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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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부터 먹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맛없는 것부터 먹는 이가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보통 맛있는 것부터 먹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맛없는 것을 먹으려고 할 때면 어쩐지 더 맛없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 덕에 ‘맛있었던 것’의 기억은 조금 더 특별해진다.

아껴두었던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을 드디어 읽고야 말았다.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그의 마지막 미완성 유고작인 <명암>을 뜻하는 것인 줄 오해하는 이도 있을 텐데, 내가 여기서 말하는 ‘마지막 작품’이란 그의 작품 가운데 아직 읽지 않고 아껴두었던 단 하나의 작품을 뜻한다. 그 작품은 <우미인초>로 나쓰메 소세키의 짧은 창작 시기 가운데 초중기에 속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물론 다른 문학작품들도 모두 그러하겠지만- 읽기 전에는 그 맛을 미리 헤아릴 수 없다. 현암사에서 출판되었고, 앞으로도 나올 나쓰메 소세키 전집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과 맛없는 작품을 미리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느냐, 맛없는 것을 먼저 먹느냐하는 질문은 어쩌면 나쓰메 소세키 전집에 견주어 생각해보자면 그 비교가 온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미인초>를 중반쯤 읽었을 때, 자연스럽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 작품 가운데 ‘맛있는 작품’에 속하지는 않는구나. ‘가장 맛없는 작품’에 속하지는 않지만 썩 그리 훌륭한 맛을 내는 작품은 아닌걸, 역시 아무래도 <마음>이 정말 맛있었어. 그러고 보면 나는 가장 맛있는 작품을 운 좋게도 제일 처음 음미한 셈이네.....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우미인초>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철학자, 문학자, 시를 쓴다는 수재. 거기에 나중에는 법학을 전공한 이도 나온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인 셋. 후지오, 사요코, 이토코. 철학자의 이름은 고노, 문학자는 무네치카, 시를 쓴다는 수재의 이름은 오노이다. 법학자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인물이지만 작가의 눈에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으로 그려진다. 책을 읽다보면 나쓰메 소세키의 시선과 생각은 철학자인 고노에게 투영되어 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고노는 다음처럼 말한다.

 “움직이면 토하네.”
 “거참 성가시군.”
 “모든 구토는 움직이기 때문에 하는 거라네. 속세의 모든 구토는 동(動)이라는 한 글자에서 일어나는 법이지. (25쪽)


 “당신은 그대로가 좋습니다. 움직이면 변하지요.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움직이면요?”
 “예, 사랑을 하면 변합니다.”
  여자는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을 꿀꺽 삼킨다. 얼굴이 새빨개진다.
 “시집을 가면 변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그대로가 좋습니다. 시집을 가기에는 아깝습니다.”
(262쪽)


각각 고노와 무네치카(25쪽), 고노와 이토코(262쪽)의 대화이다. 고노에게 움직임, 동적인 것은 구토를 불러일으킨다. 움직임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는 아끼는 이들에게 움직이지 말 것을 권하기도 한다. 움직임이란 상승의 욕구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좇기 위해 또는 쫓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녀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움직임은 바쁨을 낳고, 변화를 불러온다. 가만히 앉아서 ‘진지하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움직이는 이들에게 멈춘 자들은 뒤떨어짐이요, 발전이랄까 변화를 엿볼 수 없는 어떤 구태의연함이다. 그런 이들은 때문에 쉼 없이 ‘동(動)’을 좇아 느림, 정지, 멈춤 등을 물리치거나 버려야만 한다.

오노는 상승 지향적 인물이다. 위로 올라가야할 뚜렷한 목표와 동기가 있다. 대학 졸업 때 천황의 시계를 받은 수재이다. 박사를 얻어야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그가 버려야 할 것은 지나간 과거, 가난함, 비루함 그리고 그런 것들을 떠오르게 하는 마음의 빚, 짐, 모두를 포함한다. 사요코는 바로 그 세계에 속하는 여자이며, 후지오는 그 반대의 세계에 있다. 때문에 오노가 후지오를 욕망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움직임과 멈춤 사이에는 인간의 ‘도의’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움직임만을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무모하리만치 날아가는 것은 경박하기 그지없다. 근대화로 빛나는 박람회장의 ‘일루미네이션’을 쫓아 모여드는 불나방과도 같다. 산을 오르다가도 구토를 일으킨다며 한없이 누워있는 철학자 고노에게 그런 일루미네이션을 따라서 분주히 움직이는 자들은 모두 가짜이며, 거짓의 세계에 사는 이들이다. 그러기에 그 세계는 반드시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쓰메 소세키가 생각한 근대화이며 문명이리라.

