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12 12:23
그저께 서태지 콘서트를 티비에서 방송해 주더군요
전 90년대 중반을 10대로서 보내었고 그 때의 삶의 과정들이 현재의 제 모습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갑자기 서태지 얘기가 나온 것은..
중고등때 서태지가 신화적 존재로서 10대들의 우상으로 되었던 시기에 전 서태지에 참으로 무관심 했죠. 주위의 열광들에 오히려 냉소적이었으며.. 나 자신의 정체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 서태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은 집에 서태지 관련 음반은 하나도 없구요.
간만에 토욜에 심야토론을 보았는데 국제 정치 전공자들과 한겨레 주석,전직 외교관이 나와서 북한의 핵문제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요즘 정치학과 수업을 듣고 있는지라 예전에 스쳐가게 보이던 문제들이 알게 모르게 의식화 되었던지 재미있더라구요.
심야토론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다가 멈춘 곳이 서태지 공연이었고..
예사 공연 같지가 않아서 잠시 시선을 멈추었습니다. 음향 상태가 정말 Cool..했고 웅장한 규모의 Rock'n roll 이었습니다. 나중에 뮤지션들 명단이 올라가는데 전부 외국 사람들이더군요. 어쨌든 국내의 rock공연 음향과는 차이가 있긴 있었습니다..
이 얘기가 아닌데..--"
제가 주의깊게 보게 된 것은 관객들.
그들은 저의 거울들이었다는 점. 90년대에 10대를 보내었던 우리들의 모습 20대 중반을 즈음해 가는 그네들의 모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희 세대들의 집합체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서태지를 잊지 않고 있었고 여전히 열광하고 있었으며 울고 있었고 서태지는 아직 추억속으로 사라진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죠. 전 놀라고 말았습니다. 서태지가 반짝 아이돌 스타가 아니였음이 증명되는 현장도 그렇지만 특히 관객의 모습들에서 그들의 표정은 예전의 10대들이 열광했던 콘서트에서 보여졌던 철없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어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서태지.. 제가 10대 때는 그랬죠. 서태지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았고.. 우리들은 그때의 제 친구들은 그야말로 철없는 10대였기 때문이죠. 우리는 철이 들만큼의 나이가 들었고 ..감수성 또한 그때의 순수한 것임이 아닐 것임에도 불구하고 열광은 여전히 지속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에서.. 뭐라고 할까..
향수를 느꼈다고나 할까요.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는 저 조차도 순간 울컥 하더라구요.. 나도 너희들과 같은 시절을 보내었어..라고 맘속으로 외치면서요. 나이들었다는 증거라서 그런건지.. 그러면서 90년대 중반의 시절들이 머리속에 떠오르기도 했죠. 그 순간 동시대의 의식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걸 얼핏 느낀 것도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런 열광을 지속시키는 것은 관객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서태지의 태도에서도 조금은 감동받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그 장인정신에서 말이죠. 90년대 세대들의 문화가 숙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향수..
이제 지나온 세대..
기성 세대로 접어듦을 준비해야 하는 90년대 세대들의 정체성은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서태지를 위시한 주변 모습에서 단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민중, 혁명, 변혁이라는 기존 세대의 거대담론을 짊어지는 세대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런 것들에는 철저히 가려진 10대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저히 개인적이며 어쩌면 개인적이라기 보다는 이기적이라는 말이 더 맞는지도.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현상인지 시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도 뭐라 말할 수 없네요.. 저만 그런건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지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궁금증을 풀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그저 현상으로 바라보이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죠. 이런 세대를 살아온 우리들이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는 정말로 더 살아봐야 되는 일이겠고..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우리들에게..기존 세대들이 말하는 혁명에의 뜨거움...그런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정체성에서는 주변적 위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거대하고 숭고하다고 여겨져 온 것들을 체감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일까요..제가 태어난 후 2달후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실들을 느끼거나 혹은 그후 7년후의 사건들조차 너무 어릴 때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래도 소수의 우리 세대들중 일부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있죠.
다만 관심이 가져지는 것은 소외된 것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침체 속에서 혹은 배제당하는 또다른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그것이 기존의 문제의식들과 연결되어지는 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그러한 애정 자체는 통시대적으로 고리로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민중, 혁명, 전쟁, 이런것들이 우리 세대들에게 직접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소외된 자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을 대변하고 싶은 열망은 여전하니깐 말이죠. 혹은 내가 소외된 자일 가능성도 있으니깐..그건 체감할 수 있으니깐요..비단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심야토론에서의 북핵문제와 서태지는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둘은 성격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도 동시대의 현상으로 포괄된다는 사실들.
90년대 10대를 보낸 우리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것들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표상지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들이 해결되려면 우린 더 살아봐야 하겠지요.
참 이런 얘기도 하고 싶었었답니다. 서구의 문화에 종속되었다면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정체성 또한 어떻게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는건지..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태지의 뮤지션들은 거의 다..외국인이었다니깐요..
논리적 비약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그냥 다만..느낌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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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 서태지가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우리를 몰아서 설명할 수 있는 틀은 아니죠..단적인 하나의 현상이라는 점, 예시.
저 같은 냉소들도 꽤 많았을걸요..^^
상업주의에 이용당한 우리들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도식적 설명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우리들의 감정상태..가 있잖아요. 그런점들을 빼고 설명한다면 얼마나 건조합니까.. 우리들의 자아, 정체성은 그렇다면 어디에서 부여받을 수 있는건가요.. 이용만 당하는 우리들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감정과 이성이 공존하는 존재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