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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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문학동네

침묵당한 여자의 전쟁

 

2차 세계대전 러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승리의 역사이다. 사람들은 승리로만 역사를 기술하고 화려하게 치장했다. 그러나 승리의 역사는 수많은 병사들의 패배와 상처를 딛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나마 여자들은 승리를 누리지도 못했다. 세상의 기준이 남자에게 맞추어진 시대이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싸우고도 전쟁이 끝나자 모멸의 대상이 되었다. 침묵하지 않으면 평범한 삶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여자들은 이성의 역사관에서 인정하지 않는 감성의 역사를 속에 품은 채 몇십 년을 침묵했다. 저자의 인터뷰가 시작되자 비로소 그녀들은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어”(p.31)라며 울부짖었다. 억눌렸던 여자의 역사가 드디어 남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전쟁에서도 터져 나온 것이다. 그것은 전쟁에 한해서는 더 철저하게 여자들이 억압당했음을 의미한다.


날것의 목소리는 날것의 비참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처음부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책을 읽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비슷하게 반복되는 에피소드에 무뎌졌는지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반복되는 에피소드를 덜어내 주었으면 싶었던 건, 내 의식이 그녀들의 목소리에 무뎌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뿐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쟁의 상흔에 대해 국가는 어디까지 고민하고 보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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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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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 문학동네

익숙한 부조리를 낯설게 보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보다 칠십 리 장화를 인상적으로 보았다. 어쩐지 농담 같은 이야기가 앞 작품보다 썩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선명하게 주어진 환상이 어찌할 수 없는 아이의 천진함을 조명하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154p 아이는 찬란한 아침햇살 다발을 어머니의 작은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 빛이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피곤이 덜어지리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기상천외한 설정을 걷어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상황 또는 감정이 드러난다. 특이한 설정이 평이한 상황을 감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주목 효과는 좋으나 공감 효과까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지나치게 유머러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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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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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 / 삼인

아름다운 시는 무정하다

 

처음에는 제목을 하늘에서 우물 보기라고 생각했다. 말이 안 되는데 자꾸 하늘에서 우물을 찾았다. 어쨌건 이 책의 제목은 <우물에서 하늘 보기>이다.

우물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하늘을 쳐다보듯, 이 책에서는 시를 통해 인간과 인간 사이에 펼쳐진 세상을 보여준다. 나처럼 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시와 얽힌 이야기가 즐겁고, 시에 대한 강변에는 경건해질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 말에 이르러 희망이라는 말을 보았다.

 262p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울적해진다. 나는 시를 잘 읽지 않으니까. 차라리 하늘에서 우물을 발견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보이지 않는 하늘을 우물 속에서 찾기보다. 마지막에는 산문과 시의 차이를 말하며 심지어 시가 무정하다고까지 한다.

 

 271p 산문은 이 세계를 쓸고 닦고 수선한다. 그렇게 이 세계를 모시고 저 세계로 간다. 그것은 시의 방법이 아니다. 시가 보기에 쓸고 닦아야 할 삶이 이 세상에는 없다. 시는 이를 갈고 이 세계를 깨뜨려 저 세계를 본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무정하다는 것이다.

   

그 말 그대로다. 무정한 시 같으니라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시를 찾아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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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의 바이올린 소녀성장백과 4
김효 지음 / 풀빛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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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예뻐서 눈길이 갔다. 한지붕 세가족이라니 최근에 본 응답1988이 생각났다. 재능이 있어도 부모들이 쉽게 시킬 수 없는 공부가 예체능이다. 율리는 운좋게 바이올린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약간 씁쓸해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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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누가 정해요? 소녀성장백과 2
김효 지음 / 풀빛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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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아직 현재진행중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를 보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딸의 인생계획을 짜놓은 엄마는 비록 극대화된 모습이기는 하지만, 최근 부모들의 양육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 지 씁쓸함을 느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꿈은 누가 정해요?>는 그에 비하면 매우 현실적이다. 꿈을 가지라고 권하지만, 막상 부모가 하는 일(머리핀 제조)을 하고 싶다고 하자 반대를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닌 먹고 살려고 하는 일에 자식을 들여놓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의 비애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까지 이애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결국 직업 체험관에 가서 다양한 분야에 시야를 열어놓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고정된 꿈을 요구하다 못해 요즘은 그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꿈을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는 여유가, 아이보다는 오히려 부모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만 개의 가능성을 다 살피기에는 현재 삶이 각박하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건 결국 아이의 몫인 것을. 게다가 아이의 꿈이란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니 벌써부터 조바심내지 말자. 


지금 나의 꿈은 진정 나의 것인가. 어른도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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