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15 : 에스파냐 먼나라 이웃나라 15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흑백판 시리즈 일부를 어렸을 때 본적이 있다. 프랑스, 영국, 독립 편이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컬러판 시리즈 마지막 편, '에스파냐'가 출간되었다는 광고를 보고 구입해 읽었는데, 정말 재밌었다. 수업 자료로 활용하고 싶은 페이지도 굉장히 많았고.. 무엇보다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 함께 호흡하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그 나라의 자연환경, 문화 등을 통해 역사를 더 알기 쉽게 전달해준다는 것 등이 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수업시간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자료(그림, 이야기)를 남겨야 겠다.

 

 

1. 한반도의 두배. 인구는 대한민국과 비슷.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방에선 자신을 에스파냐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지방색이 강함. 공용어 4개. (스위스도 4개.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2. 대체로 자존심이 강함. "에스파냐 거지는 빌어는 먹어도 자존심 때문에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3. 투우 : 세 명의 투우사가 각각 두마리씩의 숫소를 상대로 싸운다. 여섯마리 숫소가 모두 죽거나 투우사가 죽거나 다쳐서 실려나갈 때까지 경기. 가장 남성적인 인간과 가장 남성적인 동물의 대결.

 

4. 알타미라 : '위를 보라'라는 뜻.

 

5. '에스파냐' : 로마에 점령 당한 후 히스파니아라고 불린 데에서 유래. 로마는 속주 출신의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음. 트라야뉴스, 테오도시우스 1세와 같은 황제도 에스파냐 출신이었음.

 

6. 메스키타 : 987년 건립. 200여년 만에 완성. 회교사원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1293개의 기둥. 현재는 856개만 존재.

 

7. 카톨릭을 믿는 이베리아 인들은 유대인을 박해했지만, 이슬람은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유대인은 이슬람 세력에 적극 협조했다. 그래서 코르도바 왕국에서 유대인들은 왕국의 전성기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8.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군대를 십자군에 보내지 않는 대신 레콩키스타 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9.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 에스파냐에 역사적인 해. 500주년이 되는 1992년에 큰 대회 개최. 바르셀로나 올림픽(황영조 금메달), 세비야 엑스포.

 

10. 영국, 프랑스 견제하기 위해 스페인과 손잡아. 헨리 7세 아들과 페르난도 2세의 딸 캐서린과 결혼시킴. 그러나 헨리 7세의 아들이 일찍 사망. 헨리 8세가 형수인 캐서린과 재혼. 앤블린과 사랑에 빠져 캐서린과 일방적 이혼.

 

11. 근친상간 등으로 선천적인 기형이 많았던 합스부르크 혈통으로 인해 에스파냐의 왕들 중에는 지독한 주걱턱의 기형이 많았다. 위아래 이가 맞이 않아 음식을 제대로 씻지 못해 입을 닫을 수 없어 파리가 멋대로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 수염을 길러야 했다.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의 국기가 비슷한 이유는 1명에 의해 공동 통치되었기 때문이다.

 

12. 예수회. 군대와 같은 조직. 전투적인 종교단체. 오직 교황에게만 복종. 카톨릭을 지키기 위한 청소년 종교 교육 중시. 세계 곳곳에 에수회가 세운 교육기관이 존재하는 서강대가 대표적이다.

 

13. 엘레스코리알 궁전

 

14. '하나'만을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의 가치는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된다.

 

15. 말린체 : 코르테스의 정부가 되어 갖가지 원주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길잡이가 되어 멕시코 정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지금도 '말린체'란 배신자, 민족 반역자를 상징.

 

16.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멕시코 시티) : 인구 30만. 당시 유럽의 가장 큰 도시인 파리 인구가 15만.

 

17. 코르테스와 에스파냐 군대는 한반도 싸우지 않았다. 코르테스가 탄 백마 덕분. 그러나 아스테카 인들이 벌이는 축제에 다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 무장도 하지 않은 아스테카 인들에게 무차별 살육. 아스테카이들의 반격으로 코르테스 군대 몰살. ('슬픔의 밤' vs '위대한 승리의 밤')

 

18. 코르테스가 '꽃의 전쟁'을 금지시켜 사람 먹는 풍습이 사라지게 됨. 코르테스 유해는 죽은 뒤 그가 정복했던 멕시코로 옮겨와 묻힘. 그런데 1823년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짐.

 

19. 잉카 : 20여개 언어를 쓰는 100여개 부족. 1000만 명 이상의 주민을 통치하던 대제국.(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국기), 수도 쿠스코('세계의 배꼽').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 가득찬 황금의 제국. 피사로가 승리한 데에는 잉카 제국으로부터 해방을 원하는 많은 부족의 도움이 결정적.

 

20. 펠리페 2세. 네덜란드와 전쟁 중 파산 선언. 모라토리엄(지급 불능). 세계적인 신용불량국가로 전락.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에도 이미 몰락의 씨앗. 비타협적이고 불관용적인 순혈주의는 어스파냐의 몰락에 중요한 원인이 됨. 의사, 금융업 종사자 대부분 유대인. 생산감소, 상업과 금융 마비로 이어짐.

 

21.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 :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종결. 오스트리아 제외한채 연합국(영국, 네덜라드)과 동맹국(에스파냐, 프랑스) 사이에 체결. 에스파냐에 부르봉 왕조가 들어서는 것을 인정하되 에스파냐의 왕은 영원히 프랑스왕을 겸하지 못한다는 내용.

 

22. 에스파냐 내전은 한국전쟁과 비슷하면서도 달라. 동족 간 전쟁, 전쟁 후 가난, 수십년 독재정치 전개. 차이점은 에스파냐의 경우 군국주의까지.

 

23. 남미 독립 영웅 : 시몬 볼리바르(콜롬비아), 호세 산 마르틴(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24. 미국-에스파냐 전쟁(1898) : 미국, '나들이 가는 것 같은 가벼운 전쟁'. 미국이 역사에서 처음으로 북아메리카 대륙 밖으로 세력을 뻗는 첫번째 계기

 

25. 1차 대전에서 중립 유지. 국력이 기울고 해외식민지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 전쟁 물자 공급으로 경제 성장. 금보유고 세계 4위. 노동자세력 확대 됨.

 

26. 프랑코 정권. 2차대전때 파시스트 정권 지원. 이들에게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엄정한 중립. 전쟁 뒤 국제적 외톨이가 됨. 1946년 유엔 가입도 거부됨. 경제개발 과정에서 도시와 농촌 격차 극심. 국민이 정치에서 무관심해지고 독재권력을 굳히기 위해 우민화정책 시행. 로마처럼 '놀이 문화' 장려. 특히 축구를 크게 활성화. 마드리드에 8만명 수용하는 대형 축구 경기장. 에스파냐와 같이 지방색이 강하고 지역마다 심한 경쟁의식 갖는 나라에서는 축구가 지역 대리 전쟁과 같은 성격. 앙숙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축구 대결이 벌어지는 날에는 지금도 거리가 한산.

 

27. 1975년까지 프랑코의 독재. 프랑코 사후 허수아비 왕 옹립해서 프랑코 독재체제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후안 카롤루스 1세가 왕이 된 뒤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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