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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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을 이끌었던 제후 고드푸르아, 보에몬드, 레몽, 보두앵, 탄크레디가 세상을 떠났다. 1차 십자군의 주역들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이슬람은 재정비에 나서게 된다.

장기에 의해 에데사가 함락되었고, 이렇게 되자 예루살렘 여왕은 교황 에우게니우스 3세에게 새로운 십자군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시토파 수도원(클뤼니수도원과 경쟁 관계에 있던) 출신의 베르나르두스는 프랑스 왕에게 원정을 요청했다. 왕은 최상위의 기사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 아래의 제후와 기사들이 함께 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이때 프랑스 왕비도 참가함으로써 2차 십자군에는 여자도 정식으로 참가하게 된다. 1차 십자군과 달리 황제나 왕이 이끄는 십자군이었기 때문에 출발 당시 누구도 성공을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한편 이때 비잔티움의 황제 마누엘은 셀주크투르크와 밀약을 맺어 휴전을 약속한 상태였다. 이 사실을 모르고 다마스쿠스로 떠난 2차십자군은 매복해 있던 투르크군에게 대패했다. 당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들에게(특히 십자군들에게) 비잔티움 황제가 불신의 화신이었던 것은 그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큰 것 같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2차 십자군들은 누레딘의 원군 파병 소식이 들려오자 바로 철수해버렸다.

시오노 나나미는 종종 특정 상황을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곤 하는데.. 위의 상황을, '1차 원정은 다이묘와 다이묘의 대결, 2차 원정은 쇼군과 다이묘의 대결'로 묘사하고 2차 십자군을 그리스도교 세계의 두 쇼군이 이슬람측의 지방 다이묘에 퇴각당한 것이라 설명했다.

또 작가는 십자군 원정의 진정한 원인을 십자가에 서약한 신앙심에서만 찾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온갖 물자의 해상 수송과 성지 순례자를 태우고 지중해를 왕래하는 일을 했던 이탈리아 해양도시 국가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탈리아 해양도시 국가가 이슬람교도와 교역을 시작한 것은 아말피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순이라고 한다. 베네치아 상인이 9세기에 이미 오리엔트에 출몰했으니 나머지는 훨씬 전부터 활약하고 있었을것이란다.

한편, 누레딘에 의해 바그다드에서 다마스쿠스를 거쳐 카이로까지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누레딘보다 스무살 정도 어렸던 살라딘이 카이로 지역의 통치를 맡으며 세력을 키워 나갔다. 살라딘의 능력을 가볍게 여겼던 누레딘은 살라딘의 세력이 급속히 확대되자 위기 의식을 느끼지만, 결국 대세는 살라딘에게 기울게 된다. 

살라딘이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그가 예루살렘을 되찾은 뒤에 보여준 통치의 내용 때문인 것 같다. 그리스도교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작업을 했지만 콘탄티누스 대제가 건립한 성묘교회는 파괴하거나 모스크로 바꾸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순례를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십자군 역사상 가장 화려한 조합의 제3차 십자군이 유럽을 떠나 속속 중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직전에 자기 사유재산을 털어서 그리스도교의 몸값을 지불해준 뒤 그들을 풀어주었다. 진정한 '무혈입성'이었다. 물론 그전까지 무수히 많은 피를 뿌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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