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반양장) -전16권
박경리 지음 / 솔출판사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드디어 <토지>를 다 읽었다.

 

처음 읽기를 시도했다가 절반 정도까지 읽고 중단,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마음 먹는데 2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과적으로 <토지>를 다 읽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림 셈이다. 읽는 것도 쉽지 않은데 쓰는 일이야 오죽했을까. 읽으면서 내내 했던 생각. 소설 <토지>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이 세상 어떤 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문학을 시, 소설, 희곡, 수필 등으로 분류한다고 했을 때 <토지>는 그 중 소설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토지>인 것이다. 그것만으로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무엇, 자체로서 그냥 <토지>. 

 

<토지>가 다루는 시대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19세기 후반부터 해방까지이다. 해방 이후의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고, 일본 천황의 항복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끝을 맽는다. 허탈하고 허무한 결말이다. 시간과 공간이 날줄과 씨줄로 엮이며 번지고 퍼진 이야기가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에 해방과 동시에 끝나버린 결말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저자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수습되지 못하고 이곳 저곳에 흐트러뜨려진 수많은 인물들의 안부가 궁금해서이다.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서 혹은 일본의 징병제, 징용제에 희생되어 타지로 흩어진 석이, 홍이, 주갑이, 윤국이 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들이 마치 내 지인인 것처럼 아직도 만주 허허벌판에, 중국 여기저기, 일본 여기저기 낯선 땅을 떠돌고 있지 않을까 걱정되고 미안하고 애달프다. 소설은 말해주지 않지만, 그들의 미래가 어떠했을 거라는 걸 추측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역사가 그래왔다. 역사는 힘 없고 가난한 자들을 보듬어 가며 발전했다기 보다는 힘 없고 가난한 자들이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때로 그들끼리 아웅다웅 하다가도 결국은 그들끼리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발전해 왔다. 역사가 보듬지 못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토지>의 주인공들이었다.

 

<토지> 같은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감사하다. 해방 이후부터의 현대사를 다시 어루만져줄 제2의 박경리를 기다려본다.

 

16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조병수와 소지감이 주고 받는 대화이다.

"밤낮으로 정상을 다하여 장롱 하나를 만들어놓고 나면 배가 고프다 했지요? 그 배고픔은 위장에서 오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오는 배고픔이라 했소."

"그런 말 한 것 같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도 쟁이받이의 얘긴데, 큰일을 하나 끝내고 나면 설움이 왈칵 솓는다 하더이다. 왜 그럴까요?"

"글쎄올시다. ... 인연이 끊어지니까 그런 것 아닐까 싶은데... 떠나야 하니까요."

"무슨 인연?"

"물(物)과의 인연 말입니다."

"물과의 인연!"

"그렇소. 정성을 다할 때 그것은 하나의 인연이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박경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배고픔이었을까, 설움이었을까. 24년 동안 자신의 손에서 태어난 <토지>와 맺은 인연을 끊어졌을 때의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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