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휴가> 중 맨 처음 글은 <나의 편력 시대>입니다.
발표된 것이 1963년인데, 그때 서른여덟 살이었던 미시마 유키오가 처음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해입니다. 그 후로 5번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가 마흔다섯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여덟에 쓴 글이지만 내용은 10년 전인 17세부터 26세까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이 글과 함께 실은 표제작 <소설가의 휴가>는 서른 살에 발표한 글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편의 에세이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십 대 때부터 서른 무렵까지의 청년 미시마의 모습이 그려진 글입니다.
미시마는 자결하기 일주일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나의 자기 형성은 십 대에 끝이 났다”며 “일단 자신의 본질이 낭만이라는 걸 깨달으면 어떻게든 귀향하게 마련이다. 귀향하면 십 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 안의 감수성을 혐오하며 고전주의를 지향하며 모리 오가이, 토마스 만을 동경했지만 결국 자신의 본질은 낭만이었다고 말한 미시마의 문학적 형성을 들여다보고 싶었기에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그려진 이 두 편의 에세이를 뽑았습니다. 저 역시 낭만파 미시마를 가장 아낍니다.
<시를 쓰는 소년> 작품집에는 초기부터 만년까지의 작품이 고루 들어 있어서 그렇게 변해가는 미시마의 다양한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수성을 짓누르며 낭만주의를 억지로 버리면서까지 차가운 이지를 향하려고 했던 미시마 유키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귀향할 수밖에 없었던 문학청년 미시마의 생생한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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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서의 2026년도 첫 책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선집 <소설가의 휴가> 작업을 겨우 다 마치고 지금 인쇄 중이에요. 그동안 활자에 파묻혀 정신없이 지내다 이제 소식을 전합니다.

알라딘 펀딩도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셨어요.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후원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무사히 펀딩을 끝낼 수 있었어요.


만드는 책 하나하나 다 아끼고 시간을 들이지만, 미시마의 문장은 정말 정말 품이 많이 드는 글이에요. 뭐랄까, 어마어마하게 밀도가 높다고나 할까요, 이건 읽는 사람도 그렇게 느낄 텐데, 글자 하나하나 뜯어서 작업하는 번역가의 입장에서는 혼이 쏙 빠질 정도예요. 그러면서도 그 묘한 매력 때문에 또 다가가게 됩니다.

만드는데 품이 많이 들었다고 독자님들의 마음에 그만큼 가 닿는 건 아니겠지만 부디 읽어주시는 분들의 마음에 드시면 좋겠어요.
그동안 못한 책 얘기도 이제 천천히 들려드리겠습니다.

설 연휴 전 인쇄소 작업이 많이 밀려 출간일이 조금 늦어질 것 같아요. 

알라딘 북펀드로 후원해주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고,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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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빨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물다섯 살의 나는 하양이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마흔 살의 나는 그것을 초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때까지 소설을 쓰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현실이 확정되었을 때, 그것은 소설가에게는 죽음일 것이다.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마흔이 돼서 쓰기 시작하는 작가도, 마흔에 다다랐을 때의 현실이 말할 수 없이 불안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체념, 진정한 단념에서는 소설은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

- 미시마 유키오
<소설가의 휴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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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무렵, 실생활에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악덕에 대한 공감과 기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와 그야말로 ‘동침’하고 있었다. 그 어떤 반시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을지라도, 어쨌든 동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1955년이라는 시대, 1954년이라는 시대, 이런 시대와 나는 동침까지는 할 수 없다. 소위 반동기가 찾아온 후로, 나는 시대와 침대를 함께 쓴 기억이 없다.
작가란, 창부처럼 언제나 그 시대와 잠자리를 함께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소설에는 피할 수 없는 ‘그 시대적 유행’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동기에 있는 작가의 고립과 금욕 쪽이 더 큰 소설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는 한 번은 시대와 침대를 함께 쓴 경험을 가져야 하고, 그 기억에 고무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미시마 유키오 에세이
<소설가의 휴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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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를 싫어하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나의 편력 시대>에도 <소설가의 휴가>에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본의 독자들 사이에도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시마 본인의 말처럼 '애증'에서 나왔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 에피소드는 마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묘사되어 더더욱 생생하게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양>을 발표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청년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은 굉장했는데, 미시마의 말을 빌리면 “온 세상이 문학적으로 열광”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다자이 주변에는 끊임없이 청년들이 모이게 되었는데, 다자이를 싫어하는 미시마를 그의 친구들이 다자이와 만나게 해준 거예요. 그때 미시마는 이십대 초반, 몇몇 작품을 잡지에 발표했지만 여전히 무명의 문학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열다섯이나 연상인 대선배 앞에 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자이에게 던진 말이 당돌하게도 “저는 다자이 씨의 문학이 싫습니다.” 였습니다.
다자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유명 작가가 되면 이런 일은 빈번하다고 미시마는 말합니다. 하지만 직접 당사자가 되어 겪는다는 건 또다른 일이겠죠.
이 에피소드가 재밌는 건 미시마가 훗날 똑같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유명 작가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의 다자이와 같은 나이가 됐을 때 이 글을 쓰게 됐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들려주는 미시마의 마음을 우리가 읽습니다.

이 일은 그 시대의 문단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유명 작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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