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3/07/07 01:57

"냉정과 열정사이"는 원래 두 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 일본 소설이다. 그리고 각각 남자 작가인 츠지 히토나리와 여자작가인 에쿠니 가오리가 썼다.

Blue는 남자 주인공인 아가타 준세이를 1인칭의 시점에서 히토나리가 쓴 것이고 Rosso는 여작가가 여자 주인공인 아오이를 역시 1인칭으로 가오리가 쓴 것이다. 동일한 시기, 두 주인공이 과거의 회한과 현재의 그물망 속에서 겪는 얘기들을 1장에서 13장까지 전개해 나간다.

이 책은 연재소설을 두 권으로 만든 것인데 rosso 1장이 먼저 쓰여지면 다음으로 blue 1장 이런 식으로 연재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rosso 1장 blue 1장 rosso 2장 blue 2장 이렇게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나는 blue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었는데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일본인이지만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보내다가 대학을 일본에서 다니게 되고 19살에 서로 만나서 3년간을 미치도록..사랑한다. 그리고 헤어진다.

아오이는 준세와 약속을 한다. 서른 살 되는 아오이의 생일 날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함께 하자는 약속. 둘은 그러나 헤어지게 되고 그 어설펐던 헤어짐과 과거는 그들의 주변을 계속 맴돌게 되는데...

23살 되던 해 준세는 훼손된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복원하는 복원사 공부를 하기 위해 피렌체로 떠난다. 그리고 같은 시점 아오이 또한 밀라노에서 앙티크 보석을 전문으로 파는 보석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들 과거의 약속은 자꾸만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준세가 복원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잃어버린 과거.. 죽어가는 과거의 화려함을 다시 복원할 수 있고 생명력을 부여하는 유일한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작업에 몰두하면서 준세는 그의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과거, 아오이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한다.

아오이가 앙티크 보석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앙티크 보석에는 그 보석을 걸치던 여자들의 사연과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보석에 담긴 과거의 흔적은 사랑받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상징적으로 직업을 통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고 또한 서른 살의 약속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
곧 서른 살은 멀지 않았다.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미래의 약속에 대한 희망을 막연히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치열한 현재를 꿋꿋히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들이다.

p 그러므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일어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은 방향성이 있으나 또한 방향성이 없어 보이는 현재를 매꾸어 나가고 있다.

그들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끊임없는 반복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이며 또 두오모에서의 약속은 그 교차되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간극에서 그들을 다시 결합하는 현실로 이루어 질 것인가..

인간의 합리성은 또한 인간의 감정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를..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개봉된다면 "러브레터"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볼 것 같다는 예감.

책에서 표현된 그림들, 복원하는 작업, 보석상, 거리, 피렌체의 정경들 그들의 색깔이 상징하는 것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들을 준다. 두 책의 스토리를 구성해 놓아 만든 영화이지만 분명 차이점 또한 있는데 소설에서의 감각을 능가하는 영상 예술미가 탁월한 점이 있다.

여주인공이 미인이지는 않지만 아오이의 본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려 한 흔적이 보인다. 준세이는 미남이다. 그림을 다루는 사람 같고 맑은 눈동자는 순수한 열정을 가득 담은 이미지를 잘 대변한다. 그는 blue를 상징하듯 푸른색 셔츠, 블루그레이톤의 브이넥 스웨터를 거무스른 피부에 걸치고 다닌다. 하늘을 무척 좋아해 하늘만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설에서 말한다.

아오이는 잘은 모르지만 오렌지 색 쯤을 나타내는 것 같다.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내려다 본 정경은 놀랍게도 오렌지 색 지붕으로 가득 찬 시내의 정경이다.

이탈리아는 가 본 적이 없지만.. 혹은 다른 곳이라도..전혀.
영화에서 그 멋진 풍경들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배경이 피렌체인 이유는.. 도시 전체가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화려한 건축, 거리등을 복원하는데 온 정열을 쏟아붇는 도시민들의 삶은 역시 과거를 복원하는 일이나 관광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한다. 피렌체는 미래가 없는 도시이다. 그러나 과거가 또한 그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치들이 다채롭게 엮어져 있는 소설이며 영화로서 아주 오래간만에 접한 문학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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