철학자와 문학자의 봄날 산행 사이의 대화를 재미나게 엿보고 있자니 갑자기 ‘오노’라는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더니 그는 이윽고 후지오와 사요코 사이에서 방황을 한다. 그런데 후지오는 무네치카와 혼담이 오간 전력이 있다. 이런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 세계로의 이행 및 문명 발달로 인한 ‘인간의 타락’을 이야기한다.

 

“하하하하, 서양에 가면 타락할 것 같았는데요.”
“왜?”
“서양은 사람을 두 유형으로 꾸며서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두 유형이라니?”
“예의 없는 내면과 아름다운 외면요. 성가시니까요.”
“일본도 그렇지 않으냐? 문명의 압박이 심하니까 겉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지.”
“그 대신에 생존경쟁도 치열하게 되니까 내면은 점점 무례해지겠지요.”
“바로 그렇지. 겉과 속이 반대 방향으로 발달하게 되는 거지. 앞으로의 인간은 살아가면서 갈기갈기 찢기는 형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야. 고통스럽겠지.”
(340~341쪽)


<우미인초>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이제 다 읽어버리고야 말았구나, 하는 경험과 함께 또 다른 특별한(?) 느낌을 갖게 했는데, 바로 ‘오노’라는 인물에 대한 혐오스러운 감정이 그것이다. 소세키의 작품은 물처럼 담박해서 좀체 극도로 혐오스러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경멸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하더라도 사실 그런 마음이 잘 들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법을 전공한 ‘아사이’라든가 고노의 새 어머니, 그리고 ‘후지오’ 등이 그런 인물로 그려지는데 나는 이런 인물들에게는 딱히 그런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평범하게 흔히 만날 수 있는 유형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히려 ‘오노’라는 이 남자에 대해서는 불쾌하면서도 지저분한 쓰레기를 보는 듯한, 정말로 ‘구토가 치밀어오를 듯한’ 혐오의 감정까지 느껴졌다. 시까지 쓰신다는 이 수재. 겉으로는 유순하고 예의범절도 알며 나무랄 것 없어 보이지만 그 인간의 움직임, 즉 행동과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 생각은 정말 혐오스러웠다. 파혼을 ‘아사이’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전달하는 수법이나, 그래놓고는 또 무네치카의 말을 듣고 별 깨달음도 얻은 것 같지 않은데, 금세 도라도 터득한 듯이 돌변해서 무네치카의 말을 따르는 태도 등 정말로 그 변화무쌍함의 경박함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사이’처럼 딱 보기에도 가벼운 인간보다 ‘오노’처럼 모두가 칭찬해마지 않는, 칭송할만한 ‘근사한 표면’을 지녔지만 그 속은 온갖 오물과 악취로 가득 채워진 인간이 문명 세계에는 더 많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그런 존재가 더 위험스럽다는 사실을 나쓰메 소세키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책장을 덮을 때까지 ‘오노 이 새끼!’하는 감정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2016년은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이라고 한다. 때문에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도 이제 막판 몇 작품의 출간만을 남겨놓은 듯하다. 총 14권. 어느덧 모두 다 읽은 셈이다. 이 책 맨 뒤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전집 목록을 보고 있자니, 4~6번, 즉 <태풍> <우미인초> <갱부> 이 세 작품이 그의 작품 가운데는 조금 맛이 떨어지는 편에 속하는 것 같다. 그 다음 7~9번 이른바 전기 3부작에 속하는 <산시로> <그 후> <문> 이 작품들에서 본격적으로 맛이 무르익기 시작하더니 후기 3부작인 <피안 지날 때까지> <행인> <마음>에서 가장 최고의 맛을 낸 것 같다. 전집이 다 발간되면 첫 번째 작품부터 차례로 음미해봐야겠다. 맛이 조금 떨어진다 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는 나쓰메 소세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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