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벗 지은이가 이 달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떠난다. 워킹 할리데이 비자는 벌써 몇 달 전에 받았지만,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서 가을까지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 값에 몇 달 정도 체제비만 들고 떠나는 여행인데도 녀석은 “가능하다면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야.” 하고 말하는 바람에 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정말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더라도, 곧 다시 만날 것처럼, 금방 돌아올 것처럼, 그렇게 헤어지면 좋겠는데, 녀석에게는 그런 선언이, 입 밖에 내어 말하는 결단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해외 여행이라고는 촬영 때문에 모델들 데리고 며칠 다녀온 거나, 여행 패키지 상품 따라다닌 것 말고는 해 본 적 없는 녀석이 말이다.


지난 주말, 집 앞에 있는 주점 ‘지짐이’에서 술을 먹다 말고 박준이 배낭 여행객의 천국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이 책, <온 더 로드>를 지은이에게 건넸다. 술에 취한 건 나였는데 난데없이 지은이가 울음을 쏟고 말았다. “호주 잘 다녀와.” 라는 말에 운 건지, “호주에서 잘 살아.” 라는 말에 운 건지 나는 모른다. 그런 말이 오고 갔다는 기억조차 희미하니까.


열일곱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녀석의 못생긴 손가락조차 사랑스럽고, 늘 자기 갈아입을 속옷을 우리 집 서랍 한켠에 준비해 두게 만드는 것조차 정겨워지는 세월을 이만큼 지나왔으니, 녀석이 없는 생활이 벌써부터 두려워지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뭐, 또 공항 가서 촌스럽게 눈물바람이나 하고 올 밖에. 늘 바람을 달고 사는 건 난데, 어찌 된 셈인지 내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자꾸만 바람이 되어 떠난다.


5대양 6대주를 ‘원 월드 티켓’으로 돌고 있는 나의 벗 은동이는 지금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다. 어쩌면 벌써 콜롬비아로 옮겼는지도 모르겠다. 브라질에서는 강도를 만나 목에 칼 들어오는 살벌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상파울루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얼굴에서 빛이 난다. 살맛나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루가 서른 시간쯤 있는 사람처럼 바쁘게 사는 완철도 3년 뒤에는 떠나겠노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떠날 거야, 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길 위에 열려 있는 새로운 풍경과 가능성들에 나를 내던지기 위해서.” 라는 멋진 출사표를 던지고 3년 뒤를 향해 달리고 있다.


박준이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나의 벗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이미 길 위에 있다는 것이고, 아직 떠나지 않은 벗들은 길 위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은 책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이를테면 낯선 풍경을 하나라도 더 많이 보여 주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오류에 빠지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미덕은 충분하다.


세계를 여행하려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카오산 로드를 주제로 삼고, 그 곳에 머물고 있는 젊은 여행자들의 땀냄새 나는 인터뷰를 충실히 싣고 있는 이 책의 미덕은 여행객들이 솔직담백한 속내를 살아 있는 언어로 쏟아내고 있다는 데 있다. 숨김 없이, 용감하면 용감한 대로, 비루하면 비루한 대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는 것이 좋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해 볼까?’ 하고 일어서게 만드는 책이다.


“Go with the follow."

박준이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21살의 벨기에 청년 코베 윈스는 ‘모든 것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따르라’는 이 말을 품고 여행 중이라고 했다. 책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멋진 말들 가운데 이 한 구절이 마음에 와서 박혔다. 돌아보면 나는 내 인생에 발목 잡히지 않고 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 왔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스스로에 대해 거부하고 부정하고, 다른 내가 되고 싶어서 껴안아야 할 내 안의 나를 무시해 왔다. 남들이 보는 나도 부정할 수 없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도 거부할 수 없는 나, 보기 싫은 나도 어쩔 수 없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쉽지가 않다. 그래서 어린 여행자의 이 말이 좋았던 모양이다.


