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 세계적 물리학자 파인만이 들려주는 학문과 인생, 행복의 본질에 대하여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정영목 옮김 / 더숲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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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인만에 대해이론물리학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재미가 크게 반감되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집어들지도 않을테니. 


막스플랑크양자이론양자전기역학(QED),양자색깔역학불확정성이론파동-입자 이중성쿼크머레이 겔만전자기력강한 힘(강력), 핵력통일장이론끈이론액체헬륨이론멕스웰존 슈워츠파인만 다이어그램행로적분... 


이런 용어가 본문중 수시로 나온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았는데지은이가 죽을뻔한 위기(?)를 겪기 때문이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자. 특정 신체부위에 관한 웃픈 에피소드).



2.

지은이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가운데 파인만을 간혹 초대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엮어간다. 추천사에 파인만의 '초상화'라는 말은 이런 의미. 그러니까 파인만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언뜻언뜻 비출 뿐이다. 어떤 모습일까?


나는 물리학에서 내 자리를 찾았네그것이 나의 인생이야나에게 물리학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재미가 있네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할 수가 없었겠지.”164-165


사실 나는 소설을 상상하는 것보다 과학자의 일이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해즉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파악하거나 상상하는 거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지.”173


누군가를 따라갈 수 있다고 해서 올바른 길로 간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스스로 도출해낼 수 있을 때에만 그것을 이해하는 거라네그래야 그것을 믿을 수도 있고.”191


하지만 자네는 자네 친구가 속임수를 썼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논문을 읽었지만 문제를 몰랐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네회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자신이 뭘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그런 사람들은 그냥 따라갈 뿐이지그래서 이렇게 추종자들은 남아돌지만리더는 적은 거라네.”200


나는 자네가 어디에 어울리는지 가르칠 수가 없네그건 자네 스스로 발견해야 돼.”204


나는 알 필요가 없어자네가 알아야지이 시험은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 걸세그리고 중요한 건 답이 아니야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 하는 거지.”205

 

파인만의 내면의 기준을 좇았던 사람이다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암투병 중에도 자신의 일(과학자로서 발견을 추구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하지만 의외의 면도 있다.


여자들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나를 지금의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놓았어여자들은 삶의 감정적인 면을 대표하지나는 그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네.”209


어차피 조만간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야모두 죽지단지 언제냐가 문제일세하지만 아를린하고 있을 때는 한동한 정말 행복했네따라서 나는 이미 다 가졌다고 봐아를린이 죽은 뒤에는 내 삶이 그렇게 좋지 않다 해도 상관이 없었네나는 이미 누릴 것을 다 누렸으니까.”211



3. 

파인만의 모습은 지은이의 글솜씨로 버무려져 더욱 맛깔난다. 지은이의 글솜씨를 조금 맛보자. 이과적 유머라고 해야할까


이런 조리법을 보면서 카페테리아 주방과 미생물연구소는 공통점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57

-불결한 햄버거를 보고


나는 파인만의 분석 방법을 적용하여 그를 한 사람의 과학자라고 생각했다그의 분야는 사랑이었으며다윈이나 파인만과 마찬가지로 늘 똑같은 문제를 생각했다그의 경우에는 짝을 찾는 문제였다.”72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친구를 보고


강한 힘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더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이것은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것이었지만칼텍에서 나에게 영향을 주는 인간들이 발휘하는 힘과는 매우 비슷했다.”75

-소립자물리학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



4.

원제는 파인만의 무지개’인데, 그 대목은 158-159쪽에 등장한다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 영감을 준 무지개의 가장 큰 특징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그가 물었다.
“어, 무지개는 사실 원뿔의 일부인데, 스펙트럼의 색깔들을 가진 호로 보이죠. 물방울들이 관찰자 뒤의 햇빛을 받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물방울 단 하나를 생각함으로써 이 문제를 분석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적합한 기하학을 적용한 것이죠.”
“자네는 이 현상의 핵심적인 특징을 놓치고 있군.” 
그가 말했다.
“네? 그럼 그의 이론에 영감을 준 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일세.” 


옮긴이가 과학자는 아니다보니 강력을 강력한 힘이라고 번역한 것은 아쉽다그리고 216쪽에서 양자크로모역학으로 번역된 용어는 이 책에서 일관되게 양자색깔역학으로 번역되었던 것이다왜 갑자기? 하지만 이런 사소한 점을 제외한다면 예상대로 번역이 좋았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도 참 좋다.


사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꼭 서로의 합의가 요한 것이 아니다어떤 사람을 보고 그를 스승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으면그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그래서 사숙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 아닐까이렇게 만들기 쉬운데 또 그렇게 흔치는 않은 것이 스승인 것 같다보통 사표가 많지 않아서 그렇다고들 하지만스승을 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배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225

 

5.

초반엔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았다. 한참 밑줄을 치며 읽었는데 중반 이후로는 지은이와 파인만, 칼텍의 모습이 어느 정도 눈 앞에 그려지기 시작했다가 다 읽을 때쯤엔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자신의 삶 앞에 당당하고 솔직한 선배를 만난 듯. 경솔하게 조언하거나 잘난체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가끔씩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을 때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집에 사다두고 읽지 않은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를 읽어봐야겠다. 가능하면 그의 물리학 강의를 정주행해보고 싶지만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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