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1 펭귄클래식 10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길들여진 새는 날 수 있는가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은 세계 3대 관현악단이다. 수석지휘자를 단원들의 투표로 선발하는 민주적인 전통이 유명한 반면, 지나친 보수성으로 페미니스트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1982년 수석지휘자였던 카라얀이 첫 여성 연주자로 채용한 자비네 마이어는 734의 투표 결과로 임명이 취소된 바 있다. 하프 파트 외에 여성 연주자가 정단원이 된 건 2000년에 이르러서였다.


마리 퀴리는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과학자다. 방사능의 발견으로 1927년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지만,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끝내 그녀를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학은 비밀스럽게 여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847년 샬롯 브론테는 남성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발표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프랜시스 버냇의 소공녀를 비롯하여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등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감성 소설이 차례차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여성이 쓰는 소설은 미래의 아내와 어머니를 위한 도덕적 교훈 안에서 주로 생존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20세기에 들어서야 재평가되었으며,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로만 알려진 메리 셸리의 정치적 입장을 작품 속에서 찾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소녀문학이 번성하기 시작한 1868년에 작은 아씨들을 발표했다. 에세이와 스릴러 장르를 거쳐 오다가 소녀문학에 이르러 큰 성공을 거둔 루이자는 다시 성인용 작품으로 회귀하지 않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루이자가 상업성과 타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기 위해 여성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드물었다. 여성 작가들의 고뇌와 갈등은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 중 조를 통해 잘 드러난다.


소설을 팔아 자립의 기쁨을 알지만, 상업적인 통속소설에 매진했다가, 반성하고 예술성을 추구하기까지 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그 시기에 조는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었다. 병아리 예술가였다. 에이미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어기는 사람은 비웃음만 당할 뿐이라고 말하자 조가 대답한다

비웃음에 굴하지 않는 혁명가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결코 잘 돌아가지 못할걸. 너는 오래된 세상에 묻혀 있고 난 새 세상을 갈망하니까 생각이 다를 수밖에. 넌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 난 가장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살 테니.(2102p)


그러나 결혼 적령기를 넘기면서 조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을 향해 눈을 돌린다

예전에 조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뭔가 굉장한 일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는데,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이 주신 행복만큼 자신도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애쓰면서 부모님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2311p) 

그리고 현실을 바라본다

노처녀, 이게 미래의 나야. 펜을 배우자로 삼고 자식들 대신 글을 가족으로 삼아 앞으로 이십 년 동안 약간의 명성을 얻겠지.(2318p) 

결국 조는 바에르 교수와 결혼하고, 예술가가 아닌 교육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조는 실패한 걸까. 현실 앞에서 타협해버린 걸까. 가부장제 사회에 길들여지고 만 걸까.


그러기에는 조의 행동이 파격적이다. 조는 바에르 학원에 장애인과 혼혈아까지 받아들인다. 작은 아씨들의 시대 배경인 1863년은 노예 해방 선언이 발표된 직후이지만, 인종차별은 그대로 남아 있어 혼혈아를 받아들인 학교는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는 혁명가처럼 그 일을 해치운다. 그로부터 십여 년 뒤에 조는 말한다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때를 기다릴 거야. 이 모든 경험과 모습들이 내 글에 녹아들 날이 오겠지.(2391p)


새를 키우는 주인들은 애완조의 안전을 위해 윙 트리밍을 한다. 윙 트리밍이란, 애완조의 속 날개깃털을 잘라 멀리, 오래, 높이 날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윙 트리밍을 하면 새장 밖으로 나와 산책할 수 있지만, 윙 트리밍을 하지 않으면 새장 안에 갇혀 살아야 한다.


조는 여성성이라는 윙 트리밍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시대에 갇힌 여성들이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작은 아씨들의 저자인 루이자 메이 올컷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과는 달리 조는 바에르 교수와 결혼한다. 바에르 교수는 연인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두루 갖춘 데다 흔치 않은 여성의 조력자였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남성상이기에 저자는 그 인물에게 가난과 나이라는 굴레를 얹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아씨들에서 체제에 순응한 교훈성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저자의 지성과 유머는 선한 사람들이 미소 지으며 기꺼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섬세하게 그려낸 소녀들의 고민과 성장담은 현재에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뿐만 아니라 개성적인 인물들이 한데 모여 벌이는 일은 모험소설 못지않게 흥미롭다. 사랑해야 할 딸들이 그 안에 모두 있으니 감히 그 매력을 거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덕분에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작은 아씨들에 숨어 있는 새로운 생각들을 불편함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베스의 여성적인 희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러주거나, 조에게 불행한 결혼을 하느니 혼자 사는 게 낫다고 충고하거나, 매기와 존에게 평등한 부부 역할을 강조하거나, 독신 여성을 비웃지 말라고 당부하는 부분들이 그러하다. 만약 작은 아씨들이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그 말들이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었을까. 때로는 전복보다 조화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견고한 가부장제의 벽은 현대에 와서도 유리천장처럼 곳곳에서 발견된다. 윙 트리밍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행복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마치가의 딸들은 한 차례 탐색과 저항 뒤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따뜻한 가정으로, 평온한 죽음으로, 진실된 후원으로, 개혁적인 교육으로 실현되었다.


빠른 길이 어렵다면 돌아가면 된다. 짧은 날갯짓일지언정 새장 밖을 맛본 새에게 새장 안은 답답하기 마련이다.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새장 밖 세상은 서서히 넓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회고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작은 아씨들을 웃으며 읽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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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 2015-10-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글이네요. 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울림이 남을 듯합니다. 작가와 작품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푸릇푸릇 2015-10-18 22:59   좋아요 0 | URL
느낌 한 조각 공유해 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과 다르게 <작은 아씨들>을 보게 되는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