“가능성에 대한 즐거운 초대”

24살인 벨기에 여인 키티 히터나흐의 이 말 역시 마음에 박혔다. 만나야 할 사람들, 내 발이 가 닿아야 할 곳들, 머물러야 할 곳까지 미리 다 준비해 놓고 떠나는 내 여행이 놓쳐 버린 많은 가능성들에 대한 아쉬움이야 나도 익히 알고 있는 거지만, 키티의 정갈한 원칙은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때로 ‘여기가 아닌 저기’에 가 있고 싶어서 짐을 꾸리는 나로서는 찔리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나와 한 달 동안 호주에 가 있었던 경화 언니가 프레이저 섬에서 잘 데가 없다고 걱정하는 내게 그랬다. “불안해하지 마, 불안해해도 잘 될 일이면 잘 될 거고, 안 될 일이면 그냥 어그러지게 냅두는 거야. 니가 불안해하니까 나까지 어지럽잖아.” 가끔은 잊고 산다,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걱정해서 해결이 안 될 일이면 걱정하느라 시간 낭비할 까닭이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말이다. 


책 속에는 사촌동생과 오빠와 함께 여행 중인 21살 김수영의 발랄한 여행도 있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 춤을 배우고 있는 17살 이산하의 흔들리는 청춘도 있고, 결혼 3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외국 여행을 나온 57살 김선우 아저씨의 따뜻한 여행도 있고, 80쪽짜리 카오산 안내서를 자비 출판해 먹고사는 30살 그리스 총각 디미트리스 찰코스의 엉뚱한 체류기도 있고, 카오산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 27살 자메이카 여인 트레이시아의 진중한 날들도 들어 있다.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자기 몸에 꼭 맞는 시간과 장소를 발견하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행복했고, 떠날 준비를 하는 벗에게도 그 행복을 나누어 주고 싶었다.


“왜 꿈만 꾸고 있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일상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다.”


책을 쓴 박준의 말대로, 더 멋진 일상을 일구어 갈 사람들이라면 ‘온 더 로드-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속에서 새로운 꿈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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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꾸욱~~ 좋은책 같아요.

들꽃푸른 2006-09-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가슴 뛰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신문에서 대한항공 알래스카 직항편이 운항을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 알래스카! 어찌 된 셈인지, ‘알래스카’라는 글자를 입으로 소리내어 읽기만 하면 내 머리는 선홍빛의 오로라에 휩싸이고 만다. 하늘이 그린 그림, 저 멀리 태양에서부터 날아온 전기가 지구의 산소와 부딪쳐 만들어 낸다는 그 놀라운 빛의 향연 말이다. 눈으로 읽을 때는 괜찮은데, 입으로 되뇌기만 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북극에 다녀온 누군가에게, “오로라 밑에 서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모를 거야, 얼마나 장엄한지. ‘아름답다’는 말이 꼭 쓰여야 하는 곳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북극의 오로라 아래일 거야.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주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오로라일걸?” 하는 소리를 듣고 난 뒤부터 나는 내내 오로라를 꿈꿔 왔다. 장광설을 늘어놓던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맹렬한 질투심에 불탔던지...

알래스카의 짧은 여름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운행한다는 기사를 보자마자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항공료를 봤다. 8월 24일까지 운행하는 비행기 값은 인터넷으로 예매했을 때 1,678,700원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6시 30분에 출발해서 아침 9시 40분이면 앵커리지에 도착한다고 했다.

알래스카에 이렇게 쉽게 다녀올 수 있어도 되는 것일까? 좀더 힘겹게 짐을 꾸리고 먼 길을 돌아 돌아서야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괜히 부아가 났다,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내 마음이라니.

그 기사를 본 날 저녁, EBS를 보는데 난데없이 알래스카 풍경이 나타났다. 대한항공의 광고였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라는 제목이 보이고, 묵직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 왔다.


“열아홉, 첫눈에 반하고

스물여섯, 알래스카와 하나가 되고

그리고 평생 바람이 되었다.“


호시노 미치오의 이야기였다. 알래스카 직항 노선을 광고하면서 알래스카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끌어온 대한항공의 광고는 참으로 영민했다. 호시노 미치오, 그이의 삶보다 알래스카를 더 멋지게 알려줄 홍보물이 어디 있겠는가.

대한항공의 또다른 광고에서는 멘트가 달라진다.


“알래스카가 내게로 왔고 난 알래스카가 되었다.”


알래스카의 바람이 되어 버린 호시노 미치오를 텔레비전에서 만나고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밤 하늘에 소리도 없이 생물처럼 춤추는 차가운 불길……. 아름다운 오로라는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종종 멈추게 한다.

