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풋내기들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우열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풋내기들> 레이몬드 카버 / 문학동네
먼저 『사랑을 말할 때~』를 편집한 고든 리시에 대해 악담을 하고 시작해야겠다. 생략에는 지나치게 대담했고 감성에는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었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보다가 지금이라도 원전대로 책이 출판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칭대명사를 통일하거나 지나치게 긴 서술을 압축하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그 외에는 편집자의 권한을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레이몬드 카버의 글에서는 언제나 균열점이 드러난다. 레이몬드 카버는 글이 끝나면 인물이 변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변화는 도드라지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 생활에 균열을 낸다. 용수철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듯 싶다가도 다시 변형지점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균열점들은 레이몬드 카버의 글의 공통점이지만, 시작과 끝, 그 사이를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리게 돌려 순간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바라보는 방향마저 다르게 잡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다르게 읽힌다.
그의 글에서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그래서 읽고 나면 내가 공감받은 것처럼 위안받게 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74p 그의 일은 꼭 필요한 직업이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으니까. 꽃집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먹을 걸 파는 게 나았다. 잠시 곁에 두다가 내던져버리는 걸 파느니. 꽃보다 냄새도 좋았다.
“자, 냄새 좀 맡아보세요.” 빵집 주인이 짙은 색 빵덩어리를 자르며 말했다. “빡빡하기는 해도 영양은 풍부하죠.” 두 사람은 냄새를 맡았고, 빵집 주인은 그들에게 먹어보라고 했다. 당밀과 거친 곡물 맛이 났다. 그들은 빵집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짙은 색 빵을 삼켰다. 나란히 늘어선 형광등 불빛이 마치 햇빛 같았다. 계속 이야기하다보니 이른 아침이 되어, 희뿌연 빛이 창문에 높게 비쳤지만, 그들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