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소련 공산주의가 유사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정당화하는 사회경제적 평등과 국제주의를 달성하려는 유토피아적 열망에 이념적 뿌리를 두고 있다면, 마오쩌뚱, 호치민, 김일성 같은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민족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산주의는 식민 지배하에 있는 자신들의 후진국을 해방시키는 수단이었다.
내가 보기엔 좀 이상했다. 하긴, 여기선 모든 것이 이상하니까. 우리가 가는 장소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이상했다. 현지인은 물론 이 나라에 자진해서 발을 들인 외국인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불로 날아드는 나방처럼 미스터리에 매료돼 자꾸 이 나라를 찾아오는 우리 같은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식 리얼리즘
21세기 많은 도시에서 시각 공해를 유발하는 어수선한 광고판 대신, 평양거리에는 지도자와 당, 국가를 칭송하는 수작업으로 이뤄진 다채로운 벽보와 벽화, 모지아크화가 가듯하다, 우리가 보는 이 예술품과 그 것이 속한 문화 그 자체를 통해 이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예술과 문화 그 자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상적인 시민 양성과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위해 집행되고 있는 정책에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그리고 그들
서양의 밀레니얼 세대와 비슷한 나이 대를 북한에서 장마당(시장)세대라고 부른다.
지도자가 뚱뚱하다는 것은 우리에겐 중요한 일입니다.
언젠가 사회주의가 완전히 성공을 거두기만 하면 우리도 모두 저렇게 될 거야, 우리 상황이 나쁠지도 모르지만 다른 나라는 훨씬 더 나쁠 거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눈으로 바라 본 북한의 간단한 현대도 정리되어 있고, 이렇게 책을 쓰고 다시 북한에 입국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시비를 가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남한고 북한에서 얻는 자료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저자는 미국의 관점으로 부터도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시선이 가능했던 이유를 저자의 ‘감사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북한을 방문한 후로 서울에서 생활할 기회를 가지면서 역사적, 문화적, 언어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됐다. 한국에서 탈북자를 만난 덕분에 38선 이북 지역의 생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이 쉽게 규정지을 수 없을 정도로 다면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오해가 얼마나 깊은지 깨닫게 되었다.
현재 고착상태에 빠져있다고는 하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이어진 1, 2차에 걸친 북미정삼회담으로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다. 북한에 대해서 많은 정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할 것이고 가까이 있는 같은 민족이면서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진실을 알아가려는 노력,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서로에게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