어느 겨울밤, 거대한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오로라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한평생을 마감하는 순간, 누구나 어떤 한 가지 강렬한 풍경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면, 나에게 그것은 아마도 알래스카에서 내내 보아온 오로라일 것이라고. -본문 222쪽


호시노 미치오에게도 오로라는 그렇게 특별했다. 사진 작가이면서도 자기 눈에 보이는 특별한 풍광을 글로 전하는 데도 모자람이 없었던 호시노 미치오 덕분에 나는 알래스카를 새롭게 사랑하게 되었다.

광고 문구대로, 호시노 미치오는 열여덟에 알래스카를 처음 만났다. 도쿄의 헌책방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알래스카의 마을을 찍은 사진을 보고는 마음을 빼앗겨버린 소년은 그 마을에 주소도 똑똑치 못한 편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든 하겠으니, 자신을 알래스카로 좀 불러 달라고. 반 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 지난 뒤 알래스카에 사는 클리포드와 셰리 부부는 일본의 낯모르는 소년에게 늦은 답장을 보냈고, 결국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 땅을 밟게 되었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만남은 이런 진정성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소년이 보낸 편지를 그냥 무시하지 않았던 부부와 아주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 온 호시노 미치오의 마음이 그이를 더욱 빛나 보이게 한다. 눈 덮인 땅을 가로지르는 카리부 떼의 장엄한 순례 행렬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이기 이전에, 호시노 미치오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더 깊은 애정을 쏟고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소 폭과 깊이를 띠게 된다.

-호시노 미치오가 살아서 남긴 마지막 원고 가운데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가 딱히 ‘사람’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이는 한 마리 무스를, 흑고래를, 북극땅다람쥐를 만날 때도 사람을 만날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태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자기 텐트에서 카메라를 낼름 집어 달아난 이리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러했다. 카메라를 물고 달아난 이리나, 카메라 놓고 가라고 이리를 쫓아가는 호시노 미치오나 생각하면 얼마나 귀엽고도 우스운지. 광활한 알래스카에서 서로의 존재를 그렇게 각인시킨 이리와 한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했다. 언젠가 늙었을 때 아이들에게 사연 있는 카메라를 보여 주면서 “예전에 알래스카에서 말이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소박한 소망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에스키모와 알래스카 인디언의 모습을 정감 있게 보여 주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이가 얻은 깨달음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15세에서 25세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열 명 중에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는 것, 실제 자살률도 같은 연령대의 백인에 비해 10배나 많다는 것을 안타깝게 토로하면서 ‘못 본 척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문제’라고 쓰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유전이 발견된 뒤로 토착 권리를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는 ‘알래스카는 과연 누구의 땅인가’ 하고 비감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까닭에 백인들에 의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봄의 노래, 나는 자연의 질서를 느끼고, 그 철석 같은 당연함에 종종 압도된다’던 호시노 미치오이기에 원주민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심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다.


한 에스키모 노파와 툰드라에서 보낸 가을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노파는 흙을 꼭꼭 디뎌 가면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쥐는 겨울에 대비하여 에스키모포테이토라 불리는 새끼손가락만한 뿌리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구멍 하나를 찾아내서 파보자 정말로 한 움큼의 에스키모포테이토가 나왔다. 노파는 그 중에 절반만 꺼내고는, 그 대신 가져온 말린 생선을 넣어 두고 구멍을 다시 흙으로 메웠다. “왜?” 하고 묻는 나를, 노파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노파의 행동은 많은 것들을 말해 준다. 얽히고설킨 생명의 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시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마저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244쪽


호시노 미치오의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랬다. 나도 알래스카에 가서 흑고래가 청어 떼를 잡는 동안 일으킨다는 전설 같은 버블넷 피딩 장면을 보고 싶었고, 우두머리 흑고래가 부르는 특별한 노래를 듣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눈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내 마음 속에 담겨 있는 풍경을 통해 오로라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길 잃은 이리 한 마리가 와서 내 텐트에서 카메라를 물고 달아나 주기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좀더 어려운 길로 알래스카에 다녀오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중국이 티벳으로 가는 열차를 놓아 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그만 절망해 버린 내가 아니었던가.


