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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 개정판 ㅣ 한국 현대사 산책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평점 :
리영희.
"오늘 해방된 지 38년이 지나도록 분단이 계속될 줄 알았다면 나는 차라리 신탁통치를 수락함으로써 민족분단의 비극을 예방하는 데 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탁통치를 식민지 연장과 같이 생각했던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랬듯이 즉시 독립에의 정열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Anti-Trusteeship'과 '신탁통치반대'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화물자동차에 올라타고 확성기로 외치고 다녔다. ... 내가 존경하고 있던 김구 선생이 신탁통치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것을 지지했더라면 나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훗날의 이승만씨 집권과 그의 타락, 부패한 친일파들의 반민족적 정권 유지의 원초적 협조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회한이 지금에도 가시지 않고 있다. '신탁통치 찬성=공산당'의 당시의 정치투쟁의 단순논리의 의미를 내가 꿰뚫어볼 능력이 없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이 '반탁'의 여세를 몰아 민족분단, 단독정부 수립으로 민족의 순수한 열망을 악용할 줄은 더욱 몰랐다."(39)
"역사적 조건화로 인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극단으로 몰고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극단주의는 너무도 뚜렷이 대비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중간은 없다. 흥망 양자택일이다.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옮겨가는 속도도 빠르다. 분열하고 증오하는 일도 목숨 걸고 하지만, 공부하고 일하는 데에도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치닫는 한국은 참으로 묘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사회다. 아니 공존하는 정도를 넘어 '뫼비우스의 띠' 처럼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활력이 넘친다. 이기적인 생존경쟁도 치열하지만 이타적인 사회참여도 왕성하다. ....
전투적 극단주의의 유산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펄펄 살아 있다. 좌우 그 어느 쪽이건 늘 에너지 과잉이다. '오버'는 기본이요, 필수다. 그래서 재미있고 무한한 가능성도 열려 있긴 하지만... "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있는 내용인데.. 해방정국을 묘사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내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후에서 저자는, '이제는 중간으로 가야할 때'임을 피력하고 있다.
1947년,김원봉이 좌익 중심의3.1 기념 시민대회에 참여했다가 검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노덕술에 의해 고문까지 받았다. 김원봉이, "내가 조국 해방을 위해 중국에서 일본군과 싸울 때도 한번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수갑을 차다니 이럴수가 있소"라고 말했다. 일제 잔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지게 만들었다.
친일파와 한민당은 민족주의 이념을 독점한 김구가 자기들 보다도 강경한 반탁, 반모스크바 협정 태도를 취한 결과 어부지리 효과를 극적으로 얻었다. 이것은 하나의 반전이었다.
1945년의 4개월 동안 해방 국면에서 반공주의는 대중들에게 아직 깊이 침투되지 못했었다. 김구의 격렬한 반탁은 모든 반대 세력에게 민족주의라는 예기치 않은 정당성을 얹어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김구는 반탁 주도로 자신이 증오해 마지않던 친일파에게 큰 힘을 준 셈이었다.
<5.10 총선거 거부는 옳았는가?> 에서.. 저자는, "만일 남북 협상파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에 참여했다면 그들은 선거에서 이승만을 패배 시키는데 성공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김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좀 더 심화시켰다.;;;;
인상적이었던 부분.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하여 중간파 정치인들이 명분을 중시하여 5.10 선거를 전면적으로 보이코트한 것은 이승만을 선두로 하는 보수세력에게 큰 정치적 이득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무릇 정치란 것은 결코 관념의 유희가 아니고 구체적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