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6/26 13:41

임권택 감독은 그 영화 자체가 하나의 화집이 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의 수려한 풍경들을 참 정성스럽게 화면에 담아놓았더군요 장면 하나하나의 카메라에 담아내는 모습들이 모두 한번쯤 한국화를 통해 보았던 장면들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저 같은 경우 예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선의 산수화를 보면서 어느 곳에서 어떤 곳을 보면서 그린 그림이 저런 모습으로 담겨져 있을까.
그 당시에 그림을 그려내던 화공은 왜 거기서 멈추어 서서 그 장면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을까..그 시각..그 생각이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은 그 몇 백년 전의 화공이 받았던 느낌, 장면들을 재구성하여 복원시키고 그것을 관객에게 느끼게 해주기 위해 참 많은 애를 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장승업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혹시 예전에 관동별곡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때 그 관동별곡에 묘사되어 있는 산수의 느낌들 기억하시나요? 전 그 관동별곡에 묘사되어 있는 언어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귀에서 맴돌더라구요. 우리는 남겨진 글로써만 얼핏 당시의 풍경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지만 정말 어떤 장면이 그렇게 묘사되어 진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죠. 그리고 묘사되어 있는 관동 팔경을 찾아서 쫓아다닐만한 시간을 낼 사람은 정말정말 드물겠죠..

임권택 감독은 그런 작업을 취화선을 통해서 하고 있었답니다. 그림에 나타난 진경을 쫓아서 역사가들이 사실적 근거를 찾아서 사료를 뒤지는 것처럼 임권택 감독은 한국화라는 사료를 가지고 그 진짜 장면이 무엇이었는가를 고증하러 방방곡곡 카메라를 들고 쫓아다닌 것이라는 겁니다. 그 장면장면하나가 그래서 저에겐 동양화 화집의 현대판 모습으로서 그 영화가 다가왔죠..그리고 정말 세월 좋아 졌구나..란 생각까지 했답니다. 스크린이라는 매체와 임권택 감독의 예리한 관찰력이 없었으면 우리가 아무리 여행을 통해서 많이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 섬세한 장면들을 캐치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들었구요.

산수화의 장면들 뿐만이 아닙니다. 장승업이 떠돌아 다니던 장면들이 유난히 많이 나왔고 그 배경에는 꼭 그림 같은 장면이 있었던 것도 기억하실 겁니다. 눈이 내리는 밭을 따라 바삐 걸어가는 나그네의 모습, 그것은 영화의 전개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장면이기도 하겠지만 그 스토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벌써 동양화 몇 점이 나타나 있더군요. 장승업의 걸어가는 포즈와 함께 그 뒷 배경을 정지시키면 한국화 그림 하나가 되었답니다. 전 임권택 감독이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에 감탄했죠.

그림 그리는 사람들 보면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 정말 그 장소에 가서 그리는 경우도 많지만 요즘은 사진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여러 장소를 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찍은 뒤에 그것을 집에 가져다 놓고 그림을 그리기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작가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풍경을 잡기 위해 사진찍으러 여행 다니고 하기도 하는데... 전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정말 좋은 풍경을 사진에 담아내는 것, 원하는 풍경을 잡아내는 것은 정말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몇 백장의 사진을 여행다니면서 찍어와도 남는건 10장 남짓 할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아마 그 영화를 찍기 위해 한국화에 대해서는 끔찍한 자료를 수집했겠죠..그리고 비슷한 모습을 영화에 담기 위해..거기다가 비슷한 느낌까지 영화에 담기 위해서는 전국의 명산 명지를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란 것이 영화를 통해 느껴졌답니다.

영화 내에서 저는 솔직히 그림 그리는 장면이나 혹은 동양화 몇 점이 영화에 등장했다고 해서 한국화에 대한 어떤 감흥을 느꼈다던가 하는 것은 없었답니다. 숨을 죽이고 봤던 장면은 붓으로 먹을 묻혀서 화선지에 선을 하나 그으면 그 화선지에 묻혀진 먹이 서서히 아주 미세하게 퍼져나갈 때의 신비로운 장면..그런 정도였죠..그리고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춘화의 장면들이 볼거리였다면 그 정도?

제가 정말 영화에서 좋았던 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아시겠죠?
영화 자체가 한국화 화보집 같다는 것입니다. 전 임권택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아도 충분히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만약에 국어 선생님이라면 관동별곡을 가르치게 된다면 영화 취화선의 장면들을 편집해서 먼저 보여주고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ㅋㅋ..

스토리 면에서야..한 화공의 일대기를 그린 것으로 치고는 의구심을 가질만도 하겠죠. 허구성의 측면 같은 점에서 말입니다.영화는 영화니깐.. 대중의 관심을 끄는것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겠죠..상업성..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은.. 영화의 측면에서 봤을 때 참 조화가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업성을 무시하지도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그렇다고 결코 놓치지도 않은..

하하..너무 예찬론인가요?
사람에 따라 취향은 다양하니깐 그저 제가 본 느낌일 따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