1990년에 이 글을 ‘주간 아사히’에 연재했던 호시노 미치오는 6년 뒤, 러시아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취재를 하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아 죽고 말았다. 그이의 나이 마흔세 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분명히 죽는 순간에도 행복했을 거라고, 알래스카의 꿈을 꾸다가 편하게 갔으리라고, 자신을 공격한 불곰을 무작정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영혼을 떠나보내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장엄한 ‘포틀래치’처럼, 그렇게 평안하게 눈 감았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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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노 미치오의 여행하는 나무를 보고 사진이 기대보다 적어 아쉬웠는데 이 책은 많을 것 같네요. 멋진 리뷰, 축하드립니다. ^^

들꽃푸른 2006-08-22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호시노 미치오의 반짝이는 언어들만큼이나 황홀한 것들이지요...

거친아이 2006-09-1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속으로 꼭 읽어야지 하고 담아 놓은 책이었는데...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
정말 리뷰 잘 쓰시네요.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현실문화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200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해서 만든 첫 번째 인권 사진집 <눈.밖에.나다>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쟁이 필립 퍼키스는 <사진 강의 노트>에서,  “나는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사진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직접 부딪치기 싫어하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고 말했었다. 인권위에서 기획한 이 사진집만큼 그 창문에 꼭 맞는 책도 드물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창문을 통해 선생님이 되고 싶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혜선이와 희망을 마음껏 노래하고 있는 장애인 곽상필과, 오늘이 늘 불안한 이주 노동자들과, 완전한 한국인이 되지 못하는 혼혈인 같은 소외당한 이 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홉 사람의 사진가가 담은 우리의 오늘은, 짐작하겠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어두운 흑백 사진 속에서 책장을 펼쳐 든 나를 바라보는 그네들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힘들 정도였지.


2006년 1월, 인권위에서 만든 두 번째 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에는 성남훈, 임종진, 김중만, 노익상 같은 10명의 사진가들이 공들여 작업한 사진에다 공선옥, 방현석, 이문재, 조병준이 글을 보탰다. 책이 두꺼워지고 책값이 좀 오른 것 말고도 첫 번째 사진집의 한없는 우울함에다 밝은 빛깔 희망이 보태졌다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성남훈이 작업하고 공선옥이 글을 쓴 첫 번째 꼭지 ‘엄마 저어 오네에’는 강원도 정선에 살고 있는 아람이 이야기다. 개구진 얼굴로 사진 너머 나를 바라보는 꼬맹이 아람이의 순한 얼굴 때문에 사진집을 여는 마음이 즐겁다. 아람이는 할머니 손에 크면서 내내 엄마만 기다리는 서글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도, 이 아이의 웃음은 대책 없이 환해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나 역시 벙싯벙싯 따라 웃게 됐다. 아마도 ‘꽃이 피어서 행복하다고, 하늘이 파래서, 바람이 불어서, 달이 떠서, 비가 와서, 구름이 흘러가서 행복하다’고 일기장에 쓰는 아이들에게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란 생각을 무턱대고 해 버리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임종진의 사진에 조병준이 글을 보탠 ‘그 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에서는 순박하기 짝이 없는 필리핀 여인에게서 나는 또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하얀 이를 맘껏 드러내 놓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 한 자락 뽑고 있는 이 건강한 필리핀 여인을 ‘누이’라 부르는 조병준의 살가운 글도 글이지만, 고운 심성의 이국 여인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찍은 임종진의 넉살이 느껴진다. 농촌 총각의 국제 결혼이 낳은 갖가지 문제들까지 조목조목 짚으면서도 결코 부담스럽지 않게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 다 풀어 놓는 놀라운 사람들.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김문호가 작업한 ‘기대어 선 가족들’이다. 장애우와 더불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들려주고 있는데, 그게 또 엄청 감동이다. 어찌 들으면 심드렁하기까지 느껴지는 그이의 건조한 말투는, 하지만 사진 속 사람들이 이 사진가에게 보여 주는 신뢰의 눈빛을 확인하면 오히려 더 사랑스럽다. 수줍어서 오히려 포장하지 못하고, 할 말만 무뚝뚝하게 해 버리고 반쯤 돌아선 듯한 말투. 가족 사진을 몇 번이고 쓰다듬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낳아 기르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던 <콩깍지 사랑>의 추둘란 씨네 식구를 이 사진집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지. 엄마를 많이 울게 했던 민서는 이제 제법 의젓하게 자랐다. 이 네 식구의 오늘이 행복해 보여서 나는 그만 가슴이 뻐근해 오기까지 했다. 


아, 물론, 이 사진집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무겁게 내리누르는 비정규직의 암울한 현실을 적확한 단어들과 분명한 어조로 고발하고 있는 방현석의 글은 박여선과 김중만의 사진을 만나 놀라운 선동으로 다시 태어났다. 난민 승인에 인색한 대한민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주는 최항영의 작업, 가리봉동에 삶터를 꾸린 중국 동포들을 찍은 이규철의 사진은 이문재의 글과 만나 또 한없는 안타까움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두 번째 인권 사진집은 표지 느낌 그대로 파랗고 말간 희망을 안고 있다. 모질게 살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이들의 강인함이, 그 강건한 웃음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올곧은 시선이,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헤맨 사진가들의 열정과 뚝심이 그대로 내비치는 작업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힘겨운 사진만으로 제풀에 절망스러웠던 첫 번째 사진집에는 없었던 작가들의 정갈한 글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만3천원, 그래, 비싸긴 하다. 하지만, 이런 좋은 책이 ‘왕의 남자’처럼 생각지도 못한 대박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상상을 해 본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가 서점에서 마구마구 팔려 나가는 그런 일을 꿈꾸는 건, 내가 너무 허황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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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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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장영희의 책 이야기가 나왔다. 다리가 불편한 장영희 교수가 여러 대학에서 입학 시험조차 거부당하다가 서강대에 어렵게 입학한 순간의 이야기, 대학 다니면서 체육 수업을 듣느라 비 오는 날 우산도 쓰지 못한 채 휠체어를 끌고 언덕을 넘다가 넘어져 흙투성이가 된 대목 들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참지 못하고 울어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책을 보고 있던 장소가 지하철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건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근데, 그거 서평 모음집 아니었나?”

책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고전을 소개하는 신문 칼럼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책을 읽으면서 감동받았다는 것이 좀체 이해가 안 됐던 것이다. 친구랑 만난 다음 날, 당장에 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올해 3월 15일에 1쇄를 찍었는데, 내가 산 책은 8월 30일에 찍은 8쇄본이다. 1년도 안 되었는데 8쇄까지 찍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보편 타당한 어떤 감동이 이 책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겠다, 그것은. 책을 산 그날로 당장 나 역시 장영희 글의 매력에 빠져 버렸으며, 책장을 덮은 지 이틀째, 나는 어느 새 이 책의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친구의 얘기를 듣다가, 그곳이 어디인지 까맣게 잊고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던 순간들 생각이 났다. 교보문고 어린이책 코너에 서서 집에서도 몇 번이고 읽었던 <우동 한 그릇>을 다시 읽다가 훌쩍거린 일, 사형수 윤수의 억울한 죽음 때문에 마음 아파서 버스 안에서 몰래 눈물 훔쳤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바보 같은 사랑 때문에 친구 대신 죽은 승룡이의 순박함 때문에 눈물이 났던 만화 <바보>, 먼 땅에서 사랑을 잃고 믿음을 잃었던 네팔 사람 카밀의 절망 때문에 울었던 <나마스떼>까지. 올 여름과 가을 동안만 해도 이만큼이나 되니, 듣는 분들은 혹시 아무 책이나 보면 다 우는 거 아닌가 생각하실라나? 그렇담 내 눈물이 너무 가치가 없어지게 될까?

뭐 어쨌든, 눈치 채셨겠지만 난 눈물이 흔한 사람이다. 그러니 내 친구나 내가 장영희 교수의 책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 뭐, 또 그저 그런 책이었겠거니 지레짐작하신다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 이 책이 요즘 흔하고 흔한 서평 관련 책들 가운데 단연코 빛나는 점이 있으니, 책에 실린 리뷰들이 저자의 삶에 깊이 닿아 있어서 어느 책 얘기든 허공에 붕 떠 있는 소개 글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장애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소개해 놓은 책 가운데도 그런 책이 꽤 여럿 보인다. 펄 벅 여사의 <자라지 않는 아이>나, 장애를 지닌 채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앨리자베스 배릿을 사랑했던 로버트 브라우닝의 작품 이야기나, 허만 멜빌의 <백경> 이야기도 장영희를 거치면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에게 장영희의 아버지가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는 대답을 듣고는 세상에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니, 어쩌면 그런 마음이 담긴 책들에 특별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어렵지 않게, 그러면서도 에두르지 않는 정확한 분석력을 보여 주는 지혜로운 눈에 찬탄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덤이랄 수 있겠다.


“올해 저희 세 식구는 저희 일생에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죠. 북해정에서 우동 3인분을 시키는 일 말입니다.”(<우동 한 그릇>에서)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하여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알기에 그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 다른 모든 행위는 그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젊은이들은 모든 일에 초보자이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사랑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초기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합일, 조화가 아닙니다.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해서 당신을 사랑합니’”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한다.(에리히 프롬)


“내가 이상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인간은 결국 선하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란과 불행과 죽음 뒤에 내 희망을 쌓아 올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세계가 차츰 황폐해가는 것을 보고 수백만의 고통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보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이 잔악함도 결말이 나고, 또 다시 평화와 고요가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이상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안네의 일기>에서)


“어려움이 닥치고 모든 일이 어긋난다고 느낄 때, 이제 1분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다시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스토우 부인)


이밖에도 ‘주옥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명문들이 책에 가득하다. 말이 말로써 끝나지 않도록 삶으로 낮게 그 글귀들을 가져오는 장영희의 솜씨도 대단하다. 지하철에서 자신을 가리키면서 “저 봐, 에비 에비, 너 계속 울면 저 사람이 잡아간다” 하는 어리석은 엄마를 만나고도 절망하지 않는 강인한 영혼, 남들을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이해와 사랑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이겨 내려는 장영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장영희가 소개한 여러 책들을 메모장에 적어 놓고, 이미 읽었던 책들이지만 다시 제대로 읽고 싶어진 책들, 늘 누군가의 추천 목록에 들어 있었으나 한 번도 내 것으로 취할 생각을 못했던 소위 ‘명작’이라는 책들, 장영희의 눈으로 읽고 싶어진 여러 책들의 목록을 인터넷 서점 카트에 하나하나 담으면서 나는 또 걱정이 앞선다.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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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2-0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사회가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냉혹한지를 잘 드러내 준 책이라 할 수 있지요. 따스한 마음이 잘 드러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들꽃푸른 2005-12-05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 님,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참 따뜻해지는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졌었지요...
 
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마흔이 넘어 아기를 가진 한 어머니가 있었지요. 병원에 갔더니 당장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더랍니다. 노산이라 아이에게 기형이 있을지 모르니 얼른 검사해서 지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소리였지요. 깜짝 놀란 이 어머니, 절대로 그런 검사는 하지 않겠다고 우기고 병원을 옮겼고, 열 달 뒤에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어머니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과 둘이 세상과 용감하게 싸우면서 살고 있는데요. 딸의 친구들이 딸을 놀리거나, 세상이 고개를 외로 꼬고 두 모녀를 바라볼라치면 주눅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싸우라고 가르치는 사람이랍니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고개 숙이고 숨어 살 필요가 없다고요.

시골에서 살고 있는 또 한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너무나 기가 막혀 한동안은 세상 살기가 싫어졌더랍니다. 그러다 얼마가 지나서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던걸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새롭게 배운다고, 그 아이가 있어서 지금껏 '다르다'는 것에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게 갇혀 있었나 알게 된다고요.

<아담을 기다리며>를 읽는 동안, 그 세 사람의 어머니 얼굴과 줄곧 함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성이라는 하버드에서 장애아를 가진 어머니가 살아남는 일은 차라리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지요. 커다란 편견과 맞서 성실하게 자기 삶을 버티어 내는 마사 베크의 일상의 기록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었습니다.

기록이 힘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그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저절로 그 사람의 향기까지 더불어 낚아 올리게 되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은 아주 틀린 말이다. 사랑은 지상에서 오직 하나 우리에게 서로를 가장 정확하게 보게 해 주는 것이다.' (본문 234쪽)

마사는 남들이 '모자란다'고 혀를 끌끌 차는 자신의 아들 아담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웠습니다. 오히려 '정상'이라 자부하는 이들의 모난 마음에 연민을 보이게 되지요. 그런 어머니 덕분에 독자들은 <아담을 기다리며>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고요.

<휠체어를 타는 친구>나 <다이고로야, 고마워>, 그리고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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