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이소담 옮김, 양경수 그림 / 오우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글 내용을 논하기 전에 몇가지 언급.

우선, 그림이 아주 매력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표지그림 때문에 책을 집어든 사람이 꽤 될 것 같다. 
본문중에 계속등장하는 삽화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쾌감을 선사한다. 
그림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다.

다음으로, 우측 하단 말풍선에 주목하게 된다. 
짧은 인터뷰라고 할 수 있는데 각 상황에 대한 일반인의 말 한마디를 함께 실어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이유로 편집/구성은 아주 마음에 든다.
(다만, 삽화가 있는 경우 페이지표시가 아예 없는 건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2.
처음엔 사이다 발언을 모아 놓은 그저그런 책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후련하긴 하지만.

더 읽다보니 이 책은 '사축'의 형성과정을 사회적, 개인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행동전략을 수립하는 팸플릿으로 읽혔다. 사축의 5가지 유형을 설명하고, 어떻게 사축으로 만들어지는지 6가지 '사축적 사고'를 말한다. 그리고 사축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이 교육과정, 취업과정, 업무과정 곳곳에 숨어있음을 폭로한다. 이 모든 과정을 간단히 128쪽의 표로 정리하고 있다. 

나아가 사축에서 벗어나는 8가지 팁을 제시한다. 결국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아라!'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본적인 교훈으로 마무리되지만, 그게 별로 틀린 말 같지는 않다. 





3.

기억에 남는 구절들.


우리는 시간을 시궁창에 처박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3쪽. 

법을 지킨다고 회사가 망한다면 그런 회사는 그냥 망하게 하면 된다. 
31쪽. 

서비스 야근과 과로사, 과로자살 사건 등 직장에서는 노동 범죄가 마음껏 행해진다. 절도나 살인에 해당하는 노동 범죄이지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36쪽. 

참고로 '손님은 신이다'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로쿄쿠 가수 미나미 하루오다. 그런데 미나미 하루오가 말한 '손님'은 청중이다. 따라서 이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음식점 같은 곳의 손님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미나미 하루오에게 '노래'는 신성한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장의 청중을 '신'으로 우러르며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했을 때 최고로 뛰어난 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다. 

46-47쪽.

 
사축이란 회사와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회사원이다. 
61쪽.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회사에 사원의 평생을 보장할 체력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회사는 나서서 절대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회사가 마치 사원을 평생 고용하겠다는 태도로 신졸 채용을 진행하고, 취업활동에 임하는 학생 역시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안정적인 기업에 취업해서 내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과거의 꿈을 근거 없이 신봉한다. 그런 꿈은 이제 신기루에 불과한데도. 
67-68쪽.

경영자의 마인드로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품위유지비와 운전기사도 꼭이요! 
90쪽 삽화.
 

사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사축으로 키워진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 이상하지 않나? 

96-97쪽.


'일을 통해 어떻게 자아실현을 할 것인가'라는 노동 교육은 풍부하게 이루어지지만, '유급휴가를 받는 조건'이나 '야근수당을 청구하는 방법'처럼 노동자가 자기 몸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은 가르치지 않는다. 
99쪽.

학교에서 보람의 가치를 각인시키기 전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좀더 확실하게 교육해야 한다. 
102쪽.

'자아실현'의 수단은 직업이 아닌 것에서도 분명 찾을 수 있으므로 '일보다 사생활의 다른 것을 중시하는 는' 삶도 있음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또한 '일하는 것'의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알려줘야 한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가족끼리 단란하게 어울리거나 자녀 양육에 투자할 시간이 적어지며, 과로하게 되면 결국 몸과 마음의 건강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도 감추지 말고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102-103쪽.


'나는 정말로 일에서 보람을 원하는가?'라는 문제에서부터 냉정하게 시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기분석은 '사축'이 되는 것에 순응하도록 개조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112쪽.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평가받고 거절당하는 경험을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이렇게 몇 번이고 거절만 당하다보면 자신감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셀 수 없을 만큼의 거절'을 예사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선택해준' 기업이 나타났을 때 특별한 호감을 품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115쪽. 


신입 연수에서 교육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다. 다시 말해 '일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기술'이 아니라 '일할 때의 자세'를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20쪽.



4.

부담스럽지 않게 노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꺼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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