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기 1 -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해방일기 1
김기협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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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김기협이 해방 3년사(1945.8~1948.8)를 하루 하루의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전 10권에 이르는 대작이다. 글이 '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보니 화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 감정 섞인 어투 등이 문장 속에 녹아있기도 한데, 이 책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적인 예로,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들은 김구가 "기쁜 소식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일"이라고 표현한 것을 가지고 '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할 이상한 소리'라면서 "이는 김구의 파당적 자세를 보여주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족의 역할이 작았던 것보다 임정의 역할, 한독당의 역할, 자신의 역할이 작았음을 아쉬워한 말로 보는 것이다."(312)라고 했다.

 

아, 나는 왜 텍스트를 이렇게 '솔직하게' 읽는 능력이 없는걸까!

 

1권에는 해방 직전과 직후 국내 정세와 여러 정치세력들의 활동, 미국과 소련의 동향 등이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해방 즈음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도파 여운형, 안재홍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는지 잘 나와 있는데, 안재홍에 대해 몰랐던 여러 면모를 새롭게 알게 됐다는 것이 책을 통해 얻게된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8월 16일에 송건호가 그린 안재홍의 '걸인 같은 모습'을 소개했는데, 무슨 뛰어난 일을 할 '능력'에 대한 기대감보다 민족주의를 벗어는 짓은 어떤 것도 할 리가 없는 '지조'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인물로서 당시 사람들의 안재홍에 대한 인식을 알아볼 수 있다. 건준을 이끄는 입장에서도 건준이 기능적 임무만을 맡음으로써 중경 임시정부의 정치적 권위와 대립하지 않고 보완관계를 맺기 바란 것은 힘보다 신뢰를 중히 여기는 그의 개인적 태도가 연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200p)

 

해방 직전 국내에서 결성되었으며 건국준비위원회의 모체라고 가르쳐왔던 건국동맹이 사실은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조직이었다는 것과,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한 것이 임시정부의 입지를 작아지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저자의 개인적 판단이지만 일리가 있는 것도 같다.) 평가는 처음 접했다.  

 

또 미군이 주군하기 직전 건국준비위원회를 주도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한 것은 해방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결단의 조치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책에서는 "건준은 서둘러 인공을 만들어냄으로써 성실한 노력을 쌓아나갈 근거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고, 인공은 정부로서의 권위를 무리하게 주장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의 길을 열어 놓았다. ... 인공은 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립 격화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시기 안재홍은 이미 건준을 떠난 상태였고, 여운형 역시 인공 수립을 그렇게 낙관한 것은 아니었으나 건준의 실권을 장악한 좌익인사들에게 끌려간 측면이 크다고 한다. 좌익인사들이 부서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직무집행을 거부하기까지 했다.

 

책에서 "'해방'은 해방일 뿐이지 '독립'이 아니다. 독립운동의 종착점이 아니라 본격적 독립운동의 출발점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해방 당시 한국사회에는 사회주의 정책을 필요로 하는 측면이 많이 있었다. 그렇다 해서 자본주의적 측면을 일체 배제하는 철저한 공산주의 체제를 꼭 필요로 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한국의 중도적 정치인들은 양 측면을 조화시킬 방책을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일각에서 철저한 자본주의체제를 고집하는 극우파가 나타나, 타협 아닌 대결의 양상으로 사태를 끌고 가는 데 미군정의 편의주의적 태도를 이용한 것이다."(403)

 

* 오스트리아와 베트남도 분할 점령이나 분단을 겪었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분단이 고착되었는가? (박태균,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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