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 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진실이 변하니?

가볍게 질문해 본다. 진실=Truth,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이 무엇인가? 혹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의 요소 요소에서 들려오는 선택에 대한 요구를 우리는 어떠한 판단의 근거로 충당시켜왔는지에 대한 의식적 질문이다. 아마도 현재의 패러다임 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귀절은 '믿을 수 있는 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한 가지 뿐이야'라는 언어의 유희일지 모른다.

산도르 마라이'의 두 작품을 접하면서 우리는 감당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살면서도 순간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색 다른 언어로 삶을 포장할 수밖에 없는 존재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우정, 열정, 신의, 자긍심 등등의 형이상을 쫓아서 그 판타지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진실을 대변하는 양 그렇게 아픔을 달래 왔던 것이다.

그리고 <열정>과 <유언>이 쓰여진 작가의 시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끊임없는 전쟁, 살육 속에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긴장과 불만, 복수심들만이 쌓여간다. '헨릭'은 누구인지 모르면서 서로 다른 나라 젊은이들끼리 폭력을 가하며 모든 규범과 관습이 가치를 잃고, 충동만이 넘실대는 이 세상에서는 다른 어떤 것을 기대 할 수 없다고 회의한다. '콘라드'와 같은 이는 거대한 집단의 신념에서 벗어나 개인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열정을 발산해 보지만 결국 인간은 공동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발견할 뿐이다. 즉, 개인적 애정행각과 사랑도 공동 가치의 그물망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때 용납 될 수 있을 따름이다. 41년이란 세월을 방황해서 콘라드는 결국 자신이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은 부질없으며 적어도 인간 세계에서는 기준으로부터 벗어남에 대해 응당한 대가를 치뤄야 함을 깨닫는다. 적어도 인간 세계의 규범 속에서 '헨릭'은 승리한 셈이다. 그러나 헨릭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전 생애를 통해 그리고 끈질긴 기다림을 통해 자신의 신념이 옳음을 자부하게 되지만 동시에 크리스티나의 사랑에 대한 열정과 와 콘라드에 대한 우정의 믿음까지 잃어버렸으니..

그러면 사랑에 대한 신념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는가. 크리스티나는 어쩌면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열정의 대상으로서 또 하나는 풍요에 대한 욕망의 대상으로서. 거기에서 진실은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과연 자유분방했던 사랑에의 열정이란 실로 존재했던 것인가. 헨릭은 크리스티나의 인격은 자신을 배반하지 않았음을 끝까지 믿고 진실에 대한 '말'을 얻고자 수 십년을 기다린다. 언어가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없음에도 인간은 왜 그리 언어에 집착하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헨릭의 기다림은 <유언>에서 에스더의 기다림과도 동등한 비중을 가진다. 거짓 투성이인 라요스인 줄을 알면서도 그의 고백, 언어에 대해 집착하고 기다리는 것은 자신에 대한 라요스의 열정을 끊임없이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렸던 고백도 배반 당하며 모든 것을 내 주어야 하는 에스더.. 하지만 사랑에 대한 진실의 이분법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라요스만의 율법을 통해 그녀는 거짓말 투성이처럼 보이는 것이 또 다른 진실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위선의 세계 속에 속해 있을 수도 있음을 통찰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쿨'한 것을 추구하는 요즘의 세태에서 산도르 마라이의 '고전들'은 씁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기다림? 사랑? 지금 우리는 벌써 변화의 속성를 읽고 순간순간 카멜레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무뎌지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비중으로 외로움을 곱씹어야 함은 왜일까?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롭고 판타지를 추구하며 결국은 그 기다림의 연속임은 아닐런지.. 어느 작가가 얘기 했듯이 삶은 스튜를 끓이듯이 조용히 격정을 끓여내는 것이라는 그 말이 어쩌면 진실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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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Y 2004-04-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로 이벤트 당첨됐었다. 3등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음.. 버지니아울프 전집 중 3권을 상품으로 받았는데 아직까지 못읽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