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 -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네로의 희생양이 된 그리스도인들.

64년 여름, 로마에서 대규모의 화재가 발생했다. 로마인들은 화재의 원인이 도시를 재개발하기 위한 네로의 음모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자 네로는 인기 없는 신흥 종교 세력인 그리스도인들을 희양 삼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생각을 하게 됐다. 사도 베드로 역시 이 박해의 시기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기독교가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무신론, 인육을 먹는 만찬, 근친상간. 이름이 알려진 신이라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숭배했던 로마인들에게 하나님만을 숭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신론자로 비춰졌던 것. 그리스도인들이 포도주와 빵을 먹으며 예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하는 것도 식인 풍습을 연상시켰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작용하였다.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켰을때, 그리스도인들은 방관적 태도를 취했는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결별하게 되었다.

 

(31)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1986년 4월 13일 로마의 유대교 회당을 공식적으로 방문해서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인들의 특별한 형제들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형"이라고 부를 때까지 거의 2천년 동안 양측은 서로 화해를 모른 채 살았다.

 

기독교 신앙은 4세기 후반까지 156개의 이단이 활동중이었다고 기록될 정도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이후 기독교는 현실 정치와 밀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교회를 위해서 기꺼이 관대한 후원자와 보호자가 되어주었고, 교회는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서 기도했다.

 

(74) 기독교는 황제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으면서 서서히 로마제국을 닮아 갔다. 교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통성과 보편성을 추구했고, 점차 법률적인 체제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변화의 과정을 거친 기독교는 더이상 어렵고, 소외당한 소수 계층을 위한 종교가 아니게 되었다. 이단들을 다스리는 데 폭력마저도 서슴지 않고 행사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지만 그에 따른 반성은 없었다.

 

아리우스파의 주장이 정통 교리로 채택되지 못한 이유를 자세히 알게 됐다. 아리우스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단일한 본질의 절대자를 추구했다. 그런 하나님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아리우스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라는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19세기 말에 등장한 '여호와 증인'은 교리 면에서 아리우스와 흡사한 점이 많다고 한다. 자신들을 완전한 하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동시에 예수님을 유한한 피조물로 간주한다는 부분에서다.

 

476년, 게르만족에 의해 서로마가 멸망하였는데, 제국이 멸망했다고 해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콘스탄티노플에는 여전히 서방 세계를 상대로 주권을 주장하는 황제가 버티고 있었고, 로마 교구의 수장이 권력의 공백을 메우면서 교회에 유리한 분위기로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

 

동방 교회는 북아프리카 교회들을 배격하고 박해를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이슬람교의 확산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무슬림은 교회를 폐쇄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자유롭게 예배하도록 허락했다.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예배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카롤루스 대제가 이민족을 개종시키는 방식은 매우 잔인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특정 부족을 지배하게 되면 일제히 세례를 받게 했다. 그가 다스리는 지역의 백성들은 90% 이상이 기독교로 개종했을 정도. 하루만에 4,500명을 목을 베어버리기도 했다는..

 

음..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동/서로마 교회 분열의 결정적 이유가 삼위일체설 때문인가.. 하는 점이다.

 

십자군 원정 시기 그리스도인 병사들은 대 학살극을 펼치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닥치는 대로 무슬림을 살육했는데,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이 학살극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예루살렘의 라틴 총대주교는 십자군 원정 호소 900주년을 기념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85) "종교적 극단주의와 종교전쟁을 낳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인가이다. 만일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을 경회하는 데 힘을 쏟으면 하나님에 대한 탐구과 존경은 더 이상 전쟁과 범죄, 증오의 명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종교개혁에 대해,

(248) 위클립과 후스가 화약을 준비했다면, 에라스무스는 거기에 도화선을 매달았다. 1517년 10월 31일에 어느 수도사가 도화선에 불을 댕겼고, 결국 그 폭발 때문에 유럽 전체가 들썩였다."

 

뒷부분의 근대 신학에 대한 설명은 잘 이해가 안됐다.

저자가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이라 왠지 친기독교적이고 어느 정도 편향적일 것 같았는데,

그런 점을 느낄 수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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