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처럼 누워있어야 했던 추석을 보내고
연휴의 마지막날 교보를 찾았습니다.
사촌 하나가 부러 약속을 청해 나오라고 하는 전화에
그냥 마다않고 올랐던 서울길이었지요.
기운없는 어두움을 그렇게 걷어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명절 연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텅 빈 도심...
광화문을 나가면 늘 그곳에서
그렇게 날 마주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늘 조용히 응시하고 나즉히 일러주는
멘토처럼 말이지요.
나의 어리숙함과 조급함을
단단하지 못한 나의 무름과 못난 상처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친구처럼, 지혜로운 현자처럼,
때로는 내 아련한 그리움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한모금씩 눈으로 머금게 되는 글줄들이
몸 안을 가득 채우게 되는 날.
광화문 그 앞을 지나게 될 때면
늘 그런 어김없는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짧게 스치기도, 오랜 기억으로 남기도 하는
그런 울림글들을 만나는 곳.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도종환 님, <단풍 드는 날> 중에서
쓸쓸했던 지난 여름
파랗게 출렁이던 은빛 바다를 만나고
홀로 유난히 춥고 시렸던 올 신년의 겨울엔
바알간 온기 가득한 연탄 한 장이 되주고 싶던 내 마음 만난 그곳에는
어느새 분홍빛으로 물든 너른 풍경 하나가 걸려있었습니다.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그래요, 도종환 시인의 글귀였지요...
아..... 신음소리,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던...
책을 사들고 삼청동의 어느 찻집에 들러
한 잔의 차와 조우하고 있던 시간을 보내고
차에 태워 아이를 마중하고 난 뒤에도
난 선뜻 발길을 떼지 못하고
그 앞을 오래 서성였습니다...
그렇게 하늘을 마주하고
보름달을 마주하고 ...
눈감고 내 고요함을 소망하는
마음 하나 걸어두고...
구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곧 또다시 시월이 오고
어김없는 가을입니다.
그때처럼 낙엽이 지고
비가 오고
또 눈이 내리겠지요...
그러다보면 세월은,
어쩌면 그런 선물 같은 시간을 줄 수도 있을거예요 ...
그렇게 비우고, 흐르다 보면,
아름답게 물들 수 있는
묵묵한 나무도 되고
푸른 물결 헤엄쳐 반짝이는 은어의 마음으로도...
하늘 아래 마주하고 웃어볼 수 있으리라고
소망합니다,
그리고 기원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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