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0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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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독후감을 냈다. 선생님이 물었다. "너 정말 이 작품이 이해가 되니?" 이 선생님은 내가 이상의 <날개>를 읽고 독후감을 냈을 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참 어렸구나, 뭘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싶어진다. '이해가 간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나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해했을 수도 있다. 그때 내가 가진 앎의 수준, 경험의 수준 등 그 폭 안에서 아주 좁게.


카프카의 <변신>을 최근에 읽고 그 시절에는 절대로 알 수 없던 의미를 발견한다. 예전에는 절대로 '이렇게' 읽히지는 않았다. '이렇게'란 어떤 의미인가? 오늘의 나에게 <변신>은 노동에 관한 이야기, 평생 노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서글픈 투쟁기로 읽힌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한 마리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고 일어나기도 어렵다. 째깍째깍 출근 시간은 다가온다. 방문 밖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이 재촉한다. '그레고르야 어서 일어나 출근해야지'- 그레고르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출근을 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잘릴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아버지가 진 빚이며 생활비 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생각에 벌써 숨이 턱턱 막혀온다.


출근 시간은 이미 넘어가고, 그레고르 회사에서 사람이 찾아온다. 그레고르 방문 밖에서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며, 거듭 그를 재촉한다. 이렇게 불성실한 사람인지 몰랐다며 그를 힐난한다. 불성실? 그레고르는 몇 년간 회사에 다니면서 아프다고 결근한 적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하루의 지각사태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회사원이 되어 비난을 듣는다. 가족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분노로 일그러진다. 그레고르의 여동생은 드디어 울음보를 터뜨린다. 그레고르는 항변하지만 그 소리는 이미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이 흉측한 소리에 놀라던 그들은 드디어 그레고르의 방문을 강제로 연다. 그리고는 다들 경악!


벌레로 변신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레고르는 그때부터 가족의 짐이 된다. 훌륭한 아들이자 오빠였던 그는 어쩌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되어, 가족들에게 애완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 이제까지 그가 훌륭한 아들, 좋은 오빠일 수 있던 것은 그가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벌레가 되어서도 출근 걱정을 하던 그레고르 잠자는 점차, 벌레인 자신에게 익숙해져 간다. 방을 슬슬 기어다니며 나름대로 소일거리도 한다. 여동생이 켜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황홀한 기분을 맛보기도 한다. 그가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었을 때보다 더욱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회사 일에 치여 살던 그가 언제 이렇게 음악에 심취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있었단 말인가?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가 짐스러웠던 가족들은 드디어 그를 포기하기로 한다. 여동생은 '우리는 저것에서 벗어나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런 가족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그레고르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조용히 숨을 거둔다. 잠자가 죽은 뒤 가족들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오랜만에 야외나들이를 가고, 나들이에서 그레고르 아버지는 딸의 홍조 띤 뺨을 바라보며 어느덧 그녀가 성숙한 여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노동하지 않아 더는 쓸모없어진 그레고르는 그들의 소원대로 죽었지만, 그에게 기생해서 살아왔던 여동생의 육체는 한껏 만개한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가족의 모습은 희망차기까지 하다.


일하지 않으면 벌레만도 못한가? 아니면 벌레가 되어 일할 수 없어서 벌레만도 못한가? 경제적 가치가 없으면 가족으로 인정되지도 않는 그레고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그 어디도 없다. 그의 작은 방조차 가족들이 '창고'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저 숨죽여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카프카의 <변신>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노동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15년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죽음으로 사라졌지만, 오늘의 현대인에게서 또 다른 그레고르의 모습을 본다.


한 20년 뒤에 이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는 그레고르 잠자에게서 어떤 면을 새로이 보게 될까? 고전의 힘이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읽을 때마다 다른 발견과 함께 예전에는 몰랐던 울림을 주는 데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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