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 땅은 누구의 것인가 e시대의 절대사상 24
헨리 조지 지음, 김윤상 외 옮김 / 살림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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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조지가 살았던 19세기 중후반의 미국은 산업화와 서부 개척의 시대였다. 전신, 통신회사 그리고 철도회사가 성장하고, 땅에 대한 투기 현상이 극심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헨지 조지는 신문사의 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극도의 사치와 비참한 빈곤이 공존하는 뉴욕의 현실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점점 풍요로워지는데 빈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농민과 대화를 나누던 중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이때 부의 증가와 빈곤의 증가가 함께 나타나는 이유가 머릿속에 영감처럼 번쩍였다. 인구가 늘어나면 토지 가치가 오르고, 토지가 필요한 사람은 돈을 더 내야 한다. 아는 이 이치를 깊이 생각했고, 그 생각은 그 뒤로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31쪽)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진보와 빈곤>을 썼다. 그의 핵심 주장은 지주에게 보상하지 않고 지대세를 부과해 지대를 공유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했다. 토지에 대한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은 개인에 따라서 사실로, 또는 견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헨리조지의 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쑨원, 톨스토이, 아인슈타인, 헬렌 켈러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심지어 사회주의에도.

 

헨리조지는 또한 19세기 후반 침체되었던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을 부활하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헨리조지 사상은 경제활동의 자유와 자본의 사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본질적으로 융화될 수 없었다. 헨리조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전 세계에서 헨리 조지의 영향력이 칼 마르크스보다 더 컸다고 한다.

빈곤을 정당화하는 이론 중 하나가 임금기근설인데, 임금기근설은 '임금은 자본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다양한 노동 형태 모두에서 임금은 자본이 아니라 임금이 그 대가로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임금기근설의 전제는 오류이다. 임금기근설 자체도 오류이다. 비록 임금협상 때마다 자본이 주장하는 임금기근설이 여전히 먹히고 있는 실정이지만.

 

 

헨리조지는 지대조세제가 그 해결책이라고 얘기하는데 지대조세제의 내용은 이렇다.

대안은 사유 토지의 매수도 환수도 아니다. 매수는 정의롭지 못한 방법이고, 환수는 지나친 방법이다. 현재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토지를 가지게 한다. 각자 보유하는 토지를 지금처럼 자기 땅이라고 불러도 좋다. 토지를 사고파는 것도 허용하고 유증과 상속도 할 수 있도록 한다. 속만 얻으면 껍질은 지주에게 주어도 좋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지대의 일부를 조세로 걷고 있다. 그러므로 단지 조세 방법만 약간 바꾸어 지대 전체를 조세로 징수하고 다른 조세를 면제하는 지대조세제를 실시하면 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전근대 사회부터 지금까지 모든 농민들의 염원인 '경자유전'의 원칙이 실현되지 않을까. 토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토지를 소유하는 사회.

 

헨리조지는 지대조세제가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근거와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대해 다섯가지 정도 제시했는데,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에 대한 욕심이 사라져 각종 사회범죄가 없어질 거라는 예측은 지나친 것 같다. 그렇지만 빈곤이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지적은 적확한 것 같다.

문명의 차이는 개인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사회조직의 차이에서 생긴다는 점, 진보는 언제나 어울림에 의해 촉발되었다가 언제나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뒷걸음질한다는 점, 지금도 현대 문명 속에 과거의 모든 문명을 파괴했던 원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점,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는 무정부 상태와 전제정치로 빠지게 된다는 점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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