랐다. 그들은 10대에 만나 사랑에 빠졌고, 폐쇄적이고 침울하고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노력했고, 자신의 아이에게는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자 애썼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속한 세계의 사람들과 달리 너무도 서로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시기를 받는다. 이웃의, 일가친척의 질투와 시기 미움을 받는다. ‘저것들은 뭔데 우리처럼 살지 않는 거지? 뭐가 잘났다고 저렇게 고고한 척을 하는 거지? 어떻게 어린 나이에 저렇게 돈을 벌 수 있지?’ 시기와 질투, 미움이 그들의 삶을 서서히 파괴하기 시작한다.
 
저속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회
그레고리가 실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사체로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을 달래기보다는 과연 누가, 무슨 이유로 그레고리를 죽였을까 궁금해 하기 바쁘다. 언론도 이 사건의 진범이 빨리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미스터리가 계속 되길 바랄 뿐이다. 피에르와 발레리의 행복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모두 용의선상에 오르고 한 명씩 취조를 받을 때마다 언론은 신이 난다. 사람들의 저속한 호기심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생겨먹었다. 도로에서 사고를 목격하면 우리는 길가 한 옆으로 서행한다. 순간적으로, 희생자들을 구조하려는 생각보다는(구조는 늘 이런 상황에 대비해 훈련된 사람들이 하게 마련이다), 그들의 참상을 구경하려는 생각을 먼저 하고, 도로 위나 깨진 유리들 사이, 혹은 우그러진 차체를 따라 흐르는 피가 눈에 띄기를 바란다. 익히 알려져 있듯 매스미디어는 우리의 병적인 호기심과 불행하게 끝나는 이야기에 대한 취미와 극적 사건에 대한 편향을 충족시키는 데 골몰한다.’ (필립 베송, ‘10월의 아이’, 124쪽~125쪽)


용의자 중 한 사람이 범인으로 구속되자 언론은 미스터리가 끝난 것에 아쉬워한다. 그러다 범인이 아니라는 증언으로 풀려나자 다시 신이 난다. 사건은 계속 되고 이제 이 저속한 인간의 호기심은 아이의 엄마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그녀를 향한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사랑’이 있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레고리의 엄마 발레리가 증거 부재로 친자살해의 누명을 벗기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발레리에게만 이런 불행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녀의 남편 피에르는 더 가혹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둘은 굳건했다. 그 모든 험난한 세월을 함께 보낸 뒤 발레리가 혼자 쏟아내는 독백은 그래서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이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죽은 아이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은, 피에르와 내가 그 모든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함께 이겨냈다는 것이다.(같은 책, 221쪽)’라는 발레리의 독백을 읽는 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흔히 부부가 아이를 잃으면 함께 지낼 수 없고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진실이라도 되는 듯 실제로 그 길을 따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발레리와 피에르는 변치 않는 사랑으로 살아남아 그 모든 불행을 이겨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이다. 1984년부터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명 ‘그레고리 사건’- 이 사건의 진범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2001년 공소국이 사건 종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발레리와 피에르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아직도 끝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이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죽은 아이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은, 피에르와 내가 그 모든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함께 이겨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옥살이를 할 때조차 떨어지지 않고 늘 꼭 붙어있던 부부뿐이다. 눈이 시리도록 그것만 보인다. 사람들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설명할 방도가 없다. 당신들은 지진을 견디고 살아남은 부부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을 알 기회도 거의 없이 매우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아주 일찍부터 고통을 겪었다. 아직 젊은 나이였으나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 새 삶을 꾸리고 싶어 했을 법도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남았다. 서로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뗄 수 없는 사이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교회에서 식을 올리던 날 아침에 맹세했던 것처럼,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필립 베송, ‘10월의 아이’, 221쪽~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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