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예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가 만약 다자이 오사무 그의 분신과 같은 인물이라면, 이 작가는 신뢰할 만하다. <인간 실격>이후 다자이 오사무의 이런저런 작품들을 찾아 읽었는데, 역시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인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의 산문집인 <나의 소소한 일상>을 읽으니 ‘요조’는 결국 다자이 오사무구나 싶어진다. 그가 그리는 소설 속 인물은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투성이다.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표현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사물과 현상들이 그들에게는 그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세상에 태어난 일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죽을 용기가 없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부끄러움의 극치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부끄러움과 남다른 감수성을 감추기 위해 타인과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하고 바보짓을 하며 남들을 웃기고자 한다. 그리고 또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죽고 싶어 한다. 그런 인물들이 모두 실은 다자이 오사무 그 자신임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살기 위해 먹는 것을 두고 다투는 것도 부끄럽고 사람들이 야단법석 하는 것에 똑같이 경도되는 것도 부끄럽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자신이 특별하다는 표시를 하는 것 마저 부끄러워 이런 고독을 감추기 위해 그저 남을 웃기고 농담을 한다.

아아, 인간이 먹지 않으면 못 산다는 것은 얼마나 꼴사나운 일일까요. “이봐, 전쟁이 더 치열해져서 주먹밥 하나 놓고 다퉈가며 살아야 한다면, 난 사는 걸 그만둘래. 주먹밥 쟁탈전 참전 권리는 포기할 생각이니까. 안됐지만, 당신도 그땐 아이와 함께 죽을 각오를 하라고. 그게 지금의 나한테 남은 최소한의 프라이드니까. (<나의 소소한 일상>, ‘찾는 사람’, 100쪽~101쪽)

이것은 심약한 성격인 사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들이 너무 야단법석하거나, 존경하고 있는 작품에는 일단 의심을 품는 버릇이 있습니다. (같은 책, ‘내 반생을 말하다’, 113쪽)

나는 집에서 늘 농담만 한다. 그야말로 마음에 고민과 번뇌가 많기 때문에 겉으로는 쾌락을 가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나 할까. 아니, 집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남을 대할 때에도, 아무리 마음이 괴롭고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거의 필사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손님과 헤어지고 나면 나는 피로에 휘청거리고 돈 문제, 도덕 문제, 자살을 생각한다. (같은 책, ‘체리’, 132쪽)

인사를 잘하는 남자가 있다. 혀가 산들산들 나부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온 정력을 쏟고 있는 듯이 보인다. 부끄럽지 않은가. (같은 책, ‘벽안탁발’, 187쪽)


부끄러움이 많은 남자, 누가 조금 뭐라고만 하면 영혼까지 다쳐서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은 이 남자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늘 자살충동에 시달렸고, 그 짧은 삶에 무려 다섯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 그리고 결국 그 시도는 성공해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서른 후반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다자이 오사무를 두고 청춘의 상징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지나치지는 않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를 ‘청춘의 작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꼭 그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부끄러움에서 멀어져간다. 그러다 점점 ‘부끄러움’이라거나 ‘수치’라는 감정을 잊게 된다. 섬세하고 여렸던 감수성은 세상 풍파에 시달려 뭉툭해져버린다. 차라리 이 거친 세상을 사는데 그런 감정은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며 애써 지우려 노력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세상에 길들여져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의식도 없고 자괴감도 없는 그런 상태를 ‘사회화’되었다며,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며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추하게 늙어가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다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부끄러운 세상에 맞서 평생 자학하며 살다 사라졌다. 그러기에 ‘청춘의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여기저기 쇠사슬이 얽혀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솟구친다. (같은 책, ‘체리’, 139쪽)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쓸쓸함을 견디는 것입니다.” (같은 책, ‘희미한 목소리’, 235쪽)

인생이란,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것만은 말할 수 있는데, 괴로운 것이다. 태어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그저 남과 다투는 것이며, 그 사이사이에 우리는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같은 책, ‘여시아문’,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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