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의 밀크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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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부엌에서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5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을 꿈과 공상의 세계로 데려가는 깊은 밤,
잠자는 아이를 움직여 환상의 세계속으로 몰입시키고 또 빠져나오게 하고....
여기, 밤이 무서울 리 없는 당차고 씩씩한 한 사내 아이가 있어요
잠자리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깨어난 미키는 어느새
스스르 맨몸의 벌거숭이가 되어 환상 속의 부엌으로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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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잠좀자려는데... 이런, 아이의 잠드심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있는 모양입니다.
대차게 한마디 날려주네요. 아이의 표정이나 움직임의 변화가 재미납니다.
참, 아이의 침대 머리맡 천정에 매달아둔 모형 비행기도 보이시죠? 것두 잘 봐두세요.
찬찬히 그림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일, 그림책 읽기의 또하나의 재미입니다
<깊은 밤 부엌에서>는 미키라는 어린 사내아이를 등장시켜, 밤의 시간 속에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장면장면을 연속성을 지닌 컷들로 나눠
만화적인 상상력을 더해주지요.
작은 소컷들로 이어붙인 현실세계에서, 페이지 전체를 꽉채우는 시원스럽고 큼직한 대컷들로
자유로운 공상의 세계를 확장해 보여주는 그림의 구성은
작품의 리듬감과 아기자기함을 잘 살려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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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반짝이는 거대한 밤의 도시로 연출해놓은 조리사 아저씨들의 환한 부엌은
갖가지 식료품들과 조리기구들이 빼곡한 빌딩처럼 솟아 있지요.
해설서에는 어린 시절 병약하고 가난했던 샌닥의 마음을 사로잡은 풍요의 도시 맨해튼의 기억이
배경의 밑그림이 되주었다는 이야기가 담겨져있네요.
부엌이라는 곳은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해소되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죠.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도시 맨해튼을 풍요로운 부엌으로 탈바꿈시켜
작가 모리스 샌닥은 아이의 잠재된 욕망이 해결되는 자유로운 꿈과 상상 공간을 탄생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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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이기 때문에 원작이 갖는 디테일한 재미를 놓칠 수 있는 한계도 있긴 합니다.
난데없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간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조물락거리다가 세상에나! 오븐속에 집어넣는다는 상황은
책을 첫 대면했을 때는, 대략난감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지요.
(더구나 얼굴 표정 하나 안변하는 저 조리사 아저씨들의 모습이라니요!)
헌데, 영어로 된책을 보고 나서야 아하! 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미키(mikey).
빵반죽에 꼭 필요한 건 바로 밀크(milk).
그러니 제빵에 여넘이 없느라 그만 깜박 하신 조리사 아저씨들이 반색을 할 수밖에요.
물론, 이에 당하고만 있을 미키가 아니지만요.
막 김이 오르려는데,
빵이 한창 익어 가는데,
냄새가 솔솔 풍기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려는데,
미키가 반죽을 뚫고 나와서 말했어
난 밀크가 아니야
밀크는 내가 아냐!
난 미키란 말이야!
거침없고 씩씩한, 당당한 미키는
자기 몸을 에워싸고 있던 울퉁불퉁한 반죽 덩어리를 조물락거려
이내 멋진 비행기 한 대를 만들어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양으로 말입니다.
난 비행기 조종사 미키라구요!
내가 미키웨이(mikeyway)에서 밀크(milk)를 구해오겠어요!
깊은 밤 부엌 안에서 우유배달부를 자청하며 밀키웨이 꼭대기로 날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밀키웨이(milkyway)'에서 '밀크(milk)'를 구해오겠다는
개구진 상상력이 반짝이는 이 장면에서는 '밀키웨이'를 '미키웨이'로 발음하는
아이의 천진함도 읽을 수 있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동그라미'를 '돈지라미'라고 발음하던 세살배기 어린 꼬맹이, 우리 조카의
지난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지요. 책과 함께 한 즐거운 덤의 기억인거지요.
그럼 포부도 당당히 아이가 찾아간 밀키웨이는 뭘까요? 그건 다름 아닌 거대한 우유병.
하얀 병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아이의 가볍고 뽀얀 몸은
이번엔 우유빛 상상의 바다를 헤엄칩니다.
난 밀크 속에 있고, 밀크는 내 속에 있다~
베이커리 아저씨들에게 컵으로 우유를 부어내려는 장면은
마치 성화속의 그림들을 떠올려보게되는, 맑고 순수한 천사의 영혼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미키가 밀크 속에, 밀크가 미키 속에...
아이가 그렇게 우유속에서 헤엄치며 마시고 붓고 하는 동안
아저씨들은 미키가 부어준 우유로 순조롭게 빵을 구어가고... 그렇게 즐겁고 유쾌한 밤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깊은 밤 부엌에서 미키가 소리쳤어. 꼬끼오 오우 오우
그리고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지
곧장 침대로
빵 반죽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하루쯤은 밤새 잠들지 않고, 이 밤의 세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봐두고 싶은
호기심. 어릴적 그런 기억 하나씩은 갖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밤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보게 하는, 갖가지 공상과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시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런 신나는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하지요.
미키라는 아이가 깊은 밤 부엌에서 보낸 시간은, 그렇게 한밤중 '잠들지 않고' 보고 온 세계는,
그래요...'밤이어서 더욱 생생한, 밤이니까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마법의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럼, 깊은 밤 좋은 꿈 꾸시길요.
어느 낯선별을 떠도는 야간비행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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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이야기 하나.
한 독자의 리뷰를 통해 알게된 책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
이 책이 1970년 발행되었을 때 그림속에 아이의 성기가 노출되어 있다는 이유로
'금서' 조치까지 내세우며 학부모들이 난리아닌 난리를 피웠다는 웃지못할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무것도 걸쳐입지 않는 아이의 벌거숭이 몸은
어떤 제약에도 구속됨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보여주고 싶어한 작가의 의도가
있을 터인데, 필요 이상의 여러 상상을 하며 안달하시는 어른들의 피곤함이라니요..
하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무서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의 하 수상한 시절엔
무엇이든 경계부터 하고 봐야하는 안타까운 세상이기도 하니...
우리나라에선 이 책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이유를
남자아이의 "고추"란 항상 내놓을 만한 것이고 자랑할 만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빛바랜 사진속 옛시절의 돐사진들을 떠올려보신다면)
예부터 우리 어른들에게 내려오는 '고추에 대한 친근감'에 있지 않는가고
나름의 진단을 내린 한 독자의 글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뭐